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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일린 Jan 22. 2024

글이 쉽게 읽힐 때 빠지기 쉬운 함정

_언제나 남의 떡은 커 보인다

글을 읽다 보면 자주 잊는다. 쓰는 것에 비해서 읽는 건 정말 쉬운 일이라는 걸. 글을 읽는 행위에는 글에서 영감을 찾고, 글에서 깨달은 바를 삶에 새기는 것도 포함되지만, 여기서 글을 읽는다는 건 단순한 독해, 즉 내용 파악만으로 잠시 제한해 본다.       


머리를 쥐어짜도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 글쓰기에 비해, 읽는 건 너무나도 순식간에 지나간다. 그렇게 후루룩 쉽게 읽히도록 쓰기까지 작가에게 얼마나 많은 고민과 수정이 있었을지 알면서도 못 본 척 외면해 본다. 시인은 시가 쉽게 쓰여 부끄러웠다는데, 글을 쉽게 읽은 사람에겐 묘한 질투심이 솟는다.     

 

나도 저런 경험을 했으면, 나도 글 쓸 시간이 충분했으면, 이런 글 한 편 쓸 수 있었을 걸.  어쭙잖은 시기심이 파고들 때면, 잠시 한 발 물러서본다. 그러면 보인다. 글쓴이가 삶의 궤적을 지나오는 가운데 느꼈을 복잡한 감정과 고통은 건너뛴 채, 글 한 편이라는 결과만 똑 따먹으려는 얄팍한 속내가. 


막상 역경이 닥치면, 난 누구보다 먼저 왜 이런 시련을 겪는지 원망할 것이 분명하다. 글 같은 거 안 써도 좋으니 어서 빨리 고통이 지나가길 간절히 바랄 것이 틀림없다. 눈앞의 현실에 있는 힘껏 괴로워하며. 글 한편 쓸 엄두조차 내지 못할 것이 확실하다.      


아무나 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에서 비롯된 펄떡이는 영감과 정보들이 담긴 글에 대한 헛된 미련을 내려놓고, 지금 쓸 수 있는 글을 써본다. 실제 경험과 글 사이의 거리감이 주는 안락함에 젖어, 실체 없는 질투와 시기에 시달리는 스스로를 오늘의 글감으로 삼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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