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우울한 게 죄는 아니잖아
웃기고 재미있는 이야기만 쓰고 싶은데, 사람이 어떻게 맨날 웃기고 즐겁기만 하겠는가. 지난주는 즐거웠는데, 이번 주는 별로다. 주말에는 작사 숙제로 내가 쓴 가사에 음정을 넣어 노래를 완성하기도 했다. 막상 해보니까 노래를 만든다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어서 신이 났다. 물론 더 많은 사람들이 들어주고 좋아해 주면 더 신이 날 것 같았다. 이 맛에 가수들이 힘들어도 음악하고, 공연하고 싶어하는구나 싶었다.
그런 의미로 올해는 너무 슬픈 해였다. 공연이 하나도 없어서. 봄, 가을이면 기분 전환으로 락페 한번씩 가주는 게 인생의 낙이었는데, 락페는 커녕 단독 콘서트도 하나도 못갔다. 뮤지컬 한번 본 게 문화생활의 전부였다. 문화생활을 못 하는게 이렇게까지 사람을 힘들게 할 수도 있구나. 그래서 하반기에 신청한 작사 클래스는 너무 큰 도움이 됐다. 음악 얘기를 남들과 하는 게 얼마만인지...
그렇게 노래도 완성하고 버킷 리스트에서 하나를 또 지웠으니 행복하기만 해야할 것 같은데 오늘은 왠지 너무 우울하다. 언제 이런 우울함을 느끼는걸까, 생각해봤더니 외롭다고 느낄 때인 것 같다. 몇백명이 있는 카톡 친구 리스트 중에 지금 이런 내 마음을 얘기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같을 때. 남편과의 카톡방 말고 다른 방은 조용할 때. 그나마 가장 얘기를 많이 하는 남편도 바빠서 대화를 할 수 없을 때. 사무실에서 그냥 조용히 지금처럼 일만 해야 할 때.
지금 사무실은 특히나 파티션이 높은 데다가 좁아서 더더욱 고립된 느낌이 많이 든다. 사람 없는 산 속 암자 같이 조용해서 옆자리 동료랑 일하다 말고 한두마디씩 수다도 떨 수가 없다. 가끔씩 내가 느끼던 사람 사이의 온기가 이럴 때는 정말로 원래부터 없었던 게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든다.
누구에게 연락을 해볼까, 한명 한명 떠올리다가 친구들에게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가, 문득 갑자기 '죽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순간 죽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유서처럼 글 하나 남기고. 고마웠어. 다들 잘 지내. 그리고 그냥 그대로 사라지는 거다. 점심을 사러 바깥에 나오니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한 하늘이 그런 기분을 더욱 부추겼다. 나에게 힘내라고 말하는 사람들 모두 사실은 이제 다들 지친게 아닐까. 그러니 차라리 오늘 내가 사라지는 게 낫지 않을까.
그래도 오늘 죽기에는 이따가 미용실 예약한 게 있어서, 내일은 재택근무라 집에서 편하게 있을 수 있어서 일단 당장 죽는 것은 보류하기로 한다. 집에 있어 보면 마음이 바뀔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나와버린 것이 정말 맞는 일일까. 다시 들어가고 싶지만 그러기엔 또 마음에 걸리는 것도 있고, 무엇보다 나에게 예의 말고는 남은 게 없는 것 같은 그 사람들을 다시 마주할 자신이 없다. 서로 웃고 즐겁게 보냈던 시간은 이제 영원히 다 끝나버린 것 같다. 그래서 아무 일도 없었던 척 다시 돌아갈 자신이 없다.
'극단적 선택' 이 말은 틀렸다. 하나 이상의 선택지가 있어야 그 중에 하나로 자살을 선택한 것일텐데, 자살을 하는 사람들한테 자살 말고 다른 선택지가 과연 있었을까. 힘내라는 말 보다는 곁에 있어주어 고맙다는 말이 간절한 날. 그래도 '살아 돌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