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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cicle Sep 18. 2023

인생, 살아보니 별거 없습디다

지하철 타고 신촌으로 오는데 재미있는 할머니 두 분을 만났다.

처음에는 할머니 한 분이 자리에 앉아계셨다. 바로 옆좌석에 빈자리가 생기니 두 걸음쯤 떨어진 곳에 서 있던 할머니가 얼른 와서 앉았다. 한 분이 불쑥 말을 꺼낸다.   

  

“나는 지금 딸네 집에 가는 중이요.”

“딸이 어디 사는데요?”

“의정부 사는데 이 모자 딸이 사준 거요.”

“우리 딸은 이 가방 사줬는데... 롯데백화점에서..”

.....


이 무슨 맥락 없는 대화인가.

그 뒤로도 오래전 아들 결혼식 날 있었던 이야기, 손녀 학교 다니는데 공부 잘한다는 이야기를 포함하여 어제 동대문시장 갔던 이야기까지 전혀 앞뒤가 없는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하고 계셨다. 놀라운 점은 두 할머니가 초면이었다는 것! 시청역이 가까워져 오자 할머니 한 분이 갑자기 내려야 한다며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별다른 인사도 없이 “나, 여기서 내리요.” 하고 한 분이 떠나셨다. 지하철 안의 대부분 사람이 스마트폰에 집중하고 있었으나, 오늘 처음 만난 두 할머니의 가정사에 나처럼 저절로 귀를 쫑긋하지 않았을까 싶다.     

오늘 지하철에서 처음 만난 사이에도 저렇게 스스럼없는 대화가 오고 갈 수 있는 용기(?)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엄마, 왜 모르는 애한테 말을 걸어.”     


엘리베이터에 같이 탄 아이에게 '지금 학교 가니'라고 물어보는 나를 보고 아들이 했던 말이 기억났다. 나도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구나... 젊은이들에게는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행동이 무례하게 보이지만, 한세월을 겪은 노인들에게는 친근한 대화가 될 수도 있다. ‘인생, 살아보니 별거 없습디다.’의 마인드를 장착하고 살게 될 나의 노년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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