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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정 Feb 03. 2021

인간이 변하기도 하는구나

휴직하니까 사랑둥이가 되어가네

여태까지의 내 글들을 꾸준히 읽은 사람이라면 내가 염세적이고 만사에 부정적인 사람임을 조금은 파악하셨으리라 믿는다. 그런데 휴직을 하고 나니까 갑자기 마음이 따뜻해지고 작은 일에도 공감하고 슬퍼하고 눈물 흘리고 남한테 따스한 말도 건낼 줄 아는 사랑둥이가 되어버렸다. 가끔 스스로의 그런 변화에 소름이 끼치기도 하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들을 조금은 위로하는 따뜻하고 좋은 변화니까 지금 이 순간을 즐겨 보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갑자기 '지금 너 그대로도 괜찮아' 이런 책을 사다 읽는 건 아니니까. 


휴직이란 무엇일까. 무엇이길래 인간을 이렇게 180도 바꿔 놓는가. 지난 휴직 때는 대체자가 없어서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았다. 계속 업무 카톡이 오고, 그리고 일 때문에 쉰 거지 사람 때문에 쉰게 아니니까 힘들어도 빨리 복직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쉬는 게 동료들한테 미안했다. 근데 지금은 사람 때문에 쉬는 거니까 누구한테 미안할 일도 없고, 매일매일 즐겁기만 하다. 그리고 나를 힘들게 한 사람에 대해서 조금 멀리서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회사에 다닐 때는 너무 너무 열받고 다 부숴버리고 싶던 일들이 휴직을 하고 생각해보니까 별거 아닌 걸로 보이고, 무섭고 불안하기까지 했던 본부장의 미친 성격도 그냥 '싸패'라는 한마디로 정리 되면서 받아들일만한 것이 되었다. 


오늘 나를 포함한 여러 사람들을 참여자로 한 논문이 나와서 구경했는데, 뭐랄까 그 사람들과 함께 했던 연대기를 읽는 것 같았다. 나도 그 집단의 구성원들에게 알 수 없는 내적 친밀감을 갖고 있었는데, 그것들을 그 논문을 읽으면서 함께 의미화 하고 되돌아 보게 됐다. 논문이 이렇게도 쓰일수가 있다는게 신기하면서도 이 글을 완성한 사람에게 존경의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 '내가 과연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까지 생각이 미쳤다. 


아마도 쓸 수는 있을 것이다. 대학원 수업을 들을 때 직장에 쓴 에너지가 한 20% 정도라면 50% 정도는 대학원에 쓰고 30%은 대학원 이외의 것들을 하며 보낸 것 같다. 그 또한 진짜 진짜 과로였다. 학년 올라가고 전공 종합 시험을 볼 때쯤엔 좀비가 되어있었다. 그냥 딱 수업 듣고 페이퍼 쓰고, 과제하고 시험 보는 정도. 내 에너지는 거기 까지 인 것 같다. 논문을 쓰려면 100%를 다 논문에만 투자해야 될 것 같은데, 물론 그렇게 해 볼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러기엔 일단 운동을 열심히 해야되고, 음악도 좀 해야되고, 글도 가끔 써야되고 영화도 봐야 하기 때문에 어려울 것 같다. 


내가 사랑둥이가 된 건 역시 일과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낭비했던 에너지가 충전돼서 였나보다. 내가 휴직을 하고 이런 저런걸 하고 있다고 하면 의사 선생님이 나보고 맨날 대단하다고 한다. 에너지가 많으시다고. 내가 스스로도 '와, 내가 이렇게 부지런했나.' 싶을 정도로 가끔 진짜 장하기도 하다. 그 에너지를 다른 사람들을 아끼고 보듬어 주는 데도 조금은 사용할 수 있게되지 않았나 싶다. 논문을 쓸 정도로 많은 건 아니지만, 사람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내는 정도까지는 이제 충전이 된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복직하면 본부장에게 따뜻함을 건낼거냐 하면 그건 당연히 아니지 말입니다. 오늘 카카오톡 업데이트를 하니까 '멀티 프로필'이라는 신기한 기능이 생겼던데, 친구별로 프로필을 따로 설정할 수 있는 기능이었다. 카톡으로 주로 업무를 하는 사람들한텐 완전 꼭 필요한 기능일 것 같다. 나도 회사 사람들, 시s, 그리고 뭔가 내 시시각각의 느낌과 근황을 공유하기 싫은 사람들을 따로 빈 사진 프로필로 보내버렸다. 당연히 본부장도 거기에 포함이 되었는데, 상태 메시지가 뭐더라.. 지금 자기에게 가진 것에 감사하자 뭐 이딴거던데...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가운데 손가락이 모니터로 향했다. 직감적으로 느낀건데 대뇌 반사가 아니 척수 반사였다. 


지금 나 대신 우리 부서에서 ㅈ뺑이 치고 있는 동료의 얘기를 들어보면 기도 안 찬다. 여기에 조금 썼던거 같기도 한데, 그냥 그 사람은 내게 했던 짓을 이번엔 그 동료한테 똑같이 하고 있다. 이그.. 사람을 괴롭히려면 이래서 머리가 좋아야 된다. 같은 방식을 쓰면 증인이 한명 추가돼서 법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데 말이다. 이젠 그냥 사랑의 소중함을 모르는 그 사람이 불쌍하다.


이모티콘과 찰떡인 대사. 아 물론 내가 실제로 한 말임. (사진설명: 울먹이는 캐릭터 밑에 말풍선으로 "사랑의 소중함을 모르는 당신은 불쌍해여" 라고 쓰여있다)


2021년을 맞이하면서 나는 김강선처럼, 안은영처럼 사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김강선과 안은영 같은 삶이 뭐냐면, 그냥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고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삶이다. 누가 좀 ㅈ같이 굴더라도 뭐 어쩌겠냐.. ㅅㅂ 피할 수 없음 당해야지. 이런 식으로 사는 삶이다. 복직하면 분명 ㅈ같은 본부장은 또 나한테 ㅈ같은 것만 시킬거다. 근데 뭐 어쩌겠냐... 난 본부장이 아닌데. 피할 수 없으면 당해야지. 이게 무기력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당한다는 게 어찌 보면 맞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도망칠 수 없으면 어째, 맞서야지. 나한텐 이런 말로 느껴진다. 


요가원에 갔더니 선생님이 새해 계획은 잘 지키고 있냐고 해서 자신있게 지킨다고 대답했다. 계획이 뭐였냐면 타투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새해가 되자마자 예약을 해서 오른팔에 딱. 선생님은 뭔가 꾸준하게 지키는 걸 물어보셨던건데 내가 저렇게 대답해서 당황하셨다. 사람이 변하면 죽는다고 하던데, 그럼 난 지금 죽을때가 된걸까? 이젠 뭐가 되려고 애쓰지 않아도, 자꾸 뭔가 배우고 공부하려고 하지 않아도, 그냥 가만히 이렇게 키보드만 두드리고 있어도 행복... 행복한 것 같다. 논문 완성이나 책 100권 읽기 같은 계획은 없지만, 그냥 오늘 봉숭아 물 들이고, 친구를 초대해서(5인 미만) 맛있는 요리 해주고, 내일 뭐 먹을 지 생각하고, 빨래 돌리고, 스팀청소 하고, 쓰레기 내 놓고, 산책 하면서 새로 생긴 가게 없나 돌아다니는 정도의 계획. 앞으로 내 인생은 딱 요 정도의 계획들만 있어도 재밌을 것 같다. 


나는 영원히 행복해 질 수 없을 줄 알았는데, 내 입에서 행복하다는 소리가 나오는 요즘. 휴직자는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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