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에 동료 직원과 얘기를 하다가 예전에 신입사원 시절 있었던 일화가 하나씩 떠올라서 들려주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말도 안되는 미친 얘기들이 너무 많아서 이걸 어딘가에 기록해야 될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다.
우선 나는 취업을 좀 갑작스럽게 하게 됐는데, 원래는 이 회사에 눌러 앉을 생각이 1도 없고 그냥 아르바이트 몇 개월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르바이트 이력서를 보내보라고 하길래 그 당시 취준생이라 따로 이력서 만들기도 귀찮아서 구직용 이력서를 보냈는데, 그 이력서를 보고 여기에 새로 생기는 팀에 들어오지 않겠냐 제안을 받았다. 그 후 1년간 계약직으로 근무를 하다가 정규직으로 전환이 된 케이스다. 그때까지만 해도 3년만 다니고 관두려고 했는데 이직이 잘 안됐다. 그래서 결론적으론 지지고 볶으며 이 회사에 다니고 있는 중이다.
이 회사는 영화사에서 3개월 인턴을 하다가 들어온 회사여서 사실 회사 업무는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처음 몇개월은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일하는거였고 한 4개월 정도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계약직으로 채용이 되고, 그러다 정규직으로 전환이 된 그런 특별 채용이었다. 정식 공채가 아니었기 때문에 임원 면접도 없이 채용이 됐다. 지금이라면 말도 안되는데 그 시기에는 회사가 전체적으로 어수선해서 가능했다. 그리고 우리 팀이 당시 신생팀이었기 때문에 충원이 너무 급했고, 그래서 바로 데려다 쓸 수 있는 나를 뽑은 것 같았다.
우선 처음에 그 팀에 파트타임으로 갔을 때 그 팀에는 대리 한명에 팀장 한명이 있었다. 팀장 1, 대리 1, 파트타임 직원 1.. 엄청 소규모 팀인데 당장 그 이듬해 11월에 외국에서 300명 규모로 손님이 오는 국제 행사를 치러야 하는 프로젝트 하나랑 2000명 규모 컨퍼런스 행사 기획 해야 되는 프로젝트 2개가 있었다. 계획 짜고 일해야 될 대리새끼는 맨날 일도 하나도 안하고 그래서 내가 쫌쫌따리로 그 새끼 일을 다 도맡게 되었다.
안 그래도 계산 못하고, 꼼꼼하지도 않은데다가 엑셀도 학교에서 교양으로 들은 게 전부였는데 갑자기 예산안을 짜라고 했다. 업체들한테 예산 받아서 그거 견적서 항목들을 코딩하고, 금액 비교하는 뭐 그런 일이 맨 처음 하게 된 업무였다. 파일 비교해서 항목별로 코딩해서 금액 짜 맞추는거 지금 하라고 하면 진짜 쉽고 얼마 걸리지 않는 일이지만 그때는 처음 하는 일이라 너무 어렵고 힘들었다. 그런데 원래 그 일을 해야되는 대리놈은 6시 칼퇴하고 자빠져 있고, 파트타임 직원인 내가 남아서 밤까지 야근하고 집에 가져가서 하고 주말에도 매달렸다. 자꾸 코딩이 어긋나고 금액이 달라지니까... 팀장은 본인이 회계사인데다가 성격도 더러워서 숫자 안 맞고 내가 자꾸 대답 잘 못하니까 급기야 종이 집어 던지고, 짜증내고 화내기 일쑤.. 1년차때는 몇번 화장실에서 울기도 했다. 쉬바..
팀장도 그 대리새끼가 아무 일도 안하고 있어서 내가 모든 일을 다 하니까 그런 문제가 생긴다는 걸 인지하고는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그 대리한테 일을 시켜보려고 하는데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 사람은 우리 회사 타노스 급 빌런으로 회장 할아버지가 와도 절대 말을 안 듣는 그런 미친놈이었다. 결국 그 사람이랑 팀장이랑 시시때때로 싸우다가 한번 진짜 야, 너 어쩌구 막말 하면서 언성 높이고 싸우게 됐고 그 대리가 다른 팀에 가는 것으로 사건이 일단락 되는 듯 했다. 그 대리가 나가는 시기에 신규 채용도 진행해서 통대 나온 통번역사도 채용하고, 회계사 연구원도 한명 더 채용하고, 다른 대리도 충원해서 내가 계약직으로 채용될 시기에는 팀원이 5명까지 늘어났다. 그리고 숫자로 씨름하던 일도 회계사 연구원이 가져가면서 내 일도 많이 줄어든다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프로젝트 매니저인 팀장의 지나친 꼼꼼함, 그리고 경영진을 설득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함 때문에 결정이 미뤄지거나 바뀌기 일쑤였다. 그 과정을 잘 따라오지 못하는 하청업체 사이에 껴서 하청업체가 채우지 못하는 부분을 내가 다 채워야 했고 결국 그 2013년 300명 규모의 국제 행사는 전부 다 내가 도맡아서 하게 됐다. 통번역사 쌤은 그때 갑자기 진행되는 다른 프젝 하느라고 맨날 새벽에 집에가고, 회계사 연구원놈은 맨날 칼퇴하고 뺀질뺀질 거리고 돈만 딱 만지고 나머진 아웃오브안중이었기 때문에 일 할 사람은 나 뿐이었다.
다른 부서에선 업체 끼고 하는데 무슨 일이 많냐고 했지만 업체에서 갖고 오는 것마다 맘에 안 든다고 팀장이 다 까니까 업체가 있으나 마나였다. 기념품 하나 주는 것도 아이디어 갖고 오는거 맘에 안든다고 다 까다가 인사동 가서 결국 직접 사고, 행사장 디자인도 아이디어 맘에 안 든다고 해서 내가 한땀한땀 알아보고, 무슨 행사 장소가 맘에 안 든다고 다른 곳 자기가 알아본 곳으로 해야된다고 해서 데리고 답사 다니고, 뭐 이미지 하나 간단한 거 제작하는 것도 레퍼런스 일일이 찾아서 업체에 알려주고, 그나마도 자꾸 맘에 안 든다고 해서 내가 포토샵으로 작업을 다시 해야될 정도로 비위 맞추기가 힘들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300명이 한 나라에서 오는게 아니고 전 세계에서 오다 보니까 나라별로 필요한 비자가 다 달랐는데, 비자 발급하는데 초청장이 필요하고, 양식도 다 다르다는 걸 그때 알았다. 한마디로 참가자 관리도 다 내가 했단 소리. 거기다 초청장 발급 업무 하는 협력 업체 직원이 얼타니까 괜히 팀장이 또 개난리 쳐가지고 그 직원은 퇴근 후에 우리 사무실로 와서 나랑 같이 야간을 했어야 했다. 나도 미치겠는데 그 직원도 챙겨야 하니 죽을 거 같았다. 맨날 야근하고 돈은 돈대로 못 받고 팀장 기준에 맞추느라 하청업체에다가 맨날 뭐라고 하니까 갑질하는 사람 돼서 욕은 욕대로 쳐먹고 하....
그나마 다행인건 그렇게 야근을 개같이 해서 팀장의 신임을 얻었다는거..? 갑자기 일알못 막내에서 에이스가 되어서는 프로젝트가 끝날때 쯤엔 잘 못하거나 실수를 해도 예전만큼 소리 지르고 화를 내지는 않게 되었다. 대신 나 말고 새로운 타겟이 생겼다. 그리고 그 새로운 타겟은 1년여간 버티다가 곧 퇴사 했다. 회사 10년 넘게 다닌 사람이었는데 오죽했으면 그만 뒀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팀장 밑에서 관둔 사람이 몇 명인지..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미친 사람이라는 말밖엔 안 나온다. 이렇게 유난 개유난을 떠는 사람은 진짜 앞으로도 만나기 힘들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지만 ... 네.. 세상엔 다양한 종류의 환장할 인간들이 참 많았습니다.. 차라리 일이라도 많으니까 오히려 이렇게 팀장이 나 일 많은 거 알고 거기서 더 갈구진 않아서 이게 나았던 것 같기도 하다. 이후에 했던 여러가지 감정 노동에 비하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