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디자이너는 디자인 툴을 쓸 줄 아는 사람이 아니다.
한 때는 디자이너는 디자인만 하는 사람, 글보다는 그림으로 표현하는 사람이라는 편견이 있었다. 그러다가 디자인이라는 업에 대해서 디자이너들이 쓰고 기록한 글을 읽으며 편견이 산산조각 하는 경험을 했다. 세상에 글을 잘 쓰는 디자이너들이 이렇게 차고도 넘치다니. 글이나 디자인이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현실에 구현한다는 측면에서 닮은 점이 많기는 하다. 논리와 감성의 두 가지를 적절하게 섞어야 한다는 점에서도 마찬가지다.
그중에서도 디자인이라는 업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디자인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중에 하나'라는 문장에 무릎을 탁 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디자인은 디자인 그 자체로 존재하기보다는 디자인의 대상이나 목적을 위해 존재한다는 평소의 견해를 한 마디로 명쾌하게 정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디자이너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내가 만난 최악의 디자이너는 단순히 디자인을 못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만큼 디자인을 오래 한 디자이너가 아니면, 자신이 한 디자인에 대해서 왈가왈부하지 말라는 디자이너였다.
보통 10년 이상 일을 하면, 자신과 자신의 결과물을 분리할 줄도 알 법도 한데. 머릿속으로 기획하고 구상했을 때와 실제 디자인 간의 간극을 조정하는 수정도, 더 나아지기 위한 변경도 그저 자신이나 자신의 디자인 경력에 대한 도전으로만 여겼다.
생각 없이 글이나 디자인을 하다 보면, 쓰는 단어만 쓰고 하던 대로만 하는 자신만의 ‘쪼’가 드러난다. 새로운 단어나 표현을 쓰려고 애쓰지 않으면, 여지없이 ‘쪼’가 자동 완성기능처럼 튀어나오기 때문에, 동사 하나라도 더 다채롭게 쓰려고 고민하고, 낯선 표현을 길어내려 노력한다.
그런 노력 없이 10년째 변함없는 디자인을 자랑스럽게 던지고는, 디자인도 모르는 너희들에게 디자인 툴을 다룰 줄 아는 내가 친히 하사하는 것을 고맙게 받으라는 고압적인 태도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매번 쓰는 톤과 매번 쓰는 폰트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데, 고칠 방도가 없어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디자인을 보며,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았으면 그 입 다물라라는 태도로는 결코 성장할 수 없음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디자인은 디자인을 오래 한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라, 디자인을 실제로 보고 경험하는 사람들의 것이라는 걸, 그리고 디자인 툴만 다룬다고 디자이너가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 좋으련만. 아무리 좋은 말도 들으려 하지 않으면 그만인걸 어쩌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