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그냥 가만히 있어(feat. 남진)

그러면 2등이라도 하지

나는 차이지 못했다. 아니 그 새끼가 나를 차려고 했는데 못 찼다. 나는 지금 불쾌하다. 상당히 기분이 나쁘다. 도대체 임원들이 뭘 어떻게 결정한건지 나는 이 망할 부서에 남게 되었다. 처음에는 남아서 본부장을 더 멕일 생각에 신이 났지만 지금은 내가 엿을 먹고 있다. 이러다 비싸게 해 넣은 금니 떨어질 정도로. 

본부장 뜻대로는 안됐지만, 2명이 휴직하는 관계로 우리 팀에는 과장님 한분이 오셨다. 나는 같이 일해본 적은 없지만 지켜본 바로는 꼼꼼하고 사람들과 관계도 좋아 보였던 것 같다. 그리고 적극적이고 같은 팀으로 일하기에 나쁘지 않은 정도? 

어제 그 분이 우리 부서로 정식 발령이 되어 처음으로 같이 회의를 했는데, 본부장은 뭐가 그리 신이 났는지 하지도 못할 일들을 또 혼자서 막 구상하고 자빠져 있었더랬다. 지 말로는 이제부터는 좀 기지개를 켜고 일을 한다던데 그럼 그동안 나는?? 일을 시켜먹기에 부족했던 것인가? 업무 능력으로는 우리 회사 그 누구와 견주어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데, 그 분이 느끼기엔 부족했던가 보다. 뭐 아무튼 본부장의 장황한 미래 계획을 한시간여 얘기해 주셨다. 

사실 우리 부서는 기존에 인원이 4명 정도인 팀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루틴한 업무가 있었다. 그리고 회장님도 적극적으로 이 팀을 밀어주기 원하셨기 때문에 그 당시 팀장으로 우리 본부장을 데려온 것이고, 시작은 굉장히 창대했다. 그러다가 루틴한 업무가 다른 팀으로 이관되면서 여기에는 단순 지원 업무만 남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스스로 그 존재의 의미를 증명해야 하는 이상한 팀이 되어버렸다. 본부장은 자기가 야전 사령관처럼 열심히 싸워서 일군 팀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본인의 지위를 위한 싸움이었던 것 같다. 이 부서가 없어지면 결국 자신의 지위도 없어지니까.

그래서 본부장이 저렇게 창대한 계획을 세우는 것도 이해가 된다. 우리 팀은 까딱하면 '저 팀 왜 있는거야?'라는 말을 듣기 쉬우니 말이다. 하... 그런데 그 계획들이  본인이 머리를 쓰거나 일을 하는 건 하나도 없고 다 다른 사람들이 일 한거 본인은 감독만 하고 총괄만 하겠다고 하니 일 해야 하는 사람으로선 짜증이 나는거다. 그럼 지는 뭐하는데? 그리고 총괄을 하는 사람의 역할은 결국 코멘트를 제대로 해 주는 것일텐데 나한텐 평소에 코멘트 하는걸 보면 안 주거나 주더라도 정말 아무 통찰력이라곤 없는 것들 뿐. 지가 해야 할 일은 안 하고, 안해도 되는 일만 ㅈ나게 열심히 하니까 같이 일하기 ㅈ같은 것이다.

그래서 내가 재택근무인 오늘부터 갑자기 새로 온 과장에게 폭풍 업무지시를 다다다 했는지 내게 폭풍 카톡이 와 있었다. 난 사실 오늘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 휴가를 쓰려고 했는데 쉬지도 못하고 자료 찾느라고 여유로웠을 오전 시간을 다 날려버렸다. 지가 뭘 하고 있고, 앞으로 뭘 할건지, 그럴 땐 지 계획을 하나도 말을 안해주고, 정작 지금처럼 뭘 위해 뭘 찾아서 뭘 해야하는지 알려줘야 할 때는 대충 몇마디 질문으로 뭉개버린다. 내가 그걸 다 외우고 있는 것도 아닌데, 물어보고, 그 다음에는 안 찾길래 까먹고 있으면, 다시 갑자기 다시 물어봐서 또 당황하는.... 차라리 내가 바로 못 찾으면 언제까지 정확히 확인해서 알려달라고 하던가. 그리고 심지어 자기도 내용을 기억을 못해서 나한테 묻는 거니 환장한다.

마이크로 매니징을 하고 싶어하는데 지가 정작 밑에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고 있고, 보고 받은 것도 까먹어버리니 마이크로는 커녕 매니징도 안된다. 근데 맨날 필요도 없는거 묻고, 확인 하라고 하고, 직원들이 뭐 업무 통화라도 하면 엿듣고 있다가 그거 뭐냐고 물어보고. 시어머니도 이것보다는 나을거 같다. 그냥 모두를 위해 가만히 있어야 하는 분이다. 제발 너는 가마이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