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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일린 Jan 26. 2024

까맣게 잊고 있었던 ‘낯설게 보기’

_결국은 마음먹기 나름

읽는 맛이 넘치는 글을 읽다보면, 왜 저런 글을 쓰지 못하는지 자책하고 몰아붙이는 못난 습관이 스멀스멀 기어 나올 때가 있다. 스스로 만들어낸 비난과 책망에서 벗어나고 싶은 내 안의 작은 아이는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를 찾기 바빴다. 그럴 때마다 경험과 소재의 부족은 좋은 핑곗거리였다. 다양한 경험은커녕 스스로를 돌볼 시간조차 부족한 지금의 처지를 내세우며, 사무실에 매여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을 탓했다.      


변명을 늘어놓으며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따끔거렸다. 글을 쓰지 못하는 핑계로 반복된 일상을 탓할 수 없다는 건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에. 



취업해서 돈을 벌기 시작한 지 5년째 되던 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일을 그만두고 1년 간 자체 안식년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 기간 동안, 스페인과 포르투갈로 1달 동안 여행을 떠났다.      


퇴사한 지 일주일 만에 낯선 곳에서 맛보는 자유는 유난히 짜릿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펼쳐지는 이베리아 반도의 이색적인 풍경과 정취가 오감을 강렬하게 사로잡았다. 유난히 따가운 햇볕과 짜디짠 타파스, 갓 짜낸 오렌지 주스의 새콤함이 온몸과 신경을 자극했다.       


한 달이라는 시간도 주어졌으니, 패키지 여행하듯이 주요 여행지를 찍고 다니는 여행 대신 한 도시에 최소 3일에서 일주일간 머무르는 방식으로 다녔다. 잠시나마 현지인이 된 듯한 기분에 취해, 숙소 주변 골목을 쏘다녔다.       


처음 2주까지는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새로운 세상에 거침없이 발을 내딛으며, 온몸으로 낯선 기운을 만끽하기 바빴다. 역시 새로운 자극이 주는 설렘은 여행을 떠나서만이 느낄 수 있다고 확신했다. 알아듣지 못할 낯선 스페인어가 가득 적힌 메뉴마저도 낭만적으로 다가왔으니, 말해 뭐 할까.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구글맵이나 스마트폰 없이 떠난 여행길이었다. 스페인어로만 적힌 버스정류장에서 요일을 몰라 시간표도 못 보고, 메뉴판에서 쇠고기, 돼지고기 구분도 못하던 얼치기 여행자는 여행 중반쯤 지나니 얼추 숫자도 셀 수 있을 정도로 스페인어에 익숙해졌다. 


여행했던 날들보다 앞으로 남은 날들이 줄어들수록, 신기할 것도 놀라울 것도 사라져 갔다. 여행의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하몽을 끼운 빵 한쪽에 진하게 내린 커피 한 잔으로 시작하는 하루가 더 이상 새롭지 않았다.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상에 적응하고 익숙해질수록, 자극의 역치는 한 없이 높아가기만 했다. 언제 다시 오겠어라는 생각으로 모든 걸 하나하나 눈에 담으려던 여행자는 초심을 잃고, 어느새 스페인 노천카페에 앉아 있는 시간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숙성된 하몽의 짭조름함, 녹인 초콜릿에 찍어먹는 추로스의 바삭함과 달콤함, 태양이 고도를 더 높이기 전 적당한 햇살의 따가움이 쉼 없이 자극해 왔지만, 처음만큼 흥미롭지 않았다. 스페인에서 보내는 시간은 더 이상 여행이 아니라 예측 가능하고 반복되는 일로 가득한 일상이 되어 버렸다. 


그때 깨달았다. 여행은 어디에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바라보는지가 중요하다는 걸. 아무리 낯선 곳이라도 익숙한 시선으로 바라보면 하나도 새로울 것이 없는 평범한 일상이 되지만, 아무리 익숙한 곳이라도 낯선 시선으로 바라보면 그곳이 여행지가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의 한 조각이 순간 번뜩였다.      



대학에 다닐 때, 부전공으로 듣던 사회학과 수업에서 ‘낯설게 보기’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수업을 들을 당시에는 와닿지 않는 말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낯설게 볼 수 있다는 건지. 20대 초반의 대학생에게는 도통 감을 잡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지금은 완전히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어렴풋하게라도 그 의미를 더듬을 수 있을 듯하다.      


한 달 동안 이베리아 반도를 돌아다면서, 내 마음에 남은 건 골짜기를 아찔하게 연결하는 론다의 다리보다, 화려한 이슬람 양식으로 꾸며져 있던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도 아닌, 스페인 노천카페에서 하몽이 끼워진 빵을 먹었던 어느 평범한 하루였다.   


그날의 깨달음을 잊은 채, 글감을 툭툭 뱉어내지 못하는 반복된 일상을 원망하기만 했다. 낯설게 보기를 까맣게 잊은 내가, 낯설게 보기를 다시 떠올릴 수 있었던 건 역시 글쓰기 덕분이었다. 아무리 갖은 이유와 핑계를 갖다 붙여도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다. 그냥 쓰지 않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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