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노안이 빨리 왔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자료를 읽는데 어느 날 글자가 흐릿해졌다. 모니터를 쳐다보다 눈을 찌푸리는 횟수가 늘어갔다. 작은 글씨를 보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면서 책 읽기가 어렵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강의실에서 출석부를 멀찌감치 보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당황했던 일은 내 인생에서 슬펐던 사건 중 하나로 꼽힌다. 중년이 되면서 가장 먼저 체감하는 변화는 노안이 아닐까. 노안은 나의 일상생활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우선, 내 올빼미 생활이 강제로 종료된 것이다. 나의 집중력은 밤에 최고조를 이루어 새벽이면 생산성을 높였다. 밤늦게까지 깨어있는 날이 많았고 꼭 뭔가를 하지 않더라도 그 밤의 고요함은 온전히 내 것이라는 생각으로 뿌듯했다. ‘이 즐거운 시간을 포기해야 한다니... 말도 안 돼’
동시에 나의 모든 중요한 일들은 오전에 처리하는 날들이 늘어났다. 한밤중의 이메일 답장은 하지 않게 되었고, 책을 읽고 자료를 만드는 일, 글을 쓰는 일은 가능하면 오전 시간에 하는 것이 효율적이었다. 밤늦게까지 밖에 있으면 눈이 더 피곤해서 상쾌한 아침을 맞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점점 저녁 스케줄도 줄여야 했다. 9시 뉴스가 끝나고 나면 이제 하루를 마감하는 자세로 이불을 펴시던 아버지가 너무 이해되는 순간이다. 노화는 ‘노인들의 전유물’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을 뿐, 중년의 나이부터 노화가 진행된다는 사실을 젊을 때는 몰랐다. ‘엄마는 눈이 침침하다고 바늘에 실 꿰어달라고 나한테 항상 부탁하셨는데... 나도 이렇게 할머니가 되려는 건가?’ 괜한 슬픔이 몰려온다.
중년에 적응해야 할 것이 어디 노안뿐일까. 중년의 건강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근육이라며 특히 ‘허벅지 근육운동은 필수’라는 구체적이고 친절한 조언이 인터넷에 넘쳐난다. 중년은 몸의 근육이 사라지는 시기라며 연금보다도 적금보다도 중요한 것이 바로 근육을 저축하는 일이라고 열변을 토하는 유튜브의 근육전도사들에 의하면 내몸은 무너져 가는 중이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젊은 시절 내내 튼튼한 허벅지를 괴로워하며 살았던 나는, 나는 이제 내 허벅지에 깊은 감사를 표해야 할 것 같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는 말은 나의 경우에 들어맞지 않는다.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니 집중력도 예전같지 못할 뿐더러, 무슨 일을 시작하려 해도 귀찮음이 앞선다. 인생 전반에 걸쳐 사용하는 에너지의 총량이 존재하는 것일까? 나의 에너지는 인생 후반전을 즐길만큼 충분하지 않은 정도만 남아있는 것 같다. 하지만, 모든 중년이 나와 같은 형태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친구들을 보면서 알게 되었다.
“갱년기라 그래.”
친구들과 이구동성으로 합창을 해줬다. 최근 몇 년간 만나기만 하면 남편 욕을 한 보따리씩 가져와서 쏟아내는 친구가 있다. 그녀는 천성이 헌신적이라 가족들과 갈등을 만들 일이 없었다. 쳐다보기만 해도 예뻐 죽겠다던 아이들이 독립해 나가고 남편과 있는 시간이 늘었다. 우리는 ‘다시 찾은 신혼’이라며 놀리기도 했다가 ‘삼식이 남편’이 얼마나 힘든 줄 아냐며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네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오랫동안 우울해했다.
집안 살림과 가족 건사를 하고도 시간이 넘쳐나 우울하다는 이 친구의 지난 몇 년의 삶은 취미생활로 넘쳐났다. 넷플릭스에 쏟아지는 세계 각국의 드라마를 섭렵하던 때도 있었고, 그림을 배우러 다니기도 했으며 골프와 수영 같은 운동의 세계도 익숙하다. 어느 해인가는 동네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책을 대출한 사람으로 뽑혀 상도 받았으며, 코로나가 발생하기 전 해에는 무려 8번의 해외여행을 갔다. 코로나가 시작되어 어쩔 수 없이 집에 갇히는 시간이 되니 괴로워하면서도 기어이 할 일을 찾아냈다. 그녀는 온 집의 벽을 혼자서 페인트칠까지 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림을 배우러 다닌 전력이 페인트칠에 영향을 주었을까? 놀러가서 확인한 그녀의 페인트 실력은 놀라웠다. 중년의 삶을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지 온몸으로 알려주는 전도사 같았다. 이 친구는 요새 어느 식품매장에서 파트타임 직원으로 일하는 중이다. 넘쳐나는 에너지를 가족에게 발산하지 않기 위한 그녀만의 또 다른 방법임이 분명하다. 정해진 시간만큼 일하고 남는 시간은 여전히 취미생활에 열심이다. ‘아직은’ 삶에 활기가 돈다.
넘치는 시간과 에너지를 어디에 사용해야 할지 몰라 힘들어하는 그녀나, 이제는 에너지가 고갈되어 시간만 나면 늘어지고 싶어하는 나는 서로 다른 갱년기를 지나는 중인가? 둘 다 평범한 삶의 궤적에서 크게 벗어난 적이 없으므로 걱정할만한 시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시간이 길어지니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이 줄어들었는지 인내심이 부족하다. 우리의 전두엽은 노화가 진행되면서 위축되었다. 감정은 세월에 취약하여 노화가 가장 빨리 이루어지는 부분이라고 한다.
심리학자인 카를 구스타프 융은 중년을 ‘인생의 정오’와 같은 시점이라고 정의했다. 지금까지 성취하며 살아왔던 시간을 되돌아보며 의미를 찾는 시간이다. 지나간 인생을 끊임없이 회의할 수도 있고, 인생의 전환기라 생각하여 새로운 방향으로의 출발을 모색해 보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대중매체는 중년을 ‘위기’라고 부르며 일탈을 이야기한다. 뒤늦게 자기 인생을 찾겠다며 가족과 갈등하는 중년 남녀의 이야기는 한 때 통속드라마의 단골 소재였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정작 중년의 위기를 경험하는 사람은 의외로 얼마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최근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현실 속의 자아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나이’ 탓을 하지 않고 자신에게 있었던 인생 사건들을 돌아보면서 변화의 전환점을 찾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않는다면 인생의 후반기를 재창조할 수 있는 근력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적응하기 힘든 것은 누가 뭐래도 감수성이 무뎌지는 것이다. 꽃 사진을 찍는 중년들이 넘쳐난다. 저마다의 SNS 프로필속에 계절마다 새로 피어난 꽃 사진으로 도배가 되다시피 하는 것을 보면 자연에 대한 감성지수는 높아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타인의 감정을 헤아리는 감수성은 점점 사라지는 이상 현상을 나는 자주 목격한다. 전두엽의 기능이 점차 쇠퇴하면서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이 줄어들었다는 생물학적인 정답만으로 감수성의 쇠퇴에 면죄부를 줄 수 없다. 오랫동안 ‘나이’가 무기로 사용되어 온 사회에서 이제 의사 결정권을 행사하는 위치에 오른 중년은 거침이 없어 보인다. 나보다 어린 사람의 감정을 헤아리지 못하는 감수성 무딘 중년으로 살다 보면 노화의 속도에 가속이 붙을 것 같다. 누가 마음은 청춘인데 몸만 늙는다고 했는가. 몸이 늙으면 마음도 늙는다. 인정하지 않는 중년이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