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선물을 가지고 다녀보는 것.

가방 속, 생각치 못한 낭만은 생각보다 크고 오래 남는다.

by 유우진

낭만, 그 옅은 광기를 위하여_뉴욕 편

(2) Bonnie Slotnick Cookbooks. 28 E 2nd St, New York, NY 10003



영향을 준 사람과, 영향을 받고 싶은 사람.

오늘은 전자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영향을 준 사람은 나도 모르는 사이, 하얀 도화지인 나를 어느샌가 바뀌게, 어느 순간 인식해 보면 어라, 싶게 만든 사람이다.

내가 이거 갖고 싶은데 하고 쫒은 사람이 아니라, 어느새 그 사람의 취향이나, 지식을 내 것으로 잡아 삼킨 그런 순간을 맞이할 때가 있다.


한 마디로 정리해 보자면 음. 물려준 사람. 모르는 새. 알고 보니 말이다.

나에겐 10살 차이가 나는 사촌 오빠가 바로 그 전자였다.




취향이랄 것도 없던 고등학교 시절부터, 아니, 어쩌면 그전부터,

문구를 좋아하는 것. 글씨를 좋아하는 것. 활자 중독과 사진 보정, 일본 드라마와 그 속닥속닥, 가끔은 화려한 그런 것들.

나의 감성과 취향은 모조리 오빠에게로부터 ‘물려받았다.‘ 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인식하지 못했다. 나에게 오빠는 10살이나 차이나지만 말이 잘 통하는 사람. 친한 사촌 오빠였는데, 내 머리가 점점 자라고, 둘 다 조금은 지능 있는 대화가 가능할 때쯤 무렵 살짝 느꼈던 것 앗다.



아 이게 취향이 같다는 거구나.

그래서 가끔은 친구보다도 오빠와 함께 도서전을 가고, 일본 여행을 가고, 서점 페어를 가는 것이 서로 좋은 약속이었다.



사실 취향뿐만이 아니라 태도도 비슷해질 때가 있다. 누군가의 행동이 태도를 보고 어, 이건 좀 배우고 싶다.라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어느샌가 나에게 그 사람의 생동이 보이는 그럴 때.



오빠에게는 ‘빈 손으로 보내지 않으려는’ 행동을 물려받았다.




오빠는 서울에 살았고, 나는 수원에 살았다. 내가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아니,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오빠의 대학이 우리 집 근처였기 때문에,

오빠는 시험기간 때 종종 우리 집을 거쳐 자고 가거나 아침 일찍 다시 학교로 가곤 했다.

그렇게 보통은 오빠가 우리 집에 오는 순간이 더 많았다가, 내가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면서 활동 범위가 넓어지고, 추구하는 게 생기다 보니

서울로 종종 약속을 잡곤 했다.




간 김에 모든 것을 처리하려는 성격 탓에, 그리고 꼭 거창하게 약속을 잡는 것보다 사실 ;가다가 네 생각이 났어 의 사고로 살아온 터라.

약속이 끝나고 이젠 반대로 내가 오빠네 집에 종종 들러 자고 가거나 저녁을 먹거나, 함께 살던 숙모 삼촌에게 인사하러 수박을 사들고 가곤 했다.

그래, 수박.

그렇게 어딜 갈 때 뭔갈 쥐고 가게 된 것은 오빠의 영향이다.




집까지 가든, 안 가든 어디서 보든. 오빠는 꼭 내 손에 뭔가를 쥐어 보내지 않고는 안되었었다.

대뜸 길을 가다가 올리브영에 들러 섀도 팔레트를 사가지고 와서 손에 꼭 쥐어주거나. 오빠 가방에 있던 초콜릿을 뒤져 내 가방에 넣어주곤 했다.

집에 들르면 마스킹 테이프, 같이 좋아하는 영화 포스터, 엽서, 하다못해 캘리그래피를 하는 오빠가 적은 책갈피라도.

작은 거라도, 오빠를 만나면 꼭 내 주머니에 뭔가가 들려있었다. 심지어는 하나씩 모아 한 번에 택배를 보내주기도 하고.



그게 참, 돌이켜 생각해 보면 좋았다.

뭔갈 받았다기 보단, 하루의 마무리를 꼭 선물로 채워주는 것 같아서.

집에 돌아와서 보면 아, 나 챙김 받고 있구나를 가시적으로도 확인받는 느낌이었다.




꼭 거창하지 않아도 그런 느낌은 느낄 수 있었다.

그냥 꼭 오빠는 가방을 탈탈 털어 정말이지 ‘뭐라도’ 쥐어줬다. 그리고 그것은 생각보다 의미가 커진다.

말 그대로 ‘생각지도 못한’ 선물이라 그럴 것이다.




선물이라고 하니 뭔가 리본이나 포장 따위가 있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고, 그것도 아니라면 뭔가 종이 가방에서라도 담아 줘야 할 것 같은데,

그냥 초콜릿도, 볼펜도, 사실 누군가에게 마음을 담아 건네받은 것이 선물이 아닐까.

나와 함께 있어 준 그 순간을 되새기며, ‘마음‘을 전달하는데, 그 누가 싫어할까 싶다.

게다가 ‘생각지도 못한’ 이 첨가되면 뭐랄까. 감동이 배가 된다. 그리고 꼽씹어 보게 된다. 받았으니까, 고마우니까. 그렇게 한 번을 더 그 사람을 생각하게 된다.





뉴욕에서 서점을 돌아다니며 이런 작은 선물을 챙겨 다녔다.

한국에서 가져온 책갈피와 스티커를 들고, 서점에서 만난 선물 같은 사람들에게 선물했다.

이것저것 물어보는 나에게 이것저것 알려준 것이 고마워서. 덕분에 나는 이 순간을 정말 오래 기억하고 싶은데, 이 사람들에게도 조금은 기분 좋은 순간을 선사하고 싶어서.

뭐라도 작은 것이라도 고마운 것이 찾아보면 나오니까. 이유를 붙이며 선물했다.

사실 그냥 내 말을 들어주고, 나와 대화한 것도 고마운 거니까.




어쩌면 이 사람들도 오늘 하루를 끝마치고 집에 돌아가며 내가 준 작디작은 스티커나책갈피를 보며

오늘은 말이야, 서점에 한국인 애가 들어왔는데, 이게 한국 서울의 랜드마크래 ‘ 하며 가족들에게 얘기하며 하루를 또 멋지게 기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낭만을 하루의 부록으로 선물하는 것이다.



Bonnie Slotnick Cookbooks는 뉴욕 이스트 빌리지에 위치한 요리 주제 서점이다.

지하로 살짝 내려가 있는 입구를 열고 들어가면

알프스 소녀 하이디에 나오는 친절한 할머니 책방 지기가 프라스 가정집 같은 분위기의 서점에서 맞이해 준다.



겉으로 보기엔 동네의 친절한 할머니 같은 서점이지만 사실 알고 보면 엄청난 내공을가진 제야의 은둔 고수 같은 서점이다.

에디터로 근무했다는 책방지기의 선별 기준에 따라 요리 제로, 요리 법, 지역 등으로 나뉜 도서들은

마치 레시피 북을 책방으로 만든 느낌을 준다.




첫 목차를 지나 인덱스를 보며 우리는 오늘은 이 요리지, 하며 레시피를 보는 것처럼.

그녀의 서점을 훑으면 마치 목차를 보는 것 같다.

더불어 근처 동네의 다른 서점을 안내하는 프린트 물과 아이들을 위한 요리책, 요리책과 관련된 영화로 연결되는 코너까지.

마치 요리책 끄트머리 한 편에 작은 글씨로 tip이라 적혀있는 것처럼 군데군데 정보가 친절하게 위치해 있다.



나의 서점 프로젝트의 주인공인 영화 줄리앤 줄리아 코너도 작게 마련되어 있다.

실제 주인공인 줄리아 차일드의 책도 물론 소장 중이다.

그녀의 요리책을 한 권 고르고, 이런저런 대화를 오가니 주인 할머니가 나에게 슬쩍 눈으로 서점 굿즈인 에코백을 챙기라는 신호를 준다.

정말이요? 하고 물으니

다른 사람에게는 비밀이라며 손가락을 입에 대고, 나중에 한국에서 이거 멘 사진을 보내주면 되지.

하며 친절을 베푼다.




이건 생각지도 못한. 어림없지. 나도 있다구.

가방 속에 자리 잡은 나의 작은 선물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요리책 서점이니 떡볶이 스티커를 증정했다.

나에게도 잊지 못할 순간을 선물했으니 나도 조금은 재미난 일화를 선물했다.



사실 선물은 정말 작다. 고작 스티커니까.

그만큼 자리도 차지하지 않고, 그냥 툭 꺼내 줘도 전혀 부담이 없다.

하지만, 작지만 그 울림은 어쩌면 어느 사람에겐 클지도 모른다.

그런 게 또, 낭만이 아닌가.




한국이어도 좋다. 비단 꼭 뉴욕에서만 이런 낭만이 허용되지는 않을 터.

지나가는 카페에서, 도서관에서, 그냥 이거 귀여워서 받았는데 나눠주고 싶어서요.라고.

두려워 말라. 정말 정말. 나라면 너무 반가울 것 같다.

그리고 생각보다

사람은, 귀여운 것에 약하다.



속으론 다들, 그런 낭만이 필요할 지도 몰라.

낭만, 한번 뿌려보러, 근처 다이소라도 오늘 한번 가보는 것을 슬쩍 권해본다.





추신. 뉴욕의 또 다른 주제 서점

1) Archestratus Books + Foods, 164 Huron St, Brooklyn, NY 11222

맨해튼시티에서 바로 옆인 브루클린에 위치한 서점이다.

이름처럼 요리에 관련된 서적들을 테마로 구성된 서점이다. 레시피 북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요리나 음식을 다루는 소설 등도 구성되어 있으며 레퍼런스 북들로 영양소에 관한 서적도 함께 있는 것이 디테일한 귀여운 요소이다.

책뿐만 아니라 주방기구, 심지어는 요리 재료도 팔고 있으니 구경할 재미가 있다.



2) Pillow-Cat Books, 328 E 9th St, New York, NY 10003

동물을 테마로 한 주제 서점이다. 규모는 작지만 연두색의 아기자기함이 손님을 반겨준다. 귀여운 일러스트 도서 및 동화책도 볼 수 있으니 한 번 발걸음을 들러봐도 좋을 것 같다. 더불어 귀여운 고양이 ‘pillow’ 도 만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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