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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정 Dec 27. 2020

괴롭힘은 맞지만 처벌은 안된다

법은 무얼 위해 존재하는지

자료를 모아 본부장을 인사팀에 고발했다. 직장내 괴롭힘 가해자로. 회사에서 돌아온 답은 휴직을 하기로 했으니 휴직을 좀 더 빨리 하라는 것이었다. 그럼 그만큼 깎이는 내 급여는 누가 보상해주는데? 아무도 이 질문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건 단 하나, 복직 후에 바로 인사발령을 내 달라는 것이었는데 이것마저도 확실하게 들어줄 수는 없다고 했다. 


내가 주되게 괴롭힘이라 주장한 것은 업무 배제였다. 휴직을 하겠다고 한 날부터 꾸준히 이어지던 업무 배제. 폭언. 그리고 의미를 알 수 없는 모니터링이라는 업무(=아침마다 문안인사 하기). 인사팀의 미적지근한 대처가 맘에 안 들어 고발이 가능할 지 한줌밖에 안되는 증거를 모아 노무사와 노동감찰관 지인에게 자문을 구했다. 둘 다 공통되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것이 맞지만, 그걸 법적으로 괴롭힘으로 보기에는 반박의 여지가 많다고 했다. 끝까지 가려면 갈 수도 있겠지만, 회사에서도 충분히 방어할 여지가 있기 때문에 아마 내가 더 괴로워질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냥 더 이상 견디는 것이 힘들어 본부장에게 금요일까지만 나오겠다고 통보했다.


인사팀에선 설상 가상으로 나와의 면담 내용을 본부장에게 흘린건지 어쩐건지 내가 통보하자마자 인사팀에 갔다 오더니 나에게 유튜브 영상 화면을 타이핑 하는 업무를 새로 시켰다. 그리고 다른 직원들에게 내가 자신을 나쁜사람으로 만들려고 한다고 소문을 내고 다녔다. 게다가 내가 모르는 괴롭힘도 더 있었다. 그냥 마음으로만 날 싫어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진짜였다는 것을 확인하니 혼란스러웠다. 난 정말 그 인간 때문에 괴로운데, 나는 그 사람한테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게 없다니 억울하기도 했다. 또 당황스러웠다. 내가 해 낸 업무의 퀄리티가 맘에 들지 않으면 그에 대해 피드백 하면 되고, 내가 휴직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면 자신이 배려해 줄테니 계속 다니는게 어떠냐고 권유했으면 된다. 하지만 그 사람은 나를 팀에서 몰아내고 싶었기 때문에 나한테 그러지 않았다. 그러면서 내가 일을 못한다느니 하면서 나를 깎아내렸다. 아무 이유 없이. 


나중에 나중에야 돌아보니 내가 자기에게 굽신거리지 않은 것, 나를 그토록 자기 팀에서 쫓아내고 싶을 정도로 싫어한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 뿐이다. 그의 권위적인 행보는 날이 갈수록 가관이었다. 2.5단계 격상 이후 별관 근무 직원들에게 재택을 시키지 않고, 억지로 출근시키는 바람에 거기서 코로나 확진자가 3명이나 나왔다. 회사가 그 사람들을 방치했고, 그 사람들은 지시에 따랐을 뿐인데 확진자가 되어버렸다. 모두 다 그 본부장 한명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국민 신문고에 민원이라도 넣어서 마지막에 엿을 먹일까 싶었는데 그것도 여의치 않아 포기했다. 언젠가 몇개월 뒤에는 다시 그곳에 돌아가야 할텐데, 괴롭힘 가해자가 되기는 싫으니 예전처럼 나한테 대놓고 뭐라고는 못하겠지만 그 끔찍한 사람과 다시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게 걱정은 된다. 마지막 수단은 결국 그만 두는 것인데, 그 인간 때문에 그만 두는 건 사실 나도 정말 원치 않는다. 그리고 한번이라도, 울어도 좋으니 그 사람한테 그렇게 인생 살지 말라고 얘기 하고 싶다. 


정신과 진료를 받으면서 진짜 와야 될 사람들은 안 오고 그 사람들 때문에 멀쩡한 사람들이 병에 걸려 정신과에 간다고 친구에게 우스갯 소리를 했다. 친구는 자기 인식이 잘 되기 때문에 정신과에 다니는 것이라고, 그 사람들은 자신이 뭘 잘못하는지 어디가 문제인지 돌아보지도 않으니 진료 받을 생각도 못하는 거라고 했다. 본부장은 사실 내가 저주하고 악다구니 쓰지 않아도 충분히 불행해 보인다. 


어디서도 제대로 된 인정을 받지 못하니 직위와 의전에 집착하는 것이고, 능력이 없으니 더 좋은 회사로 가지 못하는 것이다. 여기서 코딱지만큼의 권위를 인정받으면서 자기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계속 주문을 거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얼마나 눈엣가시였는가. 자기가 시킨 거 제대로 안 하는데. 지는 심지어 아무 일도 안하고 업무시간 내내 주식만 보면서. 


그러니 굳세어라, 정다혜! 이미 네가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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