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나이게 하는 것
태어나서 가장 심하게 맞았던 게 중2때다. 토요일이었는데 전날에도 청소 시켜놓고 또 나보고 청소 당번을 하래서 짜증을 냈다가 담임선생님한테 볼따구를 후드려 맞았다. 음, 정확히는 볼을 꼬집어 나를 내던졌다고 해야할까? 이후로도 매를 맞은 것은 수차례. 하지만 이런 폭력은 목소리 크고 불만이 많은 나를 잠재우지 못했다. 고1때 였다. 종례시간이었나.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는데 어떤 반은 '오션뷰'에서 자고 우리 반은 '시티뷰'에서 자야 한다는 얘길 하셨다. 마치 거룩한 희생인양 얘기했지만, 담임새끼가 제비뽑기를 잘못했겠지. "똑같은 돈을 냈는데, 왜 우리만 시티뷰에요?" 당연한 소리를 했는데 반 분위기가 일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담임은 폭력교사로 유명했지만, 공부 잘하는 애는 안 때렸다. 다행히 나는 그때 반에서 3등이었기 때문에 얻어맞지는 않았다. 고3때는 엄마한테 사관학교를 가겠다고 했다가 만류를 당했다. "너같은 반동분자는 그런 데 가면 안돼." 엄마 말이 딱 맞았다. 난 반동분자다.
다행이다. 6공화국에 태어나서. 군사 독재 시절에 살았으면 높은 확률로 쥐도 새도 모르게 요절 당했을 것이다. 여자로 태어난 것도 다행이다. 남자로 태어났으면 남성 주류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높은 확률로 자살했을 것이다. 그냥 '네'라고 하면 되는 일, 반동분자는 그런 일을 용납하지 못했다. 끊임없이 왜 해야 되는지 묻고, 자기 주장을 세웠다. 절대로 무너지거나 흔들리면 안되는 존재, 반동분자에게 '자신'은 그런 존재였다. 그런데 어른이 돼서 반동분자로 사는 것은 생각보다 너무 피곤했다. 싸워야 될 것들이 너무 많았다. 중,고등학교때는 기껏해야 담임이랑만 싸우면 됐는데, 어른이 되니까 대부분의 주위 사람이 적이다.
그랬던 내가 순순히 사회 제도에 따른 것이 있었으니 바로 결혼이다. 원래는 오래전부터 내 자신이 사라지는게 1순위로 무서웠는데, 그 당시에는 혼자가 된다는 것이 너무 무서워서 내 자신이야 어찌 됐든 상관이 없었다. 첫번째 남자친구를 너무 좋아해서, 그 친구랑 헤어지고 결혼까지 가지 못한 게 한이 되어서 두번째 남자친구와는 헤어지기가 싫었다. 그런데 두번째 남자친구가 헤어지지 않으려면 결혼을 해야 한다고 해서, 결혼을 했다. 외로움이 무서워서 결혼을 통해 내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잠깐 까먹었다. 그런데 웬걸. 결혼을 했는데 외로운 것도 그대로고, 거기에다가 내가 조금씩 사라지는 큰 문제도 발생했다. 그때서야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게 뭐였는지 기억이 났다. 설상가상 회사에서도 내가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되고, 나를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래서 우울증에 걸렸다.
그래서 더더욱 아이를 갖는 것만은 내가 온전히 통제하고 싶었다. 일도 뜻대로 안되고, 시가에서는 이유 없이 눈치를 봐야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제외하면 임신과 출산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 같은 것이었다. 결혼 초에 아직은 남편이 유자식의 꿈을 갖고 있을 때 이런 대화를 하다 싸운 적이 있다. 남편이 갑자기슬슬 아기를 갖자고 하길래, 내가 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다고 하면서 싸움이 시작됐다. 그걸 왜 당신이 정하냐며 싸움이 격해졌다. 계획되지 않은 아이를 임신하면 난 지울 것이라는 말까지 했다. 이혼이라는 단어가 오갈뻔 하고 상황이 심각해졌지만, 결국에는 남편이 내 의사를 존중해서 임신은 미루게 되었다. 얼마 후 남편이 개인적인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서 결국 우리 부부는 최종적으로 아이를 갖지 않기로 하였다.
임신, 출산을 안 하는 것으로 남편까지 동의했으니 이제 이야기는 끝나야 할텐데, 나는 여전히 무언가와 싸우고 있다. 왜냐하면 아무도 나의 비출산 결정을 지지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믿었던 친구 마저도, 제3자가 임신했다고 얘기한 걸 내가 임신했다고 잘못 듣고 나를 축하해 주니 할말이 없다. 적어도 내 친구라면 내가 임신했다고 생각했더라도, "박구 너는 임신 계획이 없지 않았니? 갑자기 심경의 변화가 생겼니?"라고 물어주길 바랐는데 말이다. 이거에 비하면 각종 사회·경제적 압박은 개껌이다. 남의 일일 뿐인 아파트 청약, 아무 해당사항이 없는 각종 세금 공제, 살 찐건데 임신한거냐고 배에 손 갖다대는 성당 어르신, 애가 안 생기면 시험관이라도 해보라는 권유 정도는 웃음으로 넘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아이가 있는 사람들이 너무너무 행복해 보였다면 나도 진작에 아이를 낳았을 테지만, 그저 내게는 내가 알던 그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 보일 뿐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변한게 행복하다고 하지만, 내 눈에는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번도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정말 단 1초도 해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저렇게 다들 당연하다는 듯 아이를 가질까. 내가 이상한 사람인가(원래부터 내내 이상한 사람이었으면서)? 시간이 흐르고 주위에 결혼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점점 이방인이 되어간다. 딱 한번 들은 적 있다. "저희 부부는 아이 없이 살기로 했어요." 라고 말하자 거의 초면인데, 너무 잘했다고 그 결심 끝까지 지키라고 응원하는 말. 그 언니는 애기가 다섯살이었는데, 늦게나마 사라진 듯한 자기의 어떤 모습을 찾아보려 애쓰는 언니였다.
아이를 임신하고 키우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책 한 권, 영화 한 편은 그냥 나온다. <82년생 김지영>이 책과 영화 모두 성공을 거둔 건 당연한 일이다. 우리 주위에는 영화, 책에는 다 담기지 않은 너무나 많은 지영이들의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남편은 항상 말한다. 너는 편하게 너 하고 싶은대로 살고 있지 않냐고. 시가에서도 스트레스 안 주지 않냐고. 그렇게 못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포기해 왔는지 남편은 모르니까. 그리고 나도 그 놈의 '나 하고 싶은대로' 살아보려고 어떤 노력을 하는지도 모르니까.
마나시타 :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비교적 진보적인 남편을 둔 여자나 이혼한 적 있는 여자들한테 왜 아이를 원하는지 물어보면, "아이가 없으면 왠지 인생이 완성되지 않는 것 같다."는 답이 돌아옵니다.
p.261, 우에노 치즈코, 미나시타 기류 지음, <비혼입니다만, 그게 어쨌다구요?!>, 2017, 동녘, 조승미 옮김
인생을 완성하는 건 죽음 뿐이다. 출생으로 열린 괄호는 죽음으로 닫힌다. 그러니 우리는 괜히 여러 퍼즐 조각을 찾을 필요가 없다. 큰 그림, 청사진 같은 것도 그릴 필요가 없다. 그냥 태어난 것으로 충분한 것이고, 죽으면 끝날 뿐인 인생. 하지만 안타깝게도 학교에선 이 중요한 걸 안 가르쳐줬다. 미디어에서도 볼 수가 없었다. 우리가 보고, 듣고, 배운 건 그저 남편은 바깥에 나가 돈을 벌고, 여자는 집에서 가사 노동을 하며 아이를 돌보는 그 한가지 모델 뿐이었다. 위에 인용한 책의 맺음말에 나온대로 남성 생계 부양자와 여성 가사 노동자를 모델로 하는 결혼 제도는 죽었다. 살아있는 사람은 죽은 제도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 이미 아이를 낳기로 결심하고 또는 잘 낳아 기르는 분들한테 그런 말을 하는게 아니라, 그 중간 어디쯤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하는 말이다.
나는 죽을 때까지 반동분자로 살 것이다. 남들 눈엔 보이지도 않고, 중요하지도 않은 그 자신이란 걸 나는 끝까지 지키면서 살 것이다. '저것은 맨날 지같은 짓만 하더니, 죽을 때도 지처럼 죽었다.' 이 말을 꼭 듣고 싶다. '수많은 위험 한 가운데에서도 나는 나 자신으로(스탕달, 『적과 흑』, 이동렬 옮김, 민음사, 2004)' 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