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불의를 못 참는 우리들
월급루팡의 해악을 따져보자
월급루팡을 보면, 요샛말로 킹 받을 때가 많다. 왜 나만 열심히 하지? 왜 나만 일해야 하지? 나도 안 하면 안 돼? 아무리 글을 쓰고 마음을 수련해도 스멀스멀 깊은 빡침이 올라온다.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월급루팡의 해악을 돈으로 환산해 봤다.
평균연봉이 낮은 회사의 특성상, 월급루팡이 빼먹는 돈은 해봤자 일 년에 5000만 원도 채 안 된다. 꼬박꼬박 사무실에서 주 40시간의 시간을 바치고, 딸린 식구들에게 가는 돈을 감안하면 크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큰돈이 아닐 수도 있다.
작은 불의에 가려진 것들
월급루팡에게서 시선을 돌려 뉴스를 본다. 큰 도둑들이 나라 곳간을 털어가는 규모는 상상이상이다. 4대 강과 자원외교로 날린 수천억에서 수 조원에 달하는 국고를 생각해 보라. 수 억 원의 특수활동비를 말 잘 듣는 부하들 챙겨주는 쌈짓돈처럼 쓴 검찰은 어떻고. 지출결의서에 영수증 하나 잘못 기입해도 회계팀에서 욕먹는 직장인들은 꿈도 꿀 수 없는 이야기다.
일제강점기로 회귀했나 싶을 정도로 어이없는 일들도 벌어진다. 후쿠시마 방사성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는 일을 옹호하는 홍보물을 만드는데 세금이 10억 원 가까이 사용됐다고 한다. 검사 출신 KBS 이사는 방사성 오염수의 안전성을 우려하는 사람들에게 조센징이냐고 비아냥댄다.
월급루팡을 보면 분노가 치미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월급루팡 때문에 분노하는 것만큼 국고와 세금을 빼돌린 도둑들에게 분노했는지 생각해 본다. 하루에 몇 만 원 축내는 월급루팡보다 더 큰 해악을 끼치는 일들에 그만큼 분노했는지 돌아본다.
쉬운 분노보다는 올바른 분노를
사무실에 노닥거리는 월급루팡을 보면서 분노하는 것은 쉽다. 눈앞에 보이니까. 눈에 비친 월급루팡의 행태는 1초도 채 되지 않아 시신경을 타고 뇌로 들어가 시냅스 사이의 전기신호로 바뀌어 분노의 감정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월급루팡보다 더 큰 해악에 대한 분노는 어렵다. 시간을 내서 정보를 찾아야 하고, 읽고 들으면서 이해해야 한다. 복잡한 사안일수록 구체적으로 어떤 해악을 끼쳤는지 꼼꼼하게 따져 보기도 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분노할 수 있다.
우리가 쓸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는 한계가 있고, 분노라는 감정에도 한계가 있다. 작은 불의에만 분노하다 보면, 정작 분노해야 할 일에는 분노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 버리기도 한다. 과연 나의 분노는 잘못의 크기에 비례했는가. 지금 우리의 분노는 정의롭고 공정했는가.
분노라는 감정은 다른 사람이나 스스로를 해칠 수 있는 부정적인 에너지이기도 하지만, 불의에 맞설 용기를 주기도 한다. 작은 불의에 나의 모든 분노를 쏟아내지 않기로 해본다. 더 큰 불의에 분노할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도록.
올바른 분노를 위해선, 날카롭게 벼려야 할 것과 둥글고 무디게 할 것의 구분을 잘해야 한다. 본질을 파악하는 시선은 날카롭게, 다른 이의 단점을 보는 시선을 무디게. 그리고 세상의 변화를 읽어내는 감각은 날카롭게, 나를 다른 이와 비교하려는 감각은 무디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