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버스

<바나나, 냉장인가 하는 그런 걱정>. 4화

by 유우진

버스는 시원하게 달리기 시작했다. 버스 안에는 사람이 없었고 정류장에서 함께 탄 인원만이 버스 좌석 군데군데 자리를 잡았다.

날이 밝아서 햇빛이 들었다.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창에 머리를 기대었다. 바닷가를 끼고 거침없이 달리는 버스가 꼭 밤을 꼬빡 세고 까무룩 잠들 때의 내 머릿속 같았다.

가만히 눈을 감고 버스의 속도감을 느껴보았다.

중간 중간에 서지도 않고 달려 나가는 버스가 나를 집에서 더 멀리 데려다주고 있었다.




환기를 시키고 싶은 생각에 창을 조금 열었다.

틈으로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약간의 소금기가 머릿속을 싸악 훑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바람과 함께 걱정하는 자잘한 조약돌들을 던져 보냈다.

창을 타고 들어온 햇빛이 버스를 감쌌고 그 광경이 영화속의 한 정면같이 느리게 흘러갔다.

창밖으로 지나치는 풍경들을 빠르게 지나가는데 버스 안은 조용하면서 느렸다. 그 분위기가 퍽 내 마음에게 안정을 주었다.




가다가 드디어 첫 번째 정류장에 버스가 멈추어 섰다.

버스안의 인원은 줄어들지 않았고 늘지도 않았다. 하지만 버스는 다시 시동을 걸며 출발했다. 순간 누군가 탈까봐 긴장한 나는 긴장을 풀고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버스에는 자리가 많이 남았지만 내 옆자리는 비어있었다.




나는 누군가 내 옆에 바짝 붙어있으면 그리고 그 공간을 벗어날 방도가 없으면 퍽 긴장하기 시작하여 호흡이 가빠졌다. 이런 증상이 나타난 것이 내 두 번째 어둠이다.

나는 그리 어릴 때도 아니었지만, 지금은 과거와 현재 사이에 있는 나의 두 번째 어둠을 잠시 생각했다.




항상 실수할까 온 몸에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았다.

내가 실수한 모습을 누군가에게 들키기조차 싫었고 그것을 보이는 것 자체가 너무나 수치스러웠다. 그래서 학창시절에는 항상 복통에 시달렸다.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조용히 자습을 시키는 그런 시간에 복통이 몰려오면 나에겐 그 한 시간의 자습시간이 열 시간은 넘게 계속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이 더 심해지고 빵 터져버린 것은 몇 년 이후였다.




더 커서 대학생활이나 사회생활이나 미래의 모습에 해가 되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는 강박관념과 어떤 모습이든 이상하거나 실수하는 모습은 보여선 안된다. 라는 예민함이 정점에 치달았다. 심지어는 나는 항상 ‘인간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배신하고 나빠질 수 있다.’고 생각해서 내가 실수하거나 말을 잘못하는 것 하나하나가 다른 사람이 잡을 수 있는 내 약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도 못 믿었다. 확인하고 확인했다.

심지어는 사람의 표정이나, 혹은 10년도 더 된 과거의 일을 가지고와서 기억나지도 않는 그 상황을 ‘혹시’와 ‘만약’, ‘어쩌면’의 접두사와 함께 밤새 걱정하곤 했다.




이런 건 누구한테 말하지도 못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이 들으면 항상 ‘왜 그런 걸 걱정해?’라는 대답이 돌아오는 조그마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나에게 그것은 절대 쓸데없는 것들이 아니라 당신들이 마음만 먹고 나를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기에 가장 최악의, 심지어 정말 내가생각해도 억지스러운 설정을 뒤집어가며 최악의,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며 걱정하고 불안해했다.




그렇게 밤을 꼬박 세며 인터넷에 올라와있는 내 사진을 몽땅 지우기도 하고, 쓰지 않는 번호나 조금만 연락이 끊겨졌던 사람들의 연락처를 지우거나. 내 휴대폰에 저장된 친구들의 사진과 조금이라도 걱정의 실마리를 주는 것들을 몽땅 다 삭제해버리기도 했다.

다 지우고 나면 안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허탈했다. 그리고 내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그리고 짜증났다.

왜 난 이런 것 하나도 걱정하고 이렇게 놓지 못하는 걸까. 이러고 어떻게 살지. 일일이 확인하는 내가 너무 이상하게 보일 것 같았다.




매 번 매 번 생각이 시작되면 뇌가 부풀어 올라 빵 터져버릴 것 같았다.

그러고 나니 일상생활을 하는데도 무리가 가기 시작했다.




버스에서 누군가와 부딪히면 서너 번을 사과하고 그 사람의 표정을 확인하고. 매장 안에서 물건을 구매하려 할 때 테스터용이라고 적혀있는 것을 보고도, ‘혹시 나중에 이게 안 붙어있다고 나를 신고할지도 몰라’ 하며 꼭 직원에게 사용해보아도 되냐고 물었다.

그 제품을 만지기 전에 그런 생각을 해서 물어보면 다행이지. 그러지 않고 또 아무 생각 없이 제품을 만지고 나서는 다시 물어볼 수도 없어서 꼭 그 제품을 구매했다.

그렇게 실제로 쓰지도 않지만 집에는 물건이 쌓여져 갔다.




내 상상 속에서 결말은 항상 최악이었다.

물론 실제로 당연히 당신들이 나를 신고하거나 나쁜 마음을 가지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은 머리로는 이해하나. 언제나 마음이 항상 불안해했다. 무조건 반사같은, 습관이었다.

그리고 아무리 친하다 하더라도 매 번 같은 것을 물어보고 몇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또 물어보는 나를 이해해주지 못할 것 같았다. 나도 내가 이상한데, 나를 이상하게 볼 것 같았고 이런 나에게 질릴 것 같았다. 그래서 이런 나를 털어놓고 싶어도 털어놓을 수 없다. 예전보다 지금이 더 속사정을 꺼내놓기 어렵다.



나에게 세상은 얇은 유리막이다. 조금만 잘못 움직여도 깨질 것 만 같고 그렇게 유리가 깨져버리면 다른 사람들의 주목을 다 받아버리고, 왜인지 모를 수치감이 몰려왔다.

그렇다보니 버스에 타고 누군가 옆에 있다는 것을 인식한 순간부터 다시 복통이 시작되고 호흡이 안 되고 헛구역질이 시작되었다.




무한 굴레처럼 이런 나의 상황이 또 이 사람에게 이상하게 보일 까봐 걱정하느라 머리도 아파왔다.

당장 내릴 수 있는 마을버스나 화장실같이 도피처가 있는 비행기, 기차는 괜찮았지만, 당장 내릴 수도, 어딘가 내 얼굴을 보이지 않거나 혼자 배를 움켜쥐고 안정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 없는 고속도로 위의 버스, 뒷문이 없는 강의실, 달리고 있는 좁은 차, 또는 꽉꽉 인원이 채워진 차 등을 나에게 고역이었다.

타는 순간부터 온 몸에 긴장이 되었고 학교에서 어딜 가기 위해 누군가와 자차를 타고 이동해야하는 경우가 있을 것 같으면 그냥 그 행사에 불참했다.




호흡이 안 되기 시작하면 식은땀이 났다. 그냥 달리는 택시든, 버스든, 차든 그냥 문을 열고 도망치고 싶었다. 눈앞의 시야가 흐려지는 기분이었다.

예전에 더위를 먹고 눈앞이 빙글빙글 돌면서 식은땀이 나던 경험이 있었는데 딱 그런 기분이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면서 이성의 끈이 아슬아슬하게 끊어지기 일보직전. 이성적인 사고가 불가능했다. 마침내 그 상황을 벗어나도, 횡설수설하던 나의 모습이 떠올라 진정이 되어도 다시 자책하기 일쑤였다.




그리고 나서 상담을 받았다. 이야기를 하면서 조금은 호전되기도 했지만 실질적인 도움은 되지 않았다.

솔직히 ~하면 어떨까? 하는 조언들은 도움이 될 때도 있었지만 나는 점점 그렇게 생각하는 것조차 지쳐갔다.

그냥 내가 싫어지기에 이르렀다. 어정쩡하게 상담은 끝났고 학기도 끝나서 버스는 탈 일이 없었지만 동행들과 어딜 함께 가려고만 하면 차에서 내려서 숨을 골라야했다.

가족과 함께 있을 때는 실수해도 괜찮다. 라는 확신이 있어서 그런가 괜찮았다. 우리집 차는 괜찮았다.

그래서 집에서 기다리는 당신들은 아직도 내가 수련회를 갈때는 맨 앞자리에 타고, 다른 친구들이 나를 위해서 차가 아닌 지하철로 활동을 하러 가는 배려를 해주는지 여직 모르겠지. 나는 안타깝지만 아직도 그렇게 살고 있다.




두 번째 어둠은 스르륵 오늘까지 어둡게 물들였다. 투명한 물에 잉크가 풀어지듯. 해결되지 못한 나에 대한 혐오는 다음 학기에도 내내 나를 괴롭혔고 죽지 못해 사는 사람처럼 살아 오늘까지 왔다.




털컹- 버스가 한 번 더 섰다. 바닷가를 지나 시장과 상점이 있는 길을 지났다. 고소한 빵 냄새가 내 머릿속을 환기 시켰다.

풍경을 보자. 생각을 하지말자. 스스로에게 되 내이듯 고개를 두어 번 저은 나는 버스에서 내리는 노인을 바라보았다. 인원은 줄었다가 채워졌다. 버스는 다시 출발했다.

정류장에 사람을 내려놓고 다시 태우는 이 버스처럼 내 머릿속도 한 시점이라는 정류장에 기억을 내렸다가 나중에 내가 필요하면 다시 그 버스에 올라타거나 아예 타지 않고 터나버리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말 그러면 좋겠다. 그 사이 버스는 다시 사람들을 태우고 신나게 달리기 시작했다.





역과 반대방향으로 달려 나가는 이 버스를 타니 내가 가지고 있던 문제들과 불안들은 저 멀리 놓고 오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건물들 사이사이 보이는 들판과 울타리가 보였다. 순간순간 지나가는 이런 일상들이 꿈만 같았다. 떠나오는 상상을 할 때마다 내 머릿속에는 항상 기차를 타거나 버스를 타고 있었는데 자유롭게 떠나오는 모습이 실제로 이루어지니까 실감이 나지 않았다.





버스 창밖으로 지나치는 건물들이 눈앞에서 미끄러지듯이 지나갔다. 머릿속의 모든 불안과 걱정들도 이렇게 한순간의 잔상처럼 지나가버렸으면.

날이 풀려 살짝 열어둔 창문으로 춥지도 차갑지도 않은 바람이 살짝 불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마를 덮는 햇살이 기분이 괜시리 기분이 좋아져 생각난 김에 휴대폰을 잠시 켰다. 커피숍에서 잠깐 충전을 맡긴 사이 방전된 휴대폰은 반 정도 충전되었고 나는 쌓여있는 전화와 문자는 애써 보지 않으며 노래를 담아둔 공간을 눌렀다.





모국어 말고 다른 노래를 듣기로 했다. 가사를 알면 괜히 내 상황에 가사를 맞출 것 같았다. 팝송 중에서도 조금 상기된 이 기분을 더 끌어올려보려 박자가 빠른 노래로 리스트를 만들었다. 노래를 들으면 그 노래의 분위기에 맞게 기분이 맞추어지는 것이 언제나 신기하다. 괜히 나의 노래에 모든 사람들의 분위기가 맞추어 지는 것 같았다. 배경음악처럼.

같이 버스를 탄 이들도 이 노래처럼 밝은 마음으로 이 버스에 오른 것이길 잠시 바랐다. 창밖에서 창 안으로 시선을 돌려보았다. 커피숍 앞의 정류장에서 함께 버스를 탄 책가방을 멘 학생들의 모습이 눈에 닿았다.





나의 앞좌석에 앉아 있어, 뒷모습과 드문드문 옆모습이 보였다. 얼굴에 미소를 띠우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생그런 사과 같았다.

동그란 얼굴에 뭐가 그리 즐거운지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낙옆만 떨어져도 재미있을 나이. 흔히 말하는 그 말처럼 꼭 그런 나이 같았다. 나에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던가. 어둠을 거슬러 올라가면 난 학생 때도 그래 참 힘들었다. 참 어려웠다.






그럼에도 즐거웠던 시간. 음 있었다. 두어 번의 어둠속에서도 그래도 내가 제일 즐거웠다고 생각하는 시간은 있다. 그리고 첫 번째 어둠은 아마 그 시절이 너무나 그리워서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은연중에 늘 생각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가장 아무걱정 없고, 즐겁고. 걱정도 나름 잘 극복했던 시절이 아닐까 싶다. 나와 함께한 그 때의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도 나에게 그 시절의 너희들은 가장 예쁘고 착하고 참 고맙다.

내가 불안한 것들을 곱씹어 괜찮다고 해주는 너희들이. 내가 힘들어 하면 도리어 걱정하는 너희들이. 지금도 내가 고민하는 걸, 걱정하는 걸 누구보다 궁금해 하고 주시하는 너희들이 참 예쁘다.






‘그때 진짜 재미있었는데... ‘. 나도 앞에 앉은 학생들처럼 부러 한번 얼굴에 웃음을 띄어보았다.

지금 버스 .내 옆에 네가 앉아 있는 상상을 했다. 기억도 나지 않는 첫 만남을 매번 기억해보려 애쓰는데 매번 기억도 안 나는 우리를.

나의 가장 찬란하고 밝았던 시간을 같이 한 너를. 그리고 지금 나의 어둠까지 함께 보내며 나를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 걱정하는 너를. 참 티 없고 깨끗하고 강인한 너를 생각했다.






아마 쌓여있는 문자들 중에는 네 문자도 끼어 있으리라.

네가 예전부터 힘들어하는 내 걱정을 마음 한 구석에 언제나 하고 있던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너에게 온전히 솔직하게 다 말할 수 없었다. 나는 괜찮아지고 싶었고, 힘들다고 입 밖에 꺼내는 것이 두려웠다. 어쩌면 너는 지금 도망 나온 나를 생각하며 그때 왜 자신이 진즉에 알아차리지 않았을까 하고 자책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내가 가끔. 어느 날 밤에 결국에 몇 번의 상처를 낼 때도 결국 네 생각을 하며 그만 둔 적이 있다는 것을 넌 모르겠지.

너는 나에게 그런 존재였다. 너를 안 것이 나에게 정말 얼마나 행운인지. 그냥 문득, 돌아갈 때 너에게 줄 선물 하나를 꼭 챙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뭐가 좋을까. 도망나갔다 전리품을 들고 당당히, 그리고 담담히 다녀왔다고 말하면 넌 아마 괜찮다고 잘했다고 말해주겠지. 참 고맙게도.

네 생각을 하니 애써 무시한 휴대폰의 문자 중에서도 네 문자의 내용은 궁금해졌다.






노래가 다음 곡으로 넘어갔고 삐이- 버스 안 누군가가 하차 벨을 눌렀다. 내가 내릴 정류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