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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일린 Sep 06. 2023

저스트 두 잇, 쪘을 때 두 잇

_[유튜브] 나불나불 유해진 1부를 보고

“너무 부러워. 내가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있어.” 


영상 속에서 이우정 작가가 말했다. 작품을 끝낼 때마다 스위스로 훌쩍 떠나는 유해진 배우가 너무 부럽다고.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산다며 부럽다고 말했다. 그러자 유해진 배우가 대답한다. 하고 싶으면 그냥 해. 산에 가고 싶으면 신발을 일단 신어. 신발을 신고 나서 고민하더라도. 신발 다시 벗는 게 귀찮아서라도 나갈 걸. 


나이 앞의 숫자가 4로 바뀌었을 뿐인데. 마음이 출렁거렸다. 겉으로는 아무 것도 바뀐 건 없었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 똑같은 지하철을 타고, 직장에 나가는 한결같은 일상이 이어졌다. 변한 건 하나 없는데 마음은 지독한 몸살을 앓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현란하게 출렁이는 주식 그래프를 자세히 살펴보면, 추세선이 따로 그려져 있는 걸 볼 수 있다. 성장 가능성이 높고 유망한 주식은 일시적인 등락은 있을지언정 추세선이 꾸준히 우상향하는 걸 볼 수 있다.      


지금까지는 수많은 사건사고와 시련을 겪으면서도, 인생의 추세선이 꾸준히 우상향한다고 여겼다. 빙글빙글 계단을 돌면서 마탑의 정상을 향해 가는 게임 캐릭터처럼, 대학입시, 취업. 결혼, 출산과 육아 등 주어진 미션을 꾸역꾸역 수행하면서 레벨은 올라가고 쓸 수 있는 아이템은 늘어갔다.      


그런데 레벨이 40에 이르자, 새로운 맵이 펼쳐졌다. 마탑 정상에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다. 이제 내려가는 일밖에 없다는 듯이. 인생의 추세선의 기울기가 급격하게 꺾였다. 우상향에서 우하향으로. 계단을 디딜 때마다 주머니를 가득채운 아이템은 무거워서 체력을 갉아먹었다. 


그저 나이 앞의 숫자가 바뀌었을 뿐인데, 인생의 그래프에 변곡점이 찍혔다. 어떻게 하면 잘 내려갈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모아놓은 재산도 충분치 않은데, 어떻게 먹고 살아야할까, 내가 할 줄 아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건데. 일해 온 시간보다 일할 시간이 짧아지고 있었는데.       


60이 넘어서도, 아니 80까지는 벌어야 할 것 같은데, 뭘 할 수 있을까.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직장 다니면서 애 키우는 워킹맘이 가장 여유시간이 부족하다고 하지 않는가. 이런 핑계가 무색하게 미라클 모닝을 실천하는 분도 많지만.      


내가 하던 일을 조금 더 확장해보는 게 낫겠다 싶었다. 선택의 폭은 좁았다. 결국은 글쓰기였다. 이미 글쓰기를 시작해, 전업 작가로서의 새로운 인생을 연 많은 브런치 작가들의 글을 읽으면서 망설임이 커져갔다. 이런 비루한 실력으로, 별 볼 일 없는 글을 쓰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불안은 걱정만 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을 때 가장 커진다. 계속 읽기만 하고 망설이는 나날이 계속 됐다. 내가 과연 글 쓰는 일을 할 수 있을까. 글쓰기에 대한 회의는 해질녘 길어지는 그림자처럼 점점 짙어만 갔다.   

    

남편이 직장을 그만 두고 집에서 은둔형 외톨이처럼 지내기 시작했다. 마음이 급해졌다. 예전에도 글을 쓸려면 쓸 수 있었겠지만, 이렇게 갈급하지 않았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내려가는 기울기가 점점 가팔라질 것 같았다. 대비할 시간이 점차 줄어드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산을 가고 싶으면 신발을 신어라. 라고 하잖아”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는 마음으로 그냥 썼다. 못 쓰면 어때, 아무 것도 안 하고 가라앉는 것보다는 낫겠지. 발버둥의 흔적이라도 남겠지. 산까지는 못가더라도, 일단 신발이라도 신자는 마음으로 쓰기 시작했다.      

영상을 보면서, 유해진 배우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잘했어. 시작이 반이야.” 


신발을 신었으니, 어디로든 나갈 수는 있겠지. 비록 그곳이 사람들을 오르고 싶어 하는 산일지, 아니면 누가 왔다 가는지도 모를 평범한 동네 공원일지는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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