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남이 한 것을 자기가 한 것으로 착각하면 큰 일 나요.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다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어디까지가 내가 해낸 성과일까.
남이 해낸 성과와 내가 해낸 성과의 경계를 객관적으로 명확히 하는 건 쉬워 보이면서도 결코 쉽지 않다. 성과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한 일의 비중과 중요성을 자꾸만 부풀리려는 유혹과 끊임없이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일을 하다 보면, 오롯이 혼자의 힘으로 이뤄내는 건 그리 많지 않다. 여러 사람이 각자 맡은 일을 해준 덕분에, 지금의 성과를 낼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떤 개인도 팀보다 위대할 수 없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각각의 프로세스가 확실한 업무 중에는 성과측정이 쉬운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내가 한 일과 내가 해낸 성과를 내가 모를까 싶지만, 내가 한 일과 성과를 연결시키는 과정에서는 굉장히 자의적인 판단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저 직원이 한 일도 따지고 보면, 내가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준 덕분에 할 수 있었던 거 아냐? 내가 이런 식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방향을 제시한 덕분에 일이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거지. 내가 이것저것 검토해서 최종 컨펌했으니 이번 성과에는 내 몫이 크지.
사람인지라 모든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하다. 중요한 건 자신의 한 일을 자꾸 부풀리려는 욕망을 인식하느냐 못하느냐다. 자신의 욕망을 제대로 인식하는 사람은 객관적으로 스스로의 능력과 성과의 경계를 파악하고, 다가올 미래를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다.
반면, 자신이 욕망에 휩싸여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은 부풀린 자신의 성과나 능력을 진짜 자신의 것이라 확신한다. 능력이 없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실력을 실제보다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더닝 크루거 효과와도 맞닿아 있는 부분으로, 그들은 지금의 위치나 조직을 떠나서도 언제든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대기업 출신이나 관리직들이 이직이나 재취업을 하는 과정에서 흔히 겪는 착각이기도 하다. 이제는 그들을 고용할 사람들도 몇 번의 경험을 통해, 그들이 속 빈 강정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지금처럼 누군가에게 고용되어 살아가고자 한다면, 어찌어찌 정년까지는 버틸 수 있겠지만, 공식적으로 고용의 의무가 지난 정년 이후의 삶은 누구의 선택도 받지 못할 공산이 크다.
평생직장은 사라진 지 오래고,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정년조차 무색해졌다. 단순히 경제적인 이유 외에도 사회적으로 고립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노후에 뭐 하면서 살아갈지 고민이 깊어진다. 만약 정년 이후에도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선택받고 싶다면, 실제로 내가 할 줄 아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생각해봐야 한다.
고용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 일할 사람을 붙여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입만 살아 있는 사람을 쓸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의 힘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쓰고 그려낼 수 있는 사람을 쓸 것인가. 오랜 경험에서 우러난 지혜와 통찰력과 같은 소프트 스킬도, 결국은 당장 써먹을 수 있는 단단한 하드 스킬 위에 있을 때 소용이 있는 법이다.
정작 본인의 실력은 여전히 몇 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으면서, 직원들의 성과를 자신의 팀 이름으로 포장한다고 해서, 자신이 할 줄 아는 것이 되는 건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알아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