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소개팅 나갔던 아들이 어제는 애프터를 하고 돌아왔다. 11시가 넘어 들어온 것을 보니, 애프터는 성공적이었나 보다. 그럼 삼프터, N프터 바로 가는 건가? 너무 오랫동안 여친 없이 살았는데 이게 웬일이야! 싶다. 재미있었냐고 물어보니 밥 먹고, 영화 보고, 카페 가서 이야기도 많이 했다고 하는데 정작 표정은 시큰둥하다. 더 이상 물어보지 않고 자러 들어가는데 아이가 나를 불렀다.
왜 항상 자신과 똑같은 성향의 여자들이 자기에게 호감을 느끼는지 궁금하다는 것이다. 자만추든 소개팅이든 항상 패턴이 같다고 한다. 이런 패턴을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에, 소개팅에 나온 여자와 10분만 이야기해 보면 ‘아 이 사람은 나에게 호감을 느끼겠구나’라고 금방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소개팅도 역시 자기와 똑같은 성격의 여자를 만났다고 한다.
“...나랑 똑같은 성향의 여자에게는 마음이 안 끌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여자들은 나에게 호감을 느끼지 않아. 이건 너무 비극적이지 않아?”
원래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 줄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를 냉정히 생각해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자신이 겪는 일이라 비극이다.
아들은 나를 닮아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낯을 가린다. 대화를 주도하기보다는 듣는 쪽에 강점이 있다. 자신은 약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사람의 성격이 같을 수는 없지만, 자신이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상대방도 비슷하게 가지고 있으니 만남이 부담스러운 것이다. 인간은 대체로 자신의 약점을 보완해 줄 만한 사람을 찾는다. 그래야 자신이 편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본성이 이기적이라 그렇다.
배우자 선택이론에서도 사람들은 짝을 선택할 때 자신과 완전히 다른 사람에게 본능적으로 끌린다고 한다. 인간은 원래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갈망하게 되어있다. 대화를 끌어 나가기보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 익숙한 사람은 자신이 조용하고 수동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센스있고 적극적이며 상황에 적절한 대화를 잘하는 상대방이 매력적이라고 느낀다.
남녀관계에서 인간이 쉬이 범하는 어리석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이다. 이는 욕망과 감정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남편은 나를 배려심 많고 친절하다고 생각하였지만, 내 안의 감추어진 나는 고집 세고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오만함이 존재한다. 나는 남편이 재기발랄하고 똑똑한 사람으로 여겨졌으나, 쉽게 싫증을 내는 면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내가 원하는 똑똑함과는 전혀 다른 유형이라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우리는 서로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면서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확신으로 흡족했다. 이 모든 엉클어짐을 정리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고 상대방을 향한 나의 감정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알게 되기까지 시간은 걸렸지만, 이런 과정은 모자랐던 인간이 조금씩 채워져 간다는 장점이 있다.
대학(大學)의 수신제가 편에 보면 “좋아하면서도 그 악함을 알고, 미워하면서도 그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은 천하에 매우 드물다.”는 말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글귀 중 하나다. 인간은 복잡한 생명체라서 다양한 본성을 가지고 있지만 처음부터 모든 것을 상대방에게 보여주는 일이 없다. 상대방의 모자란 면을 알면서도 좋아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옛날 어른들은 알고 있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걸 다 해낼 수 있는 사람은 드물지만 멋있는 사람이다. 다만 아직 20대의 혈기 방자한 청년이 알기에는 너무 심오한 진리일 뿐.
그래서 나는, “원래 사랑의 작대기는 엇갈리는 것이란다. 정말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지.”라고만 말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