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나 성장의 기회는 있다

월급루팡의 조용하지 않은(!) 사직

by 케일린


조용한 사직이 정답일까

회사에서 시키는 일만 딱 하고, 일에 최대한 많은 에너지를 쓰지 말자는 '조용한 사직'이 유행이라고 한다. 한 마디로 너무 열심히 하지 말고, 문제가 생기지 않을 만큼만 일하자는 거다. 해야 하는 일조차 안 받으려고 하고, 대충 해서 다시 일하게 만드는 사무실의 월급루팡은 조용하지 않은(?) 사직 중일지도.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영 맞지 않는데 지금까지 쌓아온 경력이 아까워서, 혹은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버티는 사람들에게는 조용한 사직이 정답으로 보일만 하다. 회사에서 근무시간 내내 에너지를 아껴가며 버티다가, 퇴근 후에 진정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면서 자아실현을 하는 것이야 말로 나를 위한 것 아니냐는 말을 완전히 부정할 순 없다.


그럼 사무실에서는 결코 자아실현을 할 수 없는 것일까? 남의 일을 하면서는 결코 성장할 수는 없는 걸까?



쓸데없는 일은 없다

닳고 닳은 월급루팡은 신입 직원들에게 훈계한다. 귀찮을 것 같은 일은 못한다고 처음부터 딱 잘라 거절하라고. 윗선에서 신경 쓰는 일만 좀 하는 척하고, 나머지는 대충 처리하는 것이 영리한 프로 직장인의 태도라고. 월급루팡은 이제 막 경력을 쌓기 시작하는 신입에게 조용한 사직이 어떤 영향을 주는지 관심 없다. 자신의 전문성을 쌓고, 성장의 밑거름을 다질 시기에, 일하는 시간을 의미 없이 보내는 것이야 말로 독약과도 같은데.


보편적인 지식은 AI에게 물어보면 너무나도 손쉽고 빠르게 얻을 수 있다. 이제는 다양한 경험을 내 안에 체화하면서, 자신만의 관점을 가지고 세상을 재구성할 줄 알는 능력이 훨씬 더 중요해졌다. 자신이 경험하고 관찰한 것을 나름의 분석을 통해 정리하면서, 개인의 고유성을 확보하는 것이 곧 개인의 경쟁력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


어느 고등학교에나 있을 법한 여고생의 하루를 페이크 다큐로 담아낸 유튜브 채널 사내뷰공업의 김소정 PD. 마치 그 시절로 회귀한 듯한 편집과 그때 그 감성이 뚝뚝 묻어나는 영상으로 유튜브 인급동(인기 급상승 동영상)에 자주 올라 화제가 됐다. 유퀴즈온더블럭에 나온 김소정 PD는 "지나온 시간 중에서 헛된 건 아무것도 없었다."며, 영상 속 부캐들은 실제 아르바이트 경험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누구나 하는 경험이라도 자신만의 색깔로 덧입힌다면, 상상 이상의 성공을 거둘 수도 있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지금 하는 일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물론 모든 근무시간이 나를 위한 자기 성장의 시간이 될 수는 없다. 우리나라의 근무시간은 전 세계적으로 긴 편에 속한다. 장기 휴가도 쓰기 어려운 환경에서 꼬박 5일 동안 하루 8시간 이상 일에 매달리는 일상은 사람을 쉽게 지치게 한다. 일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쏟다 보면 번아웃을 겪을 수도 있다.


자신과 주변을 돌보지 못하면서 번아웃이 올만큼 일에 매진하라는 건 아니다. 그저 생계를 위해, 내가 아닌 남을 위해 억지로 한다는 냉소적인 태도에서 벗어나서, 같은 일을 하더라도 일 안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긍정적인 태도로 일을 해보자는 거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 일을 하다 보면 단순반복에 불과할 일도 자신만의 서사를 쌓는 업무경험이 될 수 있다. 불평불만으로 끝날 일도 왜 잘 안 될 수밖에 없었는지 문제점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한다면, 자신의 문제해결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사례가 될 수도 있다. 관심 없던 분야의 일을 하면서 자신도 몰랐던 재능이나 욕구를 발견하거나 아니면 이 길이 내 길이 아님을 확인하고 미련 없이 떠날 수도 있다.


나 역시 글 쓰는 일로 먹고 살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글쓰기는 그리 친하지도 잘하지도 못하는 일이었으니까. 글쓰기가 업이 되니, 자연히 글 쓰는 시간도 길어졌다. 더 잘 쓰기 위해 더 읽게 됐고, 통찰력이 돋보이는 글을 읽으며 조금씩 욕구가 생겼다. 남의 이야기만 쓰는 게 아니라, 나만의 관점이 들어간 멋진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


만약 회사에서 글 쓰는 일을 하지 않았다면, 글쓰기에 대한 열망은 불씨조차 피어오르지 않았을 거다. 생각을 정리해서 흐름에 맞게 글로 옮기는 최소한의 기초조차 쌓지 못했을 거다. 설사 글쓰기에 대한 욕구가 있었다고 한들, 나만의 글쓰기에 매진한다는 이유로 업무를 소홀히 했다면, 이 글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거다. 하루의 대부분의 보내는 곳에서의 경험과 깨달음이 글감의 원천이 되는데, 회사에서의 시간을 허투루 보낸 사람에게는 남아 있는 게 없을 테니.





하도 일을 안 하길래 새로운 일을 억지로 맡겼더니, 짜증 가득한 얼굴로 대충대충 날림으로 일을 하고 있는 월급루팡은 알까. 일하는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느냐 성장의 밑거름으로 삼느냐는 본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걸. 성장은 누가 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는 거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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