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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일린 Feb 01. 2024

비로소 비교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_스페인 오렌지 농장에서 깨달은 건

그날이 언제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마드리드에서 머물면서 근교 도시로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오는 길었던 듯싶다.      


2011년에 떠난 한 달간의 이베리아 반도 여행에선 주로 기차나 버스를 이용해, 육로로 이동했다. 비행기로 빠르게 가는 방법 대신 육로를 택한 건 상대적으로 시간이 넉넉했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을 보고 싶다는 이유가 컸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고대 로마의 성곽과 노천극장 같은 유적들이 무심히 창 밖 풍경의 일부로 지나가곤 했다. 순간 내가 스페인이 아니라 이탈리아에 와 있나 하는 착각에 빠질 정도로.  


잠시 이탈리아로 떠났던 정신을 스페인으로 데리고 오는 건 광활한 대지에 심긴 올리브 나무와 오렌지 나무들이었다. 차를 타고 빠르게 지나가는데도 나무들의 행렬은 끝없이 이어질 정도로 넓게 펼쳐져 있었다.      


그동안 알고 있던 과수원은 아무리 크다고 해도 차로 지나가면서 한눈에 훑을 수 있는 규모였다. 상상 이상의 규모를 자랑하는 스페인의 과수원은 농장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인공 조림한 숲에 가까웠다. 


온라인게임 속에 심긴 나무들처럼 오와 열을 맞춰 서 있는 오렌지 나무의 행렬이 끝났다 싶으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심긴 올리브 나무들이 등장했다.       


비현실적이기까지 한 낯설고 반복되는 풍경을 바라보다가, 드문드문 자리 잡은 농가가 눈에 들어왔다. 오래전에 지어진 듯, 돌로 차곡차곡 쌓아 올린 벽이 인상적인 주택의 모습이었다. 할아버지의 아버지 때부터 그 자리를 지키며, 대가족의 지난한 과거와 희로애락을 품고 있을 법한 집.   

   

여행이 막바지로 향해가며, 조금씩 불안이 싹트고 있을 무렵이었다. 일상으로 돌아가면 퇴직금을 뿌리고 다니던 여행자에서 별 다른 준비 없이 30대를 맞는 백수로 신분이 바뀔 예정이었다. 쉬지는 않았지만 공공기관 청년인턴, 협회 계약직과 같은 애매한 경력을 지니고 있는, 그저 넘쳐나는 수많은 구직자 중에 한 사람으로서.        

좋은 대학을 나와서, 번듯한 직장을 잡는다는 성공방식에서는 꽤나 떨어져 있었다. 대학 간판은 더할 나위 없었으나 변변찮은 직장이 없으니, 1차는 합격했으나 최종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시고, 이제는 응시제한에 걸려버린 고시 낭인을 닮은 삶이라고나 할까.       


누구나 인정하는 주류의 기준에서 밀려났다는 불안과 앞으로 평생 성공이라 부르는 삶을 살 수 없을 거란 좌절은 마냥 풍경에만 집중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감출 수 없는 초조와 낙심에 흔들리는 시선으로 반복되는 풍경을 바라볼 때였다. 문득 농장 한가운데 놓인 그 집에 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졌다.      


오렌지를 키우며 평생 저곳을 지키며 살아왔겠지. 더 넓은 세상을 보지 못하고, 태어나 지금까지 저 땅이 전부인 줄 알고 살았을지도 몰라. 홀로 외따로 떨어진 그곳에서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잠드는 단순한 삶을 지겹도록 반복했을 거야.      


상상 속의 그 사람은 부와 명예로 대표되는 세속적인 성공의 기준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자, 또 다른 질문이 따라왔다. 그렇다면 저 농부의 삶은 실패했다고 할 수 있는가. 과연 그 인생은 불행한 삶이라고 할 수 있는가.      


대답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누군가의 삶은 그렇게 쉽게 말할 수는 없으니까. 함부로 한 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거니까. 한두 가지 기준으로 판단하기엔 삶의 모양은 너무나 다양하니까.      


그런데 왜 나의 삶은 그리 쉽게 규정하려 했을까.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들이 내밀어선 안 될 기준이라면, 마찬가지로 나에게도 그러면 안 되는 것 아닌가. 


그때 비로소 나는 비교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날 이후로도 여전히 수많은 비교대상들과 견주려는 마음이 꿈틀거린다. 비교대상은 끝이 없다. 한 때는 손에 잡힐 듯했지만 이제는 영영 들어갈 수 없는 아파트에 사는 아이친구 엄마, 평생 먹고살 걱정 없다는 전문직 친구, 감각적인 문장과 유익한 정보, 독창적인 시선으로 빼곡히 채운 글을 쓰고 있는 얼굴 모를 수많은 작가들까지.


삶의 구질구질함과 하찮음을 견뎌야 하는 날이면, 광활한 오렌지 농장 사이에 외따로 떨어져 있던 그 집을 떠올린다. 어떤 삶의 모습이라도 괜찮다고, 삶의 의미는 부여하기 나름이라고 말하는 13년 전 그때의 나를 만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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