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동창을 만나면 빼놓지 않고 나오는 화제는 선생님에게 혼났던 이야기이다. 숙제를 안 해와서, 야자시간에 도망친 거 들켜서, 지난달보다 성적 떨어져서 등등... 선생님에게 매를 맞을 이유는 무궁무진하게 많았다. 선생님은 ‘사랑의 매’라고 쓰인 기다란 나무막대기를 들고 다니며 잘못한 아이들에게 체벌을 가했던 시절이었다. 그 어리고 예쁜 여학생들에게 뺨을 때리던 무지막지한 선생님은 이름도 잊어버리지 않고 지금까지 생생히 기억나 우리를 분노케 한다.
그 시절 체벌은 학교에서만 가해진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무엇을 잘못했는지 구체적으로 기억하지 못하지만, 부모에게 빗자루나 먼지털이 같은 걸로 맞았던 이야기를 무슨 훈장 받은 것처럼 늘어놓기 바쁘다. 또 지금은 빗자루로 맞는 아이들은 없으니 얼마나 사회가 변했나를 이야기한다. 그렇게 체벌에 노출됐던 아이들이 자라서 부모가 되었지만, 시대는 많이 변화하여 더 이상 자녀를 때리지 않을뿐더러, 이전보다는 아이를 인격적으로 대하는 부모가 많아졌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나는 어릴 때 엄마에게 맞았던 기억이 많다. 주로 내가 어떤 잘못을 했기 때문이겠지만, 동생들을 잘 건사하지 못해 시끄러운 문제가 생겼을 때 대표로 맞는 경우도 많았다. 돌보아야 할 아이들은 많고 부모는 바쁜 경우 맏이가 책임을 나눠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시절이라, 혼나는 것은 나에게 일상다반사였다. 변명할 기회도 없이 맞았거나 동생들의 잘못에 연대책임을 물어 혼났던 일들이 성장기의 나에게 상처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시기는 성인이 된 후로도 한참 지난 뒤였다. 하지만 나는 엄마에게 그때의 일을 아직 이야기해 본 적이 없다. 어렸을 때의 나는 엄마가 무서운 사람이었는데, 지금의 나이 들고 노쇠해진 엄마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나에게 너무나 다정하기 때문이다. ‘그때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분명해...’ 나는 가끔 이 다정함이 어색하여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다.
어릴 때 엄마를 무서운 존재로 느끼며 살았던 것이 싫어서, 나는 아이와 최대한 다정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다정하고 싶은 마음과는 별개로 육아는 훈육이 동반되어야 하는 것이고, 아이들은 가끔 부모의 머리꼭지를 돌게 하므로 나도 모르게 욱하는 마음이 올라오는 때가 있다. ‘세상에 맞을만한 일은 없다’라고 생각하며 아이를 키웠지만 정말 훈육의 의미로 ‘한 대 정도 때려야 말을 듣겠구나’하는 결심이 섰던 날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는 결심이다. 집에 아이를 때릴만한 매도 없는데, 장난감으로 사주었던 ‘스타워즈 광선검’이 손에 잡혔다. 몇 편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한 스타워즈 시리즈 영화가 개봉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을 것이다. 그 당시에 인기 좋은 장난감이었던 스타워즈 광선검은 손에 힘을 주어 펼치면 칼이 길어지고 사용하지 않을 때는 접을 수 있게 만들어져 있었다.
낮에 잘 가지고 놀던 장난감 칼로 한 대 맞은 아이는 징징 울면서 잘못했다고 빌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묻는 나에게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는 아이를 보면서 나는 ‘아차!’ 싶은 마음이 들었다. 오래전 나도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는 채로 엄마에게 맞았던 기억이 난 것이다. 아이가 잘못할 만한 일은 대개 사소한 것이다. 부모가 인내심을 조금만 발휘하면 말로 해결되는 일들이 대부분이지만, 그 순간을 참지 못하고 훈육을 가장하여 체벌하는 쉬운 방법을 선택한다. 말로 해서 듣지 않는 일은 매를 들어도 듣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아이를 키우려고 했었다. 체벌하지 않고 키우겠다는 나의 결심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 부끄러웠던 날이었다.
“엄마가 그때 스타워즈 광선검으로 나를 때렸잖아. 좋아하던 장난감이었는데 갑자기 매로 변했어. 미국서 이사 올 때 가져왔어야 했는데... 어디다 버렸나?”
아이는 지금도 한 번씩 그때의 일을 가지고 나를 놀린다. 부모가 잘해주었던 기억은 사라지고 없지만 혼났던 기억은 잊히지 않는다. 나처럼.
세상에 맞을만한 일은 어디에도 없다. ‘그 한 대도 때리지 말았어야 했어’라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