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대충을 외치는 월급루팡에게
실시판 <일하면 죽는 병 걸림>
인기 웹소설이자 웹툰으로도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데뷔 못하면 죽는 병 걸림>(이하 데못죽)에는 목숨(!)을 걸고 아이돌 데뷔를 준비하는 주인공이 나온다. 소설과 웹툰 속 아이돌이지만, 하이퍼 리얼리즘에 기반한 생생한 사건들과 묘사 덕에 현실 아이돌만큼 인기를 끌고 있다. 얼마 전 더 현대 서울에서 열린 팝업 스토어에는 새벽부터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는 팬들과 높은 객단가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멀리 여의도까지 갈 것도 없이 사무실에는 실사판 <일하면 죽는 병 걸림> 이 연재 중이다. 물론 주인공은 월급루팡. 기존에 하던 업무 외에 조금이라도 다른 업무를 하라고 하면 일단 미간부터 찡그린다. 그리고 못하겠다. 할 수 없다. 일이 많다(?)는 기본멘트 3종이 자동응답기처럼 나온다.
어쩔 수 없이 일을 맡게 되면 업무 분장이라면서 옆 직원에게 슬쩍 떠밀고 꼭 한 마디 덧붙인다. '야, 대충 해' 세상에서 가장 나쁜 벌레는 '대충'이라던데, 월급루팡이 매일 입에 달고 사는 말 중에 하나는 대충이다. 듣고만 있어도 사람 진 빠지는 소리들은 참 찰지게도 잘한다.
내가 해봤는데 안 돼
열심히 해도 알아주지도 않아.
뭐 하러 열심히 하냐
그렇게 해봤자 너만 손해야
그냥 대충 해서 시간 때우고 양만 채워.
노력한 만큼의 보상이라는 환상
월급루팡의 '대충주의'에는 일한 만큼 비례해서 보상을 받을 수 없다는 명제가 깔려있다. 노력한 만큼의 보상은 당연한 말이면서도 현실에서는 이뤄지지 않을 때가 더 많다. 눈알 붙이기 부업이 아닌 이상, 누가 얼마큼 일을 했는가, 기여를 했는가를 측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때론 업무 성과가 개인의 노력만으로 결정되지도 않는다. 우크라이나 전쟁, 코로나 팬더믹 등 외부 요인이 성과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같이 일하는 사람과 잘 맞지 않아서, 갑자기 팀장이 바뀌어서와 같이 통제가 어려운 내부 요인도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변수다.
현재 대기업 중심의 산업구조에서는 같은 일을 하더라도 소속이 대기업인지. 중소기업인지에 따라서 받는 보상이나 대우가 천차만별이다. 정규직. 계약직, 파견직 등 같이 고용 형태에 따라서도 받는 임금이나 성과급이 차이가 크다. 가끔 공정을 목 놓아 외치는 사람들 중에는 본질적으로 왜곡된 구조를 바꾸려고 하지 않고, 왜곡된 구조 안에서 절차적, 형식적 공정만을 외치며 각자도생을 추구하는 모습이 보여 안타까울 때가 많다.
다시 돌아와서 누구는 열심히 해도 덜 벌고, 누구는 한 것에 비해서 더 번다면, 아무리 열심히 해도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을 수 없다면, 결과적으로 최대한 일을 덜 하고 돈은 많이 받으려는 월급루팡이 현명한 선택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
노오력도 습관이다.
문제는 월급루팡이 대충 일하라고 하는 사람들이 주로 2~3년 차 직원들이라는 것이다. 월급루팡은 한창 배워야 할 그들에게 대충 하라고 눈치를 준다. 괜히 자신이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두드러질까 봐. 월급루팡의 해악은 그저 다른 사람의 사기를 꺾고, 의욕을 떨어뜨리는데 그치지 않는다. 성장해야 할 사람들의 앞길을 막는다는 점에서 정말 해롭다.
물은 100도가 되기 전까지 결코 끓지 않는다. 핵폭탄도 임계점을 넘기 전까지는 그저 원자 덩어리에 불과하다. 임계점을 넘어본 사람과 못 넘어본 사람의 차이는 크다. 마지막 한 고비만 넘기면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데, 그건 오직 완전히 끓어본 사람만이 누릴 수 있다.
하지만 대충 하는 건 참 쉽고, 그만큼 습관도 잘 든다. 몇 번 대충 하다 보면 100도로 끓는 법 자체를 잊게 된다.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인지도, 어디까지가 자신의 한계인지도, 무엇을 해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주어진 일을 반복적으로 쳐내게 된다. 쉬운 반복과 안락함에 젖어,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는 월급루팡은 이미 그 길을 걷고 있다.
세월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영리하게 될 만한 일들만 골라서 하는 것이나 대충 욕먹지 않을 정도로 미지근하게 일하는 건 당장은 현명해 보일지 몰라도 결국은 성장을 막고, 자신을 망치는 지름길이라는 걸. 오늘도 대충 하라는 월급루팡의 가스라이팅에도 불구하고, 한 번쯤 팔팔 끓어보기 위해 애쓰는 모든 이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