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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일린 Sep 21. 2023

견고한 믿음이 흔들리고, 불안이 찾아올 때

_[유튜브] 환승연애 이진주 PD와 함께 합니다. 를 보고(2)

“환승연애를 만들고 나서 전 늘 그 순간이 떠오르는 거예요. 내가 진주한테 그걸 까지 않았으면... 나는 확신이 없지만 네가 그게 해보고 싶고, 하고 싶은 게 명확하게 있으면, 그거 한 번 해봐라라는 선배였어야 되는 게 아닌가.
저는 그 순간이 자주 떠올라요.”      

“요즘 이제 다른 후배들이 하고 싶은 걸 가지고 오면, 요즘도 제가 그건 그렇게 하면 안 돼 아니면 이걸로 하자 얘기를 하는데, 얘기할 때마다 그 순간이 떠오르는 거야, 내가 혹시 환승연애인 줄 모르고 까고 있는 건 아닌가.” 



대중감, 실체는 없지만 누구나 있다고 느끼는    

영상에서 나영석 PD는 연애 프로그램을 하고 싶다던 이진주 PD의 아이템을 주저앉혔다고 털어놓는다. 환승연애의 성공 이후, 후배들이 아이템을 가져오면 잘 될 아이템을 못 알아보고 깔까 봐 판단하기 망설여진다고 고백한다. 이진주 PD는 처음에 말했을 때는 트레이닝되는 과정이라, 그때 프로그램을 했으면 망했을 거라고 말하면서, 어느 정도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대한 스킬과 내공이 쌓이고 무르익었을 때 했기에, 이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겸손하게 말한다. 

     

언젠가 일기와 에세이의 차이에 대해 쓴 글을 보았다. 일기는 독자를 생각하지 않고 쓰는 글인 반면, 에세이는 독자가 읽을 것을 상정하고 쓰는 글이라고 했다. 콘텐츠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안다. 결국 누군가의 선택을 받아야 비로소 콘텐츠의 의미와 가치와 파급력이 부여된다는 걸. 무언가를 쓰고, 그리고, 찍고 붙이는 동안에도 몇 번씩 사람들에게 선택받지 못하면 사라질 수 있다는 두려움을 마주한다.      


선배들은 자주 대중감이라는 말을 썼다. 대중감이 타고났네. 대중감이 떨어지네. 

난생처음 듣는 말이라 무슨 뜻인지 몰라서 인터넷에 검색해봤는데 검색결과가 없다고 나왔다. 선배들의 대화 속에서 짐짓 추측해 본 대중감의 뜻은 이랬다. 대중이 뭘 좋아할지 아는 감. 어떤 능력이면 ‘력(力)’이라는 한자를 썼을 텐데, 선배들은 ‘감(感)’이 이라고 불렀다. 감각은 길러지기도 한다지만, 원래 가지고 있던 것의 영향을 무시할 순 없다. 타고나기를 대중감이 뛰어난 사람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아서 고전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불행하게도 나는 후자였다. 

   


대중너 참 얄궂다

그저 내가 하고 싶고 좋아하는 걸 했을 뿐인데, 막 사람들이 좋아해. 
와 뭐 이런. 얼마나 좋을까. 상상만 해도 가슴이 막 뛴다.      
이렇게 해야 할 것 같아서 했는데, 그게 또 맞아. 세상에나. 


점점 내 판단에 자신감이 붙고, 성공할 거란 믿음이 자라난다. 주변의 기대는 점점 높아지고, 다음을 기약하는 약속들이 늘어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도 좋아하는 행운이 오래가면 얼마나 좋을까. 감각은 길러지기도 하지만, 무뎌지기도 한다. 더 이상 대중과 주파수가 맞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면, 자신에 대한 믿음은 쉽게 흔들리고 그 자리는 불안이 차지한다. 한 때 쉽게 용인되던 한 두 번의 실패의 무게가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만큼 무겁게 얹어진다.      


언제나 대중감은 대중보다 딱 반 발 앞설 때만 유효하다.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대중의 바로 앞에 서 있다가, 길을 잃는 건 한 순간이다. 실시간 교통량에 따라 내비게이션이 갑자기 바뀐 길로 안내하는 할 때, 한 번 길을 놓쳐버리면 다시 원 위치로 돌아가기 매우 어렵듯이.


길을 잃은 사람들이 자주 하는 선택은 대중의 뒤를 바짝 쫓는 것이다. 패스트 팔로워 전략은 경제발전에는 통하는 전략일지 몰라도, 대중에게는 썩 잘 통하지 않는 편이다. 얄궂게도 대중은 자신들과 너무 먼 것도 싫어하지만, 너무 가까운 것도 싫어하니까.       


한편, 이제는 대중이 존재하는지 그 존재 자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동일한 메시지를 한꺼번에 여러 사람에게 전달하는 매스미디어의 발달이 매스(대중)를 탄생시켰다면, 반대로 신문과 방송으로 대표되는 매스미디어의 쇠퇴는 곧 대중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추천 알고리즘에 갇힌 사람들의 취향은 점차 세분화되고, 더욱 확고해진다. 실체가 불분명한 대중이나 트렌드를 따라가기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나 나만의 색깔을 드러내고, 사람들이 찾아오게끔, 따라오게끔 하는 전략이 유효해졌다. 코어 지지층을 바탕으로 확장성을 확보하는 방식이 최근 뜨고 있는 유튜브나 콘텐츠의 성공공식이자, 브랜딩과 마케팅에서 활발히 적용되고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여전히 대중감은 필요해

방송이나 영화의 제작규모가 놀랍도록 커질 수 있었던 건 이를 뒷받침해 줄 대중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대규모 자본을 투입하며, 콘텐츠의 질적 향상을 이뤄내면, 더 많은 대중들이 구매를 하는 선순환 구조가 가능했다. 한 번 올라간 대중의 눈높이와 창작자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라도 일정 규모의 투자는 필수였다.       

문제는 대중이라는 파이가 줄면서, 투자한 만큼의 성과를 거두기 어려워졌다. 지속가능한 콘텐츠 생산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 하나는 적은 자본을 투여해 질적으로는 뛰어나지 않더라도 지속가능한 제작 환경을 구축하는 것. 또 다른 하나는 대규모 자본은 유지하되, 특정 지역에서 전 세계로 대중의 대상을 획기적으로 늘려서 그중 비슷한 취향을 가진 대중의 숫자를 충분히 확보하는 것. 전자는 유튜브 크리에이터의 방식이고, 후자는 넷플릭스의 방식이다.       


아무리 대중이 쪼개지고 예전보다 실체가 희미해졌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누군가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들이는 자본이 많을수록, 전에 맛본 성공의 맛이 달콤할수록, 확장성과 파급력에 대한 갈증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는다.      



잃어버린 대중감을 찾아서 

잃어버린 대중감을 찾고 싶다. 
사람들의 숨겨진 욕구를 찾아내 건드리고 싶다. 
사람들로 하여금 강력한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싶다.
사람들의 선택을 받아 화제가 되고 싶다.  
그런데 내 생각대로 만들면 통할까? 
나 어떻게 해야 하지?    


트렌드는 빠르게 변하고 사람들은 변덕스러워졌다. 예전의 경험이 무용해지고, 절대적이라 믿었던 기준은 사라졌다. 대중은 사방으로 분열됐다. 그래도 여전히 세대 별로 공통의 관심사나 공감대는 형성되기 마련이다. 비록 지속시간이 짧아지고 향유대상이 좁아지기는 해도, 여전히 유행어와 밈은 사람들의 채팅창과 게시물에 오르내린다.      


대중이라는 실체 없는 유령의 실체에 다가가기 위한 방법은 뭘까. 많이 찾아보고 듣고 분석하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의 끊임없이 대화하고 소통하는 것. 거기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접목시킬 지점을 찾아내는 것이 아닐까 싶다. 뜰 아이템을 판단하는 기준이 흔들리고, 내가 맞는지 불안하다고 토로하면서도 나영석 PD는 알고 있었을 거다. 비록 정답까지는 몰라도,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는.     


예전부터 그는 회의시간에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도록 자유롭게 수다 떨 듯 아무 말이든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왔다고 한다. 의견이 한쪽으로 쏠려 회의가 일찍 끝나는 걸 오히려 경계했다고 한다. 그랬던 사람이기에, 침착맨 채널을 찾아가서 조언을 구할 수 있었을 거다. 유튜브에 잔뼈가 굵은 침착맨의 의견을 수용해, 수 십 대의 카메라 대신 한 대의 카메라로 영상을 찍고, 라이브도 시도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환승연애로 화제를 모은 이진주 PD 역시, 주변의 이야기를 많이 들으면서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말했다. 30대 주변 친구들의 관심사가 주로 연애, 사람이다 보니, 자연스레 전 남친, 전 여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많이 궁금해하니, 프로그램을 만들면 어떨까 해서 시도한 것이 환승연애였고, 1년에 25개의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OTT 오리지널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어 독보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얼마 전 <콘크리트 유토피아> 홍보를 위해 진행한 이병헌 배우의 인터뷰 기사를 보았다. 수십 년의 연기경력을 바탕으로 믿고 보는 배우의 자리에 오른 그도 여전히 현장에 서면 자신의 생각이나 판단이 맞는지 의문이 들고, 잘못 판단한 건 아닌지 불안하다고 말했다. 그럴 때마다 주변의 반응에 확신을 갖는다고 했다. 나영석 PD도 이병헌 배우도 믿음이 흔들리고 불안하다는데 어찌 보면 흔들리는 게 당연한 것 일수도. 이건 콘텐츠를 창작하는 사람의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극복해나갈 수밖에.    






-본인의 연기에 만족하는 편인가?     

나름대로 믿음은 있지만불안함은 늘 갖고 있다내가 이해한 정서표현한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될지에 대한 물음이 항상 따라다닌다. 보통 배우들은 자신이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을 이해한다고 믿을 거다. 때문에 어떤 캐릭터를 만나든 그 캐릭터를 이해하고 상상하고 이입할 수 있는 거 같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극단적인 감정을 연기할 때는 조심스럽다. 연기에 주관적인 해석이 섞이기 때문이다. 때때로 내 판단이 과잉될 수 있고반대로 더 보여줘야 하는데 자제한 건 아닌지 돌아본다이 고민은 앞으로도 계속될 거 같다.     


-불안감은 어떻게 해소하는지 궁금하다.     

나를 더 믿으려고 한다. 내가 표현하는 감정이 보편적인 인간의 것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믿음이다. "내가 하는 연기가 맞을 거야"라는 주문을 왼다. 그리고 내 연기를 보는 감독, 스태프들을 믿는다. 그들의 반응이 내겐 확신이자 자신감이 된다     


-스스로를 믿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거다.      

불안함만 갖고 연기하면 너무 힘들다.(웃음) 다음 스텝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적절한 믿음이 필요한 거 같다. 반복적으로 "내가 맞을 거야", "나는 괜찮을 거야"라고 말해줘야 다음 연기가 있는 거다지금까지 해왔던 작품을 보면 불안감 속에서 관객의 반응을 보고내 표현이 맞았구나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그런 경험들이 쌓여 스스로를 더 믿게 된 게 아닐까 싶다

              

(TV리포트 ‘콘유’ 이병헌 “연기에 대한 불안… 스스로 믿는 수밖에” [인터뷰] / 2023.8.11) 

https://tvreport.co.kr/movie/article/749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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