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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정 Jan 05. 2018

우리는 그 시절을 견딜 수 있을까? <남영동 1985>

영화 <1987>을 아직 보지는 않았지만, 요즘 많이 회자되는 것 같다. 아직 보지 못했었는데, 얼마 전에 케이블 영화채널에서 <1987>개봉과 더불어 <남영동 1985>를 틀어줘서 이 영화에 대해서 한번 생각을 해보려고 한다. 사실 개봉했을 때 극장에서 봤었는데, 당시에는 영화사를 다니고 있어서 극장에 가야한다는 의무감으로 본 영화였다. 어떤 역사적인 인식 때문에 본 건 아니었다. 워낙 상영관도 희귀했고, 극장 안에 사람도 별로 없었던 게 기억이 난다. 영화룰 보고 나서는 고문 장면들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의미를 별로 떠올려 볼 생각조차 못했었다.

80년대 민주화운동사를 다룬 영화들은 으레 독재 세력을 절대 악으로 그에 맞서는 민주화 세력을 절대 선처럼 묘사하곤 한다. <남영동 1985>도 그 연장선 상에 있지만, 단순히 그것만으로는 이 영화 속의 인물들을 정의할 수 없는 것 같다. 이런 점에서 <1987>과 비슷한 점이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고문 기술자 이근안과 당시 안기부의 과장 그리고 그 밑에 부하 경찰들은 악의 세력을 대표한다기 보다 물리적 폭력에 굴복하여 자기 신념을 버린 사람들로 묘사 된다.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폭력을 행사하긴 하지만, 그건 그 사람들이 악한 사람들이라서기 보다는 그 사람들 나름의 살 길을 찾기 위함이다. 이를 드러내듯 그들은 시종일관 진급 걱정을 하거나 윗사람의 눈치를 본다. 자백을 받아내는 기술도 고급스럽지 못하고 앞뒤도 안 맞지만 일단 자백을 강요한다. 그들은 정말 사람들을 고문하는 일이 나쁜 일이라는 건 알지만,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고문 경찰들이 좀 어수룩하고 인간적인 면이 있는것 처럼 묘사되는데 반해, 그들이 행하는 고문의 정도는 상상 이상으로 끔찍하고 사실적이다. 이는 영화가 관객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기 위한 장치인 것처럼 보인다. 당신이라면? 당신이라면 이런 고문을 정말 버텨낼 수 있는가? 고문에 맞서서 정말 끝까지 진실을 추구할 자신이 있는가? 당신은 누구 편에 서겠는가?



영화를 다시 보면서 내가 나 자신에게 놀랐던 건, 고문하는 자들이 시키는대로 제대로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주인공에게 내가 나도 모르게 답답함을 표출했다는 것이었다. 결국 나도 그 경찰들처럼 권위 앞에서 쉽게 내 신념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적당히 원하는 대로 내 선배들의 이름을 배후라고 적고, 그 사람이 어찌되든 그 순간만 모면하면 되는 사람. 그래서 스스로에게 실망스러우면서도 놀라웠다. 

영화는 그런 인간의 의식의 흐름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강한 신념을 가진 사람이 점점 폭력에 길들여지면서, 결국 자기 신념을 포기하는 의식의 흐름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평소에 독재 세력을 그렇게 욕하던 내가 고문 장면을 보고서는 '바보야! 그렇게 말하면 안되지!'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처럼, 완강히 자백을 거부하던 김종태도 결국에는 동료의 이름을 팔아 남영동 대공분실을 벗어나게 된다.

당연히 우리는 김종태를 비난해서는 안된다. 그 상황에선 누구라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을테니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가득 채우는 김종태의 눈빛, 분노와 원망이 섞인 것처럼 보이는 그 눈빛은 마치 '당신은 뭐가 그렇게 당당해?' 라고 묻고 있는 것 같다. 누구라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너무 쉽게 인정하는 우리에게 보내는 경고 같기도 하다. 

1980년 5월 18일 이후 대낮에 금남로에 나갈 수가 없었다고 토로하는 분들의 인터뷰를 많이 보았다. 그런데 아픈 역사는 아직도 청산되지 않고 우리 삶에 기생하며 다른 형태의 폭력으로 활개를 치고 있다. 하루가 멀다하고 듣는 성희롱, 여성혐오, 동성애자혐오 등 이제 주위에 너무나 만연해서 폭력인 줄 알면서도 폭력이라고 정의 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폭력을 마주하면서 나는 침묵할 뿐, 아무 저항도 할 수 없다. 그래서일까? 마지막 장면에서는 그를 마주하지 못하고 나도 모르게 채널을 돌리고 말았다. 너무 부끄러워서. 이런 내 자신이 너무 한심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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