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보내는 시간이 곧 당신이다

당장 편하게 돈 벌고 싶은 유혹에 맞서

by 케일린


당신의 시간은 얼마인가요?

예전에 함께 일했던 상사가 말했다. 직장인은 자신의 시간을 월급으로 바꾸는 사람이라고. 그 말에 격하게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선명하다. 오늘도 우리는 회사라는 전당포에 하루 8시간, 출퇴근 시간을 포함하면 10시간에서 12시간을 저당 잡히고, 그 대가로 월급을 받는다.


곰곰이 계산해 봤다. 자는 시간을 빼고 하루에 눈 뜨고 있는 시간은 많아야 18시간. 출퇴근까지 포함해서 길게는 12시간을 회사에 직간접적으로 바치고 있었다. 아 괜히 따졌나 보다. 오늘따라 월급봉투가 유난히 얄팍하게 느껴진다.


욜로, 디지털노매드, 조기은퇴, 수입의 파이프라인. 단어마다 의미는 각각 다르지만, 이 단어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시간이다. 이런 단어들이 뜨고 있다는 건 조금이라도 힘 있고 젊었을 때부터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하고 싶은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신호다.


예전이라면 어느 정도 나이가 드어서 은퇴 무렵에나 느꼈을 시간의 유한함과 소중함을 일찍 깨닫는 이들이 참 현명해 보인다. 이제는 부자가 되고 싶은 이유도 단순히 부를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라, 먹고 싶을 때 먹고, 쉬고 싶을 때 쉬면서, 시간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라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쉽게 돈 벌어서 참 만족스러우시겠습니다만

시간을 저당 잡힌 직장인들은 잠시나마 시간의 주도권을 되찾아오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곤 한다. 업무를 빙자한 담배타임이나 커피타임 등으로 소소한 일탈을 하기도 하고, 몰래 로또를 긁으면서 '도비는 자유예요'라고 외칠 순간을 고대하기도 한다.


상하좌우 눈치를 보면서 틈틈이 자유시간을 누리려는 직장인들의 몸부림이 무색하게도, 사무실의 월급루팡은 너무도 여유롭게 시간의 자유를 누린다. 모니터에는 변함 없이 똑같은 화면이 3일째 떠있고, 눈은 웹 서핑과 드라마를 보느라 휴대폰 액정으로 가 있다. 하루 종일 휴대폰만 붙들고 있는 모습을 보면, 참 쉽게 돈 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처음에는 왜 나만 이렇게 일을 해야 하나? 나도 돈 좀 쉽게 벌면 안 되나? 이런 생각에 일에 대한 의욕이 떨어졌다. 일하는 사람만 바보가 되는 것 같고, 열심히 하는 사람만 우스워지는 것 같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였다. 부러워하면서 따라 하거나, 저렇게 사는 건 아니라는 걸 증명하거나.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시간의 밀도

여성 최초로 제일기획 부사장까지 오르고 지금은 최인아책방을 운영하는 최인아 작가의 최근작인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에서 시간의 밀도에 대해 언급합니다. 여기서 시간의 밀도란 시간을 보낸 방식, 시간의 흔적이라고 말한다.


의미 없이 자리만 지키고 앉아 있는 채로 노닥거리는 월급루팡이 지나온 시간의 흔적은 어떤 모습일까. 무엇이 남아있을까. 성장을 멈춘 채, 마치 골다공증에 걸린 뼈처럼 듬성듬성 비어있는 시간의 밀도로 남은 생을 온전히 지탱할 수 있을까.


일터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가 보내는 모든 시간이 내 안에 쌓이고 있음을 체감한다. 돌발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여유나 급한 일을 빨리 처리할 수 있는 요령을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 아니었다. 수많은 경험 속에서 쌓인 내공 덕분이었다.


과거의 내가 모여 현재의 내가 되었듯이, 현재의 내가 시간을 보내는 방식이 미래의 내가 된다는 걸 이제는 안다. 누구나 축적된 시간의 힘을 누릴 수 있는 건 아니다. 주어진 순간을 최선을 다해 보낸 사람만이 달콤 쌉싸름한 열매를 맛볼 수 있다.




오늘도 월급루팡은 이어폰을 끼고 휴대폰을 본다. 몸은 사무실 의자에 앉아 있으되, 정신은 이미 휴대폰 너머로 들어간 지 오래다. 회사에서 일을 하지 않고,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자신이 승자라고 생각할 거다. 과연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은 회사의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허투루 보낸 시간의 청구서는 결국 자기 자신이 받게 된다는 것도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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