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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cicle Jul 26. 2023

여행의 이유 2

시카고 다운타운의 한 호텔에 와 있다. 20층 창밖으로 시카고 강이라고 부르는 운하가 보인다. 배를 타고 시카고 건축물 투어에서 들은 정보에 의하면, 원래 시카고 강은 미시간 호수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는데, 8년 동안 강바닥을 파서 물길을 반대로 바꾸어 호수에서 운하 방향으로 물이 흘러가게 했다. 그 결과로 물이 찰랑찰랑하는 수량이 풍부한 강이 되어 주변의 빌딩과 어우러져 지금의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어 내고 수많은 배들이 드나들게 되었다고 한다. 영어로 듣기가 완벽하지 않은 내가 투어가이드의 이야기를 정확히 들었다는 가정하게 쓰는 정보이니 완벽하지은 않을지도 모른다. 바다라고 불러도 전혀 의심받지 않을 미시간 호수를 보고 있으니 좁은 나라에서 복닥거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조금 안되보였다. 태어날 때부터 부자인 친구를 바라보고 있는 기분이 잠시 들었다. 



오늘 아침 강변 산책을 하러 나갔다. 2차대전에 참전했던 잠수함의 부품으로 기념물을 만들고 설명을 붙여놓은 지점이 있었다. 위스콘신에서 28개의 잠수함을 만들고 미시간 호수를 통해 운반해서 지금 내가 산책하는 이곳, 시카고 강을 통과하여 미시시피강을 지나 미국 남쪽 바닷가까지 모든 잠수함을 운반했다는데, 극동의 조그마한 나라에서 나고 자란 나는 가늠이 잘 안되는 규모다. 그냥 조그마한 지도에 경로를 표시한 것만 언뜻 보아도 우리나라를 여러 번 왔다 갔다 한 거리보다 멀다. 어차피 바다에 띄우는 잠수함인데 대서양 나가기 쉬운 동쪽이나 남쪽 바닷가에서 만들지, 왜 북쪽 내륙에서 만들어 그 먼 길을 운반할 생각을 했는지 한편으로는 이해가 잘 안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내가 미국 사람도 아니고 여행자에 불과하니 그런 옛날 일에 쓸데없이 진지할 필요도 없다. 나는 미세먼지 없이 쾌적한 낯선 동네에서 산책하는 것으로 마음은 그지없이 흡족했다. 



여행지 호텔에서 잠시 생활하는 것은 일상의 시름을 잠시나마 잊어버리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시카고를 처음 방문한 것도 아닌데, 어제와 오늘은 시카고를 돌아다니면서 서울에서 부대끼던 복잡한 일들로부터 빗겨나 있는 현실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우선, 우리 동네 사거리마다 붙어있던 야만스러운데다, 분노마저 불러일으키는 정치적 비방이 섞인 구호를 써 갈긴 현수막들을 보지 않으니 좋다. 내 산책길을 오염시키는 것들로부터 떠나왔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몸담은 공동체의 한심한 의사결정과, 분열을 조장하는 이야기들을 듣지 않는 것만으로도 분노가 사라지고 마음이 평화로워짐을 느낀다. 또 살던 곳을 떠나 멀리 와보니 오랫동안 의미 없이 얽혀있어 세월을 낭비하는 관계를 되돌아보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왜 우리 조상님이 그렇게 ‘청산에 살어리랏다’를 노래했는지가 저절로 이해된다.



하지만 그렇게 관념적인 이유로만 여행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냉장고를 채우기 위해 마트에 가지 않아도 되는 생활이 며칠이라도 주어진 것에 감사한다. 내가 싫어하는 청소에서 잠시나마 해방된 것에 즐겁다. 일상의 흔적을 잠시나마 지우는 것만으로도 삶에 활력이 생기는 것을 느낀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근본적인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2023.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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