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사회성을 기르기 위해 세 살부터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내가 참여하는 모임의 젊은 엄마로부터 받은 질문이다. 자신의 아이는 내향적인 성격이라 사회성을 키우려면 어린이집을 조금 빨리 보내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도가 섞인 질문이었다.
선생님들은 대체로 외향적인 학생들을 더 편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편하다는 의미는 여러 가지로 해석이 되지만, 학생들과 소통의 측면에서 보면 선생님의 말씀에 반응을 잘하는 학생이 더 편하다는 의미이다. 선생님이 묻는 말에 모깃소리처럼 조그맣게 대답하던 나는, 말수가 적고 내성적이라는 평가가 적힌 학년말 성적표의 단골 학생이었다. 내성적이라는 선생님의 평가는 나에게 무엇인가 부족하다는 말처럼 들려 내면의 열등감을 자극하곤 했다.
요즘 초등학교는 모둠수업이라는 교수방식을 도입해 수업하는 경우가 있다. 모둠별로 책상을 둥그렇게 배치해서 그 모둠에 속한 학생들이 협업을 통해 과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수업방식이다. 모둠활동에서 활발한 학생은 자신의 의견을 잘 개진하고, 주장도 강하기 때문에 자기의 의견이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 외향적인 성향의 학생이 주로 리드하는 수업방식이다.
학교생활을 잘하려면 사회성이 좋아야 한다는 근거가 모호한 주장을 정설인 것처럼 믿는 부모들이 있다. 그들은 종종 ‘수업 시간에 모르겠으면 무조건 손을 들고 물어보는 거야. 알겠지?’라고 아이들에게 주문한다. 학교에서 적극적으로 행동하라는 부모의 요구사항이다. 그런데 이게 사회성과 무슨 연관이 있는가? 아마도 외향적인 성향의 아이들이 사회성이 좋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점점 서구화의 물결을 받아들이면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로 변화하였다. 팀의 분위기를 돋구는 ‘활달한 성격’을 가진 직원은 회사라는 조직 생활에서 환영받는 존재이다. 활달하지 않고 내향적인 사람은 사회성이 부족하여 조직 생활에 적합하지 않다는 편견으로 연결되는 경우도 많다. 오히려 내향적인 사람이 업무성과는 더 좋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 같다.
아이의 사회성은 어디서 길러지는 것인가를 혼동하는 부모는 많다. 주로 학교나 유치원 같은 단체생활에서 동년배 아이들과 부딪히면서 배우는 것을 사회성이라고 생각하는 경우이다. 사회성은 타인과 원만하게 상호작용할 수 있고, 긍정적인 관계를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이 능력은 가정에서 부모로부터 처음 습득하는 것이다. 부모와의 관계에서 긍정적이고 상호작용이 잘 된다면 그 아이의 성향이 외향적이냐 내향적이냐에 관계없이 사회성이 잘 발달한 아이로 성장한다. 조용한 성향의 아이가 사회성이 부족할 거라는 생각은 편견이다.
“콰이어트(Quiet)”를 쓴 수전 케인이 TED(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과 관련한 강연회)에 나와 자신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내향적인 성격의 작가인 자신이 수년 동안 내향적인 성격에 대한 글을 썼는데, 오롯이 혼자서 작업하던 그 시간이 가장 행복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또 그녀는 이렇게 TED에 나와 자신의 책을 마케팅하기 위해 이야기하는 시간이 자기 성향과는 맞지 않아서 너무 힘들다고도 이야기했다. 아이와 나는 이 영상을 보면서 작가가 느끼는 마음을 100% 넘게 이해하며 공감했다.
“엄마는 어렸을 때 내성적이고 조용하다는 말을 듣는 것이 싫었어.”
“나도”
“그래서 내성적인 성격을 바꿔보려고 일부러 활발한 척도 하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려고 노력한 적도 있었어”
“나도 그랬는데...”
“그런데 지금은 나의 내성적인 성격이 마음에 들어”
아이는 0.5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나도 그래 엄마, 내성적인 성격의 내가 좋아”
좋은 대화였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