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옆에서 바라본 좋은 디자이너의 조건은
이제 사무실에는 10년 이상 차이 나는 젊은 직원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옆에서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지나온 과거에 대한 후회가 물밀 듯 밀려올 때가 많다.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한 후회가 스스로에게 향하는 것을 막고자 하는 방어기제 때문일까.
시시때때로 마음속에서 모락모락 솟아오르는 안타까움은 후배들에 대한 이런저런 조언들로 바뀌어 자꾸만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고 한다. 왜 사람들이 나이를 먹을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고 했는지 새삼 피부에 와닿는 요즘이다.
아무리 좋은 말도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지 않으면 소귀에 경 읽기에 불과하다는 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깨달은 지 오래다. 들을 사람이 준비되었을 때나 조언도 소용이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 쉽게 말을 꺼내지는 못하겠고. 속으로 안타까움만 쌓이기만 하니 답답한 마음만 커져간다.
이건 그저 편집 분야에서 디자이너와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서, 한 사람이라도 좋은 디자이너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써보는 글이다. 준비된 누군가가 있다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성장에 대해 고민하는 누군가 있다면, 미약하게나마 마음에 와닿기를.
1. 상대방과 결과물의 ‘WHY’를 파악해 보기를
디자이너가 전체 기획을 잡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기획을 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기획자나 편집자의 의도를 잘 파악하는 디자이너와 함께 작업을 하다 보면, 소위 일할 맛이 난다.
물론 개떡 같이 말하는 걸 찰떡같이 알아듣길 바라는 건 아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디자이너들이 두리뭉실하고 도대체 어쩌라는 건지 알 수 없는 피드백에 고통받는 건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반대로 정확하게 어떻게 수정과 보완을 하기를 원하는지 방향성을 설명하고 디자이너가 눈으로 이해하기 쉽게 참고자료까지 보여주면서 피드백을 했는데, 왜 요구했는지 방향성에 대한 부분은 싹 지운 채, 색이나 폰트 같은 참고자료의 특정 부분에 꽂혀서 그걸 그대로 답습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겪었다.
때로는 디자인에 대한 수정과 보완요청에 대해, 디자인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이래라저래라 하는 간섭으로 여기거나, 자신의 작품(?)에 대한 비평이라 생각해서 절대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모습도 보았다. 텍스트 내용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어서, 무엇을 왜 강조해야 하는지 일일이 설명해야 하는 건 애교 수준이었다.
결국 편집 분야에 있어서 디자인 작업의 최종목적은 텍스트와 이미지로 표현된 결과물 안에 담긴 의미가 사람들에게 보다 온전히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디자인된 결과물을 보는 사람들이 제작자들이 의도했던 바를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인 셈이다.
같이 일하는 사람이 왜 이렇게 기획하고 수정하려는지 의도조차도 파악하지 못하고, 소통도 제대로 되지 않는 디자이너가 만든 결과물이 지켜보는 사람들과 어찌 소통할 수 있을까. 부디 ‘WHY'를 잘 파악해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일할 맛 나는 디자이너이자 좋은 결과물을 내는 디자이너로 성장하기를 곁에서 응원해 본다.
2. 다양한 'HOW'를 제시할 수 있기를
디자이너라는 직군이 따로 있는 것은 그 사람만 디자인을 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수많은 디자인 경험을 통해, 디자인과 관련하여 보다 더 빨리 최적의 방안을 제시할 수 있는 전문가로서 역할을 한다는 의미가 더 본질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업무를 시작한 지 2~3년 차가 된 젊은 직원들은 주변의 피드백을 듣고 그대로 수정하기 바쁜 모습을 보일 때가 많다. 피드백을 잘 듣고 반영해 보는 경험은 중요하다. 하지만 이제 3년 차가 넘어간다면 그 수준에 멈춰서는 안 된다. 상대방의 요청을 반영하는 것은 기본이고, 디자이너로서의 식견이 더해진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자주 쏟아지는 수정 사항이나 요청 사항을 들여다보면, 특정 부분을 강조해 달라고 할 때가 많다. 밑줄을 그을 수도 있고, 배경색을 넣을 수도 있다. 크기를 키울 수도 있고. 다른 요소를 줄일 수도 있다.
막연하게 밑줄 같은 걸 쳐서 강조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해달라고 하는 대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강조하고자 하는 의도를 살린 다른 디자인을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한 사람의 전문가로서의 디자이너 역할을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각 상황에 가장 적합한 대안들을 제시할 수 있으려면, 일단 다양한 시도를 해봐야 한다. 매번 하던 방식대로만, 내가 선호하는 스타일대로만 디자인을 하다 보면 각 상황마다 제시할 대안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생각해 보라. 10가지 중에서 2가지 고르는 것과 3가지 중에서 2가지를 고르는 것, 어느 쪽이 더 적합한 대안을 제시할 확률이 높아지는지.
물론, 디자이너 혼자만의 노력으로 가능한 일은 아니다. 충분한 작업 시간과 작업 기회를 보장하는 업무 환경이 주어져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긴 하다.
하지만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연차가 쌓일수록 사람들은 더 빠른 판단과 숙련도를 기대하게 된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디자인적으로 많은 시도를 해보길. 작업 기회와 작업 시간이 충분히 주어질 수 있도록 기획과 원고 작성시간을 단축시켜 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