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정정 Sep 05. 2016

사랑과 신뢰의 관계 <클로저,2004>

 처음 이 영화를 본 게 언제였더라. 잘 기억나지 않는다. 영화가 나온 지 꽤 된 것으로 아는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영화인 것 같다. 처음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나의 감상은 '씁쓸한 진짜 연애의 한 단면' 정도였던 것 같다. 그때는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상당수 사랑과 섹스의 관계에 집중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잤어, 안 잤어?"의 병적인 집착을 사랑을 바라보는 남자와 여자의 시각차이 정도로만 받아들였었던 것 같다. 남자에게 사랑은 곧 섹스이고 여자는 그렇지 않다. 라고 당시에는 판단했었다. 결국 영화 속에서 남자와 여자가 헤어지는 원인은 했냐, 안했냐로 귀결되기 때문에 그 당시엔 결국 남녀 관계엔 섹스만 남는 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내가 '씁쓸한 진짜 연애' 라고 영화 감상을 요약했던 이유다.  


 그러다가 문득 연극 <클로져>를 광고하는 인터넷 페이지에 적힌 안나의 대사 '남자는 결국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할때의 그 감정을 사랑하는 것이다.' 라는 말에 눈길이 가서 다시 영화를 찾아보게 되었다.  

막상 영화 속에 저 대사는 등장하지 않았다. 아마도 연극에만 나오는 대사인 듯 하다. 무엇보다 다시 본 <클로저>는 단순히 섹스와 사랑에 대한 얘기를 하고자 한 것이 아니었다. 연애를 씁쓸하게 묘사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런 남녀간의 감정도 물론 영화를 이루는 중요한 부분이지만, 궁극적으로 오늘 느낀 영화의 메시지는 '진실이 갖는 무게' 였다. 

 댄은 처음에 알리스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그래서 알리스가 하는 말은 무조건 다 '진실'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가 안나에게 버림 받고 다시 알리스에게 돌아갔을 때, 댄은 래리와 자지 않았다는 알리스를 믿지 않는다. 오히려 알리스가 아닌 래리의 말을 신뢰한다. 그래서 알리스가 래리와 잤을거라고 확신하며, 알리스에게 솔직히 얘기해 보라고 다그친다. 그리고 결국 "래리가 다 얘기했어. 빨리 사실대로 말해" 라는 절대 해선 안 될 말까지 해버린다. 알리스는 그래서 결국 댄을 떠나버리고 만다. 그리고 마침내 안나가 래리와의 이혼서류에 사인을 받아서 오자, 그는 너 래리랑 잤니? 그래서 좋았니? 라고 물어보며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안나의 말을 믿지 않는다.  


 알리스는 댄에게 거짓말을 했다. 자신의 이름을 속인 것이다. 댄에게 들려줬다는 자신의 얘기도 어쩌면 전부 거짓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정말로 댄을 사랑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정작 자신은 이름마저 속이고 자기가 누군지 제대로 말한 적도 없으면서. 



 안나는 댄에게 끌리고 있으면서도 그걸 부정했다. 하지만 자신을 속일 수는 없는 법. 안나는 계속해서 남자친구인 래리 몰래 댄을 만났고, 결국 래리와 결혼한 이후에도 댄을 만나다가, 스스로 결혼 생활을 망쳐버린다. 안나가 마지막으로 래리를 만났을 때, 그녀는 래리의 부탁을 들어주고 래리와의 관계를 끝내려고 한다. 그리고선 댄에게 돌아가 래리와 딱 한번 마지막으로 잔 것 뿐이고, 사실 내가 사랑하는건 너라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이혼서류를 접수하지 않았고 결국엔 래리에게로 돌아간다. 


 래리는 거짓말에 속아 수족관으로 나가고 거기서 안나를 만난다. 그리고 안나와 사귀게 된다. 출장에 가서 창녀와 바람을 피웠다고 그가 고백할때, 불안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던 안나는 댄과 몰래 만났던 것을 고백한다. 댄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안나에게 그는 계속 말하기 싫은 진실을 말하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진실을 알고도 그는 안나에게 돌아와 달라고 빈다. 안나가 자신의 뜻대로 돌아온 후, 그는 댄의 물음에 없는 말을 지어서 한다.  


 <closer>속 네 남녀처럼, 많은 사람들이 진실을 알면서도 그걸 외면하고, 스스로를 속인다. 진실을 알면서도 그걸 왜곡해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또 진실이 눈앞에 있는데도 보지 않고 오히려 말도 안되는 거짓말들을 너무 쉽게 믿어버린다. 그러면서 자신은 항상 진실을 알고 싶다고 얘기한다. 가끔은 진실을 숨기고 거짓으로 일관하기도 한다. 또 중요한 진실은 정작 숨기면서도 상대가 나의 진심을 봐주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사랑에는 진실을 기반으로 한 신뢰가 절대적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연인을 믿지 못하는데, 그 관계과 과연 지속될 수 있을까? 연애 초기에 많은 커플들이 싸우는 이유도 서로에 대한 신뢰가 충분히 쌓이지 않아서라고 생각한다. 상대가 정말 날 사랑하는지 알 수 없고 아주 작은 실수에도 상대가 떠날까봐 두렵다. 하지만 무엇을 믿을 것이고, 무엇을 믿지 않을 것인가? 우리는 때로 보고 싶은 것만을 진실이라 믿으려고 하는지 모른다. 아무런 의미 없는 사소한 행동을 확대 해석해서 오해하고, 상대를 비난하고, 결국 너를 위하는 거야 라는 허울 좋은 변명으로 상처 주고... 


 네명의 남녀를 보면서 다시 한번 사랑으로 맺어지는 이 관계에 대해 생각한다. 누군가를 만나 헤어지는 그 과정이 너무 쉽게 이루어 지는 것은 아닌지, 내가 버린 그 관계에 혹시 내가 보지 못하고 지나친 중요한 진실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지 말이다. 실체가 없는 '사랑'을 그냥 믿는 것은 사실 무척 힘든 일이다. 그런데 정말 사랑이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작은 손짓, 짧은 말 한마디에도 그건 무척 쉽게 담긴다. 그리고 그걸 발견하는 것이 바로 언제나 외로움 속에서 사랑을 찾고자 하는 우리에게 남겨진 몫인 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