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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cicle Jul 26. 2023

노숙자로 살아남기

1. 노숙자 A

작은 대학도시에 사는 노숙자 A가 있다. 그는 5년 전 내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부터 노숙자로 살고 있었다. 2년 전 다시 그곳을 방문했을 때 여전히 똑같은 장소에서 노숙하고 살고 있었다고 한다. 이 동네를 떠나오는 아침, 급식소에서 식사하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는 노숙자 A를 우리는 볼 수 있었다. 그는 하루종일 맥도날드나 학교 서점 앞에 앉아서 학생들에게 동전을 받아 생활하고 있다. 가끔 학생들이 햄버거나 감자튀김을 가지고 와서 같이 먹기도 하고, 그와 말동무를 해주기도 한다. 거리에서 사는 생활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 동네는 겨울이 거의 6개월에 가까운데 어떻게 혹독한 겨울을 나는지 궁금하다. 날씨가 좋은 동네의 노숙자보다 거리 생활의 난이도는 훨씬 높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5년을 한결같이 노숙자로 살고 있다는데 여전히 잘살고 있는 것을 보면 내가 걱정할 수준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2. 노숙자 B

‘시카고 아트 뮤지엄’앞 건널목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컵에 동전을 몇 개 넣고 흔들면서 구걸하는 노숙자가 있었다. 동전이 짤랑거리는 소리를 들으면 사람들이 한 번이라도 돌아본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는 한 사람이라도 컵에 동전을 넣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계속해서 짤랑짤랑 소리를 내고 있었다. 노숙자가 된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아침에 이미 노숙자 A를 보고 왔기 때문에 나는 노숙의 이유가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다. 어떤 노숙자는 거리의 삶을 당연한 자기 삶으로 받아들이므로, 열심히 노력하여 이 생활을 청산하고 새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플라스틱 컵에서 들리는 동전 소리는 너무 빈약했다. 대학타운에서 살고 있는 노숙자의 삶이 더 풍요로워 보였다. 바쁘게 지나다니는 도시인이나 관광객들은 노숙자에게 눈을 돌릴 시간이나 마음의 여유가 부족하다.


3. 내 생각

동전이나 작은 지폐가 있었다면, 오늘 나는 미술관 앞의 노숙자에게 돈을 주었을 것이다. 바람 불고 추운 날씨였고, 플라스틱 음료수통에는 동전이 몇 개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에게 현금이 없었다. 심지어 한국에서 환전을 해오지도 않았다. 오래전 사용하고 남아있던 100달러 지폐 한 장을 담아왔을 뿐이다. 모든 결제가 카드로 가능하고 애플페이의 나라이니 현금이 없는 것에 대해 걱정하지 않았다. 나만 그랬을까 싶다. 오늘 미술관 앞을 지나다니는 사람 중 현금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었을까. 동전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은 더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현금을 지니고 다니지 않게 되면서 지하철이나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소매치기가 없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소매치기도 사양산업이 된 지 오래다. 마찬가지로, 구걸을 하는 사람들의 삶도 더 고단해졌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들에게 정상적인 삶을 살라고 강요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면 노숙하면서도 삶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제는 노숙자가 구걸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오늘 미술관 앞 신호등에 서서 신용카드 단말기를 사용하는 노숙자에 대해 상상해보았다. 노숙자에게 자선을 베푸는 용도로만 사용할 수 있는 카드단말기를 제공한다면 구걸이 좀 더 쉬워질까? 아니면 토스나 카카오페이처럼 계좌번호를 적어 옷에 붙이고 다니는 것은 어떨까? 그렇다면 적어도 스마트폰 정도는 노숙자가 사용해야 하는데 모든 노숙자에게 오로지 구걸의 돈을 벌기 위해 스마트폰을 무료로 사용하도록 하기도 어려운 일인데.... 그들은 어떻게 이 사회에서 노숙자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어쩌다보니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지만 나에게 답이 있을 리 없다. 점점 현금 없는 사회가 되면서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인가 싶다. (2023.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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