21세기를 사는 그대, 가장 젊고 찬란한 지금 이 순간.을 잡아라.
낭만, 그 옅은 광기를 위하여_뉴욕 편
(5) Rough Trade Above 1250 6th Ave, New York, NY 10112
의미부여를 잘한다. 어쩌면 이렇게 지금 뉴욕 생활 글을 쓰고 있는 것도,
내가 그곳에 간 의미를 부여하고, 만난 사람들 한 명 한 명에게 의미를 주고, 내가 한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어
그렇게 낭만이라 여기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냥 넘어갈 것도 의미를 부어 특별하게 남기니까.
남긴다. 그렇지만 이것은 물질적으로 그리고 가시적으로 남지 않으면 기억에서 아쉽게도 흐릿해질 때가 많다.
물론 아주아주 잔상이 깊게 남는 것들도 분명 있겠지만,
정보의 홍수 속에서, 하루에도 새로운 것들이 넘쳐나는 이 세상 속에서 우리는 분명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잊는다.
그래서 순간을 담아내는 것이 중요했다.
원래 사진을 많이 찍는 편도 아니었고, 앨범에는 오히려 소셜 미디어에서 유용한 정보들을 캡쳐하거나, 누군가 찍어준 사진을 저장하거나,
우리 집 털이 하얘 귀엽지만 성질을 참지 않는 짐승 사진을 찍는 것이 거의 다였다.
휴대폰도 새로운 것을 바꾸면, 사진과 순간은 자고로 새로운 것은 새로운 곳에 담고 과거는 보내줘야지. 하는 생각으로
굳이 굳이 옮기지 않고 옛날 휴대폰 그대로 남겨두곤 했다.
하지만 뉴욕에 가면서, 한 가지 생각한 것은, 사진을 되도록 많이 찍자였다.
나는 스스로 기본 기억력이 월등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일하면서 한번 본건 웬만하면 기억하고 물어지는 편이지만, 그래서 그런지 되려 일상에서는
굳이 잡지 않은 기억은 되게 잘 휘발되곤 했다.
그 순간이 뇌를 거쳐 그냥 나가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너무 아쉬울 것 같았다. 결론적으로는 후회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아 이렇게 할걸, 저렇게 할걸 이렇게 말이다.
그래서 아, 기억이 안 나는데 사진찍을 걸,, 하는 생각을 미래의 내가 하지 않도록 현재의 나‘들이 귀찮음과 에너지를 조금만 더 사용해 주기로 했다.
결국 집에 돌아올 때 즈음에는 항상 휴대폰 용량 부족이 떠서 카메라 어플 자체가 작동이 안 되기도 했고, 휴가를 맞아 뉴욕에 여행온 동생이 예전 휴대폰 공기계를 가져다주기까지 했다.
그렇게 내 카메라로 내가 보고 있는 풍경을 찍으면서 순간, 아 이 순간을 즐기고 있는 나도 남기고 싶었다.
낭만 속의 나를, 그 사진을 보며 찬란했던 나를, 남기고 보고 기억하고 싶었다.
한 블록 지나 그 길이 모두 인생 네 컷 포토 부스인 한국과 다르게 뉴욕에서는 사진을 그렇게 많이 찍을 순 없었다. 그래서 그런 부스가 보일 때마다 사진을 남겼다.
오늘의 나를, 10분만 지나도 다시없을 지금의 나를.
Rough Trade Above 1250 6th Ave, New York, NY 10112
사실 이곳은 이미 유명했던 다른 관광지와는 다르게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이 이끌어준 곳이다. 어쩌면 누군가는 이미 알았겠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의 후기를 보고 처음 알았던 곳이었다. 게다가 알고 보니 그곳은 각종 LP, 테이프, 작지만 관련 서적도 한편에 마련되어 있어서
서점을 보러 간다는 핑계로 또 들릴 수 있었다.
음반 판매점인 만큼 음악과 관련된 서적이 주를 이룬다. 양은 적지만 레코드에 관심이 없어도 볼 것이 있다는 것.
레코드를 모으는 취미를 가진 동생 덕분에 집에는 턴테이블이 있었다. 밖에서 청음밖에 못하던 나는 집에서도 이젠 레코드를 들을 수 있었고, 기꺼이 돈을 지불했다.
음악가를 잘 알지는 못하는 터라 내가 선택한 방법은 그냥 중고 레코드 판 코너에서 앨범 커버가 마음에 들거나 익숙한 이름이 보이면 음악 어플에서 해당 앨범 곡을 들어보고 선택했다.
그러다가 마음에 드는, 그리고 지금 이 순간과 잘 어울리는 풍의 음악이라면 어머, 이건 사야 해.
사진은 그리고 그 순간, 휘발되는 그 순간을, 미래의 내가 다시 불러오게 하는 매개체가 된다.
러프 트레이드의 입구로 들어와 오른편에 바로 위치한 포토 부스는 우리나라 인생 네 컷처럼 세로가 긴 직사각형의 프레임이 4개 있는 모양의 인화지로 출력된다.
카드를 꽂고, 어떻게 나오는지는 알 수 없고. 총 네 번의 셔터가 끝나고 밖에서 다른 사람들의 순간을 구경하고 궁금해하고 있으면 몇 분 전 과거의 내가 툭 하고 나타난다.
이 소중한 시간과 몽글한 감정을 가진 내가 지금 어떤 표정인지, 어떤 눈빛인지, 화면이 보이진 않으니 의식하지 못한 채, 날 것의 내가 나온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찍어준 사진은 가장 아름답게 나온다. ”
라는 말을 좋아한다.
애정의 눈으로 누군가를 바라보고, 그 순간이 지나가는 것이 아까워, 놓치고 싶지 않아 아예 박아버리는 그 마음.
인간은 타인의 인정과 사랑에 풍요로운 삶을 살지만, 자기 자신에게 애정받지 못하면 그 무엇보다 쉽게 무너진다.
그러니 이 순간의 내가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운지, 멋지고 자랑스러운지 어깨를 토닥이며 사진을 찍어주자.
오늘의 낭만을 즐기고 있는 나. 꽤 멋있을지도. 하며
그리고 돌아와 다시 펼쳐보자.
그날 그 밤 참 낭만이었지. 하며
Old Friend Photobooth 145 Allen St, New York, NY 10002
러프 트레이드 포토 부스보다는 조금 작다. 그리고 외부에 있는 부스다. 약간의 커튼이 달려있기 때문에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보이지 않지만, 사람 2명이 들어가기도 조금 애매한 크기의 귀여운 포토 부스다.
총 4개의 컷이 일자로 주르륵 인화되며 처음 꺼낼 때는 인화 과정에서 묻은 물이 조금 묻어 있기도 하다.
특히 애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함께 찍길.
좁은 공간을 변명삼아 눈을 바라보고 찍어보길. 얼굴을 맞대고, 손을 어깨에 올리고
당신의 가장 찬란하고 다시 오지 않을 오늘에, 지금 이 순간에, 당신과 시간을 보내고, 순간을 찍는 소중한 인연을 두고두고 기억할 수 있게
한국은 더 좋다. 술 먹고 얼굴이 빨개도 어떤가, 남자끼리면 뭐 어때,
가족들과도 이렇게 귀엽게. 많이 많이 남겨보자. 약속을 잡을 때 만천하에 “오늘 밥 먹고 사진 찍을 거임” 하고 먼저 던져보기를 권한다.
그렇게 남기면 ‘그날’을 기억하는 조각이 생겨 더 잘 생각나고 오래 남을 수 있다.
순간을 수집하라. 순수하고 수수한 모습으로 그저 날 것의 나를, 우리를, 감성이고 낭만 있게.
추신. 미국에서 방문한 다른 포토 부스와 올드 프렌트 포토 부스 근처 서점
(* 방문: 2024년 10월 - 2025년 2월 의 시기였음을 참고.)
1. Brooklyn Museum 브루클린 뮤지엄 200 Eastern Pkwy, Brooklyn, NY 11238
맨해튼 말고도 뉴욕에서 머물면서 볼 수 있고, 보기 좋은 뮤지엄이 참 많다. 그중 브루클린 뮤지엄은 그 건물부터 웅장한 매력이 있다. 고대 및 현대의 컬렉션을 모두 즐길 수 있으며 단기 전시로 준비되는 소재 및 주제가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것들이 많으니 방문 시기에 한번 알아보고 둘러봐도 좋다. 방문했을 때는 로컬 아티스트들의 예술 굿즈들이 랜덤으로 나오는 자판기와 포토부스도 한편에 마련되어 있었다.
2. Museum of Fine Arts, Boston
맨해튼에서 기차 및 버스로 4-5 시간정도 달려 방문한 보스턴. 하버드 대학교를 비롯해 MIT와 같은 명문대를 투어 하는 것도 유명하지만, 상단의 보스턴 미술관 및 Isabella Stewart Gardner Museum도 방문할만한 좋은 뮤지엄이다. 특히 이자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뮤지엄은 유럽의 궁전을 연상시키는 건물과 아름다운 중정이 순간을 사로잡는다.
3. P&T Knitwear Bookstore, Coffee, & Podcast Studio 180 Orchard St, New York, NY 10002
올드 프렌드에서 사진을 찍고 추운 손을 녹이러 잠시 방문했다가 애정의 공간이 되어버린 서점. 독립서점으로 맨해튼의 로어 이스트 사이드에 위치해 있다. 니트웨어의 이름을 가졌지만 옷 대신 책을 판다. 조부의 가업에서 따온 폭닥한 이름에 어울리게 따스운 음료를 마실 수 있는 카페도 운영한다.
카페와 더불어 이 서점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알차게 큐레이션 된 도서들과 다락방을 연상하는 계단식 의자( 계단인데 방석이 놓여 있다). 그리고 팟캐스트 스튜디오.
감각적으로 꾸며진 실내에서 사진 외의 순간을 기록하고 남기고, 전달하는 그 공간이 참 매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