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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cicle Jul 26. 2023

신들의 나라

하던 일을 줄이는 중이라고 하니, 친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여행계획을 짰다. 기존에 하던 일을 줄이는 거지 새로운 일을 안 하겠다는 말은 아닌데... ‘2주 연달아 해외를 나가는 호사를 부리는 시절이 드디어 나에게도 오는구나...’ 하지만 예전 같지 않은 체력으로 인해 피곤하기만 하다. 나의 여행에 10시 이전 체크아웃은 없었는데, 이번 여행은 아니었다.



7시 아침 식사와 8시 30분 출발을 기본으로 장착한 패키지여행은 장단점이 명확하다. 단점은 나의 여행 스타일에 반하는 모든 것이고, 장점은 제한된 시간 동안 생각보다 많은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통 가이드의 설명이 덧붙여진 여행이라 의도치 않게 일본에 대한 정보를 상당량 습득하였다는 좋은 점도 포함된다.



마지막 날 오전 ‘북해도 신궁’이라는 곳을 산책했다. 일본이 북해도 지역을 점령하고 자국의 영토로 합치는 과정에서 공로가 있는 개척자들을 신으로 모시는 신사였다가, 나중에 메이지 천황을 합사하여 신궁으로 격상시켰다고 한다. 일본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시기가 메이지 시대라니 그럴 만도 하였다.



일본은 무수한 신(神)들이 존재하는 나라이다. 일본의 천황은 그 무수한 신들의 가장 위에 있는 존엄한 신이라고 한다. 개명한 세상에 인간을 신이라고 믿고 사는 나라가 있다는 것에 놀라고, 천황 밑에 무수한 조무래기 신 중에는 고양이 신도 있으니 또 놀랐다. 모든 일본 사람이 천황을 진짜 신으로 생각하지는 않을 테지만, 국가적 차원에서 구심점이 필요한 일에 왕을 신격화하는 작업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짐작해 본다. 왜 일본에는 이렇게 사람에서 동물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신들이 많이 생겨났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지금도 땅속 깊은 곳에서는 용암이 흐르고 있으며 일 년에 수십 번의 강도 있는 지진이 발생하는 나라이다. 여름이면 우리나라를 통과할 것 같다가도 ‘다행스럽게’ 일본으로 경로를 틀었다는 뉴스 속의 주인공인 태풍은 또 어떤가... 일본은 자연재해의 나라임이 틀림없다. 북해도 어느 지역의 지표면은 용암이 곧 분출할 것처럼 뜨거워서 내일 지진이 나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모습으로 연기를 뿜어대고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위험한 지역에 온천을 하러 오는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대자연 앞에 인간이 얼마나 나약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인지를 일본 사람들은 우리보다 좀 더 빨리 깨우친 듯하다.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자연재해를 온몸으로 부딪히며 수백, 수천 년을 살아온 민족이라 어떤 미물이라도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그것에 의지했을 것 같다. 평범한 사람이 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을 이루어 낸 사람을 신으로 삼고, 그에게 자신의 안녕을 비는 일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지진이나 태풍같이 넘기 힘든 어려움을 제압하고 우뚝 선 사람은 전능한 존재로 여겨졌으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순신 장군을 자신들이 절대 넘어설 수 없는 존재로 생각하여 신(神)으로 받들었다는 이야기가 낭설이 아닌 것도 같다.



신들의 나라가 주변의 여러 나라를 식민지로 삼고 이를 발판 삼아 제국주의의 역사를 썼다. 북해도의 원주민 아이누족은 일본의 철저한 말살 정책에 의해 사라져 갔으며 지금은 러시아 땅이 된 사할린과 쿠릴열도에 소수가 살고 있다고 한다. 푸틴이 일본과 영토분쟁 이슈가 있는 사할린을 방문하여 아이누족의 외모가 자기네와 닮았는데 사할린이 어찌 일본 땅이겠느냐고 일갈하였다. 푸틴의 이같은 행동으로 일본은 최근 몇 년 사이 아이누족을 우대하는 여러 정책을 시작하였다는데, 아직 북해도에 생존해 살고있는 아이누족이 들으면 기가 막힐 일이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일본 사람들을 보고 노상 ‘쳐 죽일 왜놈들’이라고 불렀던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들이 섬기는 신은 일본만을 위한 신이며, 다른 민족을 위한 신은 아니다. 신이 그렇게 편협하고 옹졸하면 그게 신일까 싶다. 무수한 신들의 나라이지만 진정한 신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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