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의 어린이들이 읽는 위인전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이 링컨이라고 한다. 시카고에서 세 시간가량 남서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스프링필드라는 조그마한 도시가 나온다. 도시라고 부르기에는 민망한 규모이지만 미국의 중서부 내륙에 있는 도시들은 인구가 10만 정도 되는 소도시들이 대부분이다. 스프링필드로 가는 도로의 양옆은 지평선이 보이는 광활한 평지가 펼쳐지는 것이 특징이다. 그 드넓은 평지에 일리노이 농부들은 옥수수를 심는다. 일리노이주는 바로 옆에 있는 아이오와주와 더불어 옥수수를 가장 많이 재배한다.
어렸을 때 링컨 위인전에서 접한 ‘스프링필드’라는 도시를 나는 5년 전에 처음 가보았다. 스프링필드는 미국에서는 흔한 지명 중 하나로 시골 어디쯤 지나가다 보면 한 번씩 볼 수 있는 이름이다. 하지만 나에게 이 도시의 이름은 링컨을 통해 기억된다. 링컨은 원래 켄터키주에서 태어났지만, 스프링필드에서 성장하여 변호사가 되었다. 또한 정치를 시작하여 정치가로서 자신의 입지를 처음 세운 곳이기도 했으며, 암살된 후 이곳 스프링필드에 묻혔다.
스프링필드는 링컨의 이야기를 제외하면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다양한 볼거리가 있는 도시가 아니다. 그저 링컨의 위대한 일대기가 기록된 링컨박물관과 그의 묘지가 있는 곳이다. 위인전을 읽을 나이의 아이를 가진 부모들이 특별히 시간을 내어서 찾아오지 않는다면 이 도시를 들를 관광객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된다. 아! 미국의 풍요롭고 영광스러웠던 시절을 추억하며 찾아오는 애국심 많아 보이는 할머니 할아버지도 가끔 있다. 아이도 다 커버리고 미국 사람도 아닌 나는 그곳을 왜 찾아갔을까.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용문사 은행나무 아래서 노란 은행잎을 쓸고 있는 스님의 사진을 기억해 두었다가 대학생이 된 후 용문사를 찾아갔던 적이 있다. 나는 책에서 보았던 사진이나 글로 읽었던 장면이 내 머릿속에 각인되었을 때 그곳을 찾아가 보는 습성이 있다. 중학교 1학년 영어 교과서에 나온 ‘요세미티’라는 특이한 단어와 사진은 영어 선생님의 특이한 액센트와 함께 오랫동안 내 머릿속에 남았다. 2004년 여름, 나는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갔었다. 밤이면 곰이 나온다는, 텐트 안에 침대가 설치되어 있는 캠핑장에서 오들오들 떨면서 하룻밤을 지냈다.
나에게 ‘스프링필드’는 그런 방식으로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곳이다. 위인전 속의 소년 링컨이 통나무집에서 어렵게 살던 모습과, 청년이 되어 스프링필드라는 도시로 나와 자신의 미래를 개척하는 젊은 링컨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었다. 스프링필드에는 링컨이 살았던 집이 아직도 남아 사적으로 보존되고 있다. 어쩌면 내가 스프링필드를 방문한 것은 용문사 은행나무를 보러 갔을 때처럼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남북전쟁의 개시를 위해 사인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고뇌하는 모습은 박물관에서 만난 링컨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나는 또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머릿속에 남아있는 영화나 책의 한 장면을 위해 어떤 도시를 방문할지도 모른다. 그곳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배경이 된 애틀랜타와 사바나 같은 도시일 수도 있다. 또 나는 영화 ‘해리포터’를 추억하면서 스코틀랜드 하일랜드 지역을 찾아갈 수도 있다.
사람마다 여행의 취향은 다르다. 내 친구는 박물관과 미술관 둘러보는 것을 가장 좋아해서 고흐가 그렸다는 ‘아몬드’라는 작품 한 개를 보기 위해 암스테르담의 미술관을 가보고 싶어 한다. 방콕의 호텔에서 매일 늘어져 쉬다가 저녁이면 지하 쇼핑몰에서 맛집을 찾아 식사를 해결하고 다시 호텔에서 쉬는 여행을 하고 싶은 내 남편 같은 사람도 있다.
나는 그동안 여행에 어떤 취향을 가졌는지 생각하지 않고 살았었다. 그런데, 규칙적으로 글 쓰는 생활을 하다 보니 미처 생각하지 않고 있었던 나의 구체적인 취향들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음을 느낀다. 내가 상상의 나래를 펼쳐가면서 빠져들었던 책이나 영화 속에서 발견한 장소들을 찾아가, 그곳을 느끼는 여행을 나는 가장 좋아한다는 것을 이제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