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경계

by popcicle

두 달 전, 큰아버지가 돌아가시더니 지난달에는 큰어머니가 돌아가셨다. 8년 넘게 요양병원에 누워 사람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천장만 쳐다보고 사셨었다. 내 아버지는 형제간의 우애를 끔찍이 여기는 분이라 형님이 돌아가셨을 때 바로 달려가 장례의 절차에 관여하였고, 형수님이 돌아가셨어도 마찬가지로 장례가 진행되는 3일 동안을 그곳에서 지내셨다.


‘자식도 세 명이나 있는데 적당히 좀 참견하시지...’


내 마음과는 아랑곳없이 아버지는 장례가 치러지는 내내 바쁘셨다.



몇 년 전 아버지의 성화로 요양병원에 계시는 큰어머니를 만나러 간 적이 있다. 목청을 높여 사촌들과 비교하며 10살짜리 어린 나를 주눅 들게 했던, 풍채 좋던 모습은 다 사라지고 없었다. 마르고 볼품없이 누워있는 모습 속에 내 기억 속의 큰어머니와 연결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순간 나는 예전에 가졌던 큰어머니에 대한 미운 마음을 다 잊었다. 세월이 나에게 관대함을 선물한 것이 아니다. 막연히 가족일 거라 생각했던 마음에서 벗어난 지 이미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그저 돌아가실 날이 가까운 노인이라는 애처로움만 남아있었다.



장례식장에서 사촌들을 만나자, 내 기억에 묻혀있던 어린 시절이 일제히 되살아났다. 30년이 넘도록 보지 못했던 사촌들인데 한순간에 그 시절을 소환해 내다니 놀라울 뿐이다. 어렸을 적에는 설날과 추석 같은 명절에 사촌들을 만났다. 세뱃돈을 받을 수 있다는 즐거움 때문에, 나는 추석보다는 설날을 더 기다렸다. 하지만 나는 명절에 큰집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버지 형제들이 차례를 지낸 후 음식을 앞에 두고 큰소리로 말싸움하는 것을 문밖에서 슬쩍슬쩍 엿보던 것이 기억난다. 명절은 가족의 약한 고리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시간이다. ‘왜 어른들은 오랜만에 만나서 싸우는 걸까?’



형제들과 싸우지 말고 우애 있게 지내라고 덕담할 때는 언제고 왜 어른들은 명절이면 싸우다가 기분이 상해 누군가는 집에 가버리는지 어린 내 눈에도 참으로 이상해 보였다. 명절의 싸움에서 가장 중심에 있던 분이 바로 두 달 전 돌아가신 큰아버지다. 내가 기억하는 큰아버지는 술이 한 두잔 들어가면 주로 아버지에게 시비를 걸고 큰소리를 내는 방식으로 싸움을 시작하곤 했다. 성장기에 감내해야 했던 서운한 감정이 그 나이에도 씻어지지 않았는지 매번 화를 주체하지 못했다. 그 화가 아버지에게로 향한다는 것이 어린 나에게도 전해졌다. 왕래도 없이 지내다가 명절이면 오래되다 못해 발효될 지경인 감정을 쏟아내고 언성을 높이는 반복적인 행사를 지켜보는 이들은 자식들이었다. 아버지를 미워하던 큰아버지는 나와 내 형제들에게도 냉랭하였다. 나를 쳐다보지도 않던 큰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덕분에 나는 사촌들과도 서먹한 채로 성장기를 보냈다.



장례식이라도 없었더라면 사촌들과는 길에서 마주쳐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시간이 흘렀다. 아버지는 여전히 사촌도 형제이니 서로 연락하며 지내라고 말씀하신다. 동생들과도 용건이 있을 때 연락하는 나로서는 공감하기 어려운 말이라 대체로 건성으로 대답하고 만다. 내 아버지가 생각하는 가족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가족의 경계는 사람마다 달라서 때로는 서로를 당혹스럽게 한다. 내 아버지에게 가족의 경계는 당신의 형제들을 포함하는 의미였기 때문에 형님 가족의 대소사를 자기 일로 여기고 참여하였지만, 큰아버지에게 있어서 가족은 자신이 만든 가족만 포함되었다. 형을 향한 아버지의 애달픔에도 불구하고 큰아버지는 동생을 가족으로 여기지 않았던 것 같다. 서로 정의하는 가족의 경계가 달라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갈등을 이해하는 나이가 된 후로 나는 아버지에게 더 이상 서운한 감정을 갖지 않았다.



큰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 몇 해 동안은 그래도 아버지와 마음을 풀고 지내셨다. 형제가 극적으로 화해했다는 그런 미담은 없었다. 그저 서로 측은지심을 느끼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젊었을 때부터 서로를 이해하고 불쌍히 여기며 살았다면 좋으련만, 인간의 후회란 항상 때늦은 것이어서 인생사에 그런 멋진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가 보다. 큰아버지와 아버지도 어렸을 적엔 다정했던 한때가 있었겠지? 그때는 분명히 가족이었을테니...



내 가족은 어디까지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나는 함께 자랐던 형제와 부모가 지금 내 가족의 경계에 포함되는지 아닌지를 고민하지 않는다. 그때의 가족은 부모가 만든 가족이며 나에게는 교집합처럼 겹치는 부분이 있지만 지금 내 가족은 아니다. 내 인생의 초반기에 ‘지나가는’ 가족임이 분명하다. 아버지가 알면 분명히 서운하겠지... 하지만 내 생각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다. 내가 선택하여 만든 가족, 남편과 내 아이가 내 인생의 대부분을 만드는 가족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아버지를 모른척하거나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니 절대로 서운해하지 마세요. 저랑 아버지가 같이 살았던 세월이 얼만데요.”



내 아이에게 지금의 가족은 그저 ‘지나가는’ 가족이 되기를, 나는 원한다. 태어나서 독립하기 전까지 엄마 아빠와 살았던 기억들이 내내 소중하기를 바라고, 자신이 선택한 배우자와 가족이 되어 자식을 낳고 서로가 즐거운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보냈으면 좋겠다. 서운한 감정이 생길 때마다 풀어버리고 묵은 원한 같은 것은 절대 만들지 말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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