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편 방송에서 하는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예능 프로그램은 중년남성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한 프로그램이다. 어느 인터뷰에서 이 프로그램의 진행자는 자신도 이렇게 오랫동안 프로그램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는 말을 하였다. 기획의도가 단순하고 내용도 특별할 것이 없어 보이는 이 프로그램은 자연 속에서 혼자서 삶을 꾸려가는 사람을 1박 2일 동안 밀착취재하여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주로 산속이나 산기슭의 조그마한 집에서 부실해 보이는 재료를 사용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집에서 아주 불편하게 생활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어떤 출연자는 정말 혼자인 사람도 있지만, 산 아래나 도시에 가족이 살고 있는 사람도 있다.
이 프로그램은 특히 50대의 중장년 남성이 좋아하는 예능으로 종편 방송사의 효자이자 장수프로그램으로 정착한지 오래되었다. ‘나는 자연인이다’를 시청하면서 속세를 떠나 혼자서 유유자적하며 사는 자연인의 모습을 흠모하는 중년남성들은 점점 늘어갔다. 그에 반해 이 프로그램을 지독히 싫어하는 여성도 많다. 남편이 집에서 ‘나는 자연인이다’를 열심히 본다고 말하는 여성을 심심치 않게 만났다. 내 친구는 남편이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려고 채널을 돌리기만 해도 잔소리를 한다. 친구의 남편은 같이 TV를 보거나, 아내가 옆에 있을 때는 보지 않는 척하지만, 아내가 잠깐 마트라도 가면 살짝살짝 채널을 돌려 혼자 사는 남자의 생활을 넋 놓고 쳐다보고 있다고 한다. 친구는 가족도 버리고 직업도 없이 산속에서 자기 하고 싶은 대로만 사는 것이 그렇게 좋아 보이냐며 남편에 대한 타박이 끊이지 않는다. 친구의 한탄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자연인은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남자이어서 산속에 들어가 산다는 것이다.
그들이 TV에 출연하여 하는 일은 평소의 생활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강이나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거나 산에서 칡뿌리와 약초를 캐는 일, 채취한 재료를 사용하여 간단한 요리를 해서 먹고 잠자리에 든다. 하는 일이 조금씩 다르지만 큰 테두리에서 보면 대동소이하다. 중요한 지점은 자기들 마음이 내키는 대로 산다는 것! 누군가의 눈치를 볼 일도 없으며 시간을 정해놓고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오는 출연자는 실제로 무책임한 남자일 수 있고, 그저 자연에서 사는 삶을 좋아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또는 자본주의 세상의 경쟁 대오에서 낙오자가 되어 어쩔 수 없이 산에 들어가 사는 사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TV 속의 자연인을 부러운 듯이 쳐다보고 있는 남성의 대다수는 도시에 살고 있다. 그들은 무책임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중년의 나이에 이르기까지 성실하게 가족을 돌보는 중인 남성이 대다수일 것이다. 어쩌면 책임감이 넘치는 사람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동안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가족제도의 당위성에 매여 살아왔을 남성의 고단함이 느껴져 어쩐지 짠하다. 남자는 중년이 되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자기를 돌보지 못한 채로 살아왔던 시간을 자각하고, 조금은 자유로워도 괜찮을 것 같은 마음을 품는 것 같다. ‘그동안 가족들 먹여 살리느라 이만큼 애썼으니, 이제는 나도 산에 들어가서 여생을 자유롭고 홀가분하게 살고 싶어.’라는 속마음을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면서 내보이는 것일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이번생에 속세를 떠나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TV 속의 자유로운 남자들을 보면서 욕망을 해소하거나, 둘 중 하나이다.
TV 앞에서 자연인을 쳐다보며 동경하는 중년남성은 혼자서 산으로 가서 살지 못한다. 아들이 가끔 자신들의 집에 들러주기를 기다리는 부모가 있고, 저녁이면 집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아내가 있으며, 자식들은 아직 독립이 멀었다. 이 모든 바램을 외면하고 자연인으로 살기에는 아직 책임져야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하기에, 가끔 부담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을 그렇게라도 해소하는 것으로 생각해 본다. 여자들도 중년이 되면 친구들과 훌훌 여행을 떠나고 싶고,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어 하는 것처럼, 중년 남자도 지금과는 다른 삶에 대한 꿈을 꾸어보는 것이다. 그러니 퇴근해 들어와 ‘나는 자연인이다’를 쳐다보고 있는 남편을 너무 타박하지 말기를...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