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루팡과 직장 내 괴롭힘은 같은 토양에서 자란다

무관심이 얼마나 무섭냐면

by 케일린

월급루팡이 일을 피하는 법

다시 월급루팡의 하루로 시선을 옮겨본다. 직장은 월급루팡에게 있어 에어컨이 나오는 무료 쉼터와 마찬가지다. 휴대폰만 쳐다보고 있는 모습만 보면, 인천공항에 시간을 때우러 나온 어르신들과 분간하기 어렵다.


일 때문에 자리로 다가가면 귀에 무선 이어폰을 빼면서 비뚜름하게 쳐다본다. 졸지에 휴식시간을 방해한 사람이 되어 어버버 일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면, 그걸요? 왜요? 제가요?라는 눈빛으로 쳐다본다. 언젠가는 하도 일을 안 해서 위에서 억지로 일을 맡겼더니, 온갖 안 된다는 핑계를 적은 문서를 가져와서 못한다고 했는데 왜 시키냐며 엉뚱한 사람에게 짜증을 퍼붓는다. 직장에서 근무시간에 일을 시키는데 왜 화를 낼까. 아직도 의문이다.


한 달이면 끝날 일을 두 달은 족히 걸린다고 하면서 일을 깔고 뭉개는 건 기본이요, 계속 같은 화면만 띄워놓고는 그것 때문에 바빠서 다른 일을 못하겠다고 버티는 건 옵션이다. 월급루팡의 소정근무시간은 주 40시간 이건만 실제로는 반의 반이나 될까 싶다. 대충대충 만들어 보잘것없는 결과물을 내고도 월급루팡의 모가지는 뻣뻣하기만 하다.



차라리 혼자 놀 것이지

월급루팡의 해악은 단지 본인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옆에서 일하는 사람의 의욕을 떨어뜨리고 일하는 사람을 바보로 만들어 속에서 천불이 나게 한다. 치솟는 울분을 달래고자 글을 쓰게 할 만큼.


멀쩡하게 일하는 후배를 데리고 나가서 본인의 시간 죽이기에 동원하기도 한다. 나만 놀면 그러니까 너네도 같이 놀아라 하는 식으로 공범을 만들고, 나 혼자만 노는 거 아니니까 라는 자기 합리화를 시도한다. 결국 월급루팡은 정시 퇴근하고, 후배는 야근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차라리 산책하러 나가서 1시간 넘게 자리 비우고 얼굴을 안 보이는 게 훨씬 마음이 편할 정도다.


저연차 직원들이 하는 일에 비해 월급이 상대적으로 적다고 툴툴대면, 다른 팀 후배일 경우에는 맞장구를 치면서 힘들면 언제든 이직하라고 등 떠민다. 웃긴 건 정작 자신의 직속 후배에게는 여기만 한 곳 없다. 여기만큼 편한 곳 없다. 내가 일 덜 받게 해 주려고 얼마나 노력하는지 아느냐면서 가스라이팅을 시전 한다는 것이다.



월급루팡은 키운 건 적당한 무관심

월급루팡이 여전히 사무실을 지킬 수 있었던 이유를 생각해 본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무관심이 아닐까 싶다. 오래 다녔다는 이유로, 윗사람이라는 이유로, 후배들에게 자신의 일을 떠넘겨도 업무지시를 할 수 있지 라면서 아무도 관여하지 않았다. 그건 내 일이 아니니까, 다른 팀에 일에 개입하면 시끄러워지니까. 이렇게 다들 입을 다물고 넘어갔다.


나 스스로도 월급루팡의 사무실 기생을 방조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본다. 떽떽거리는 소리를 듣기 싫다는 이유로 월급루팡이 해야 할 일도 다른 사람에게 넘기려 하지는 않았는가? 제대로 결과물이 안 나온다는 이유로 월급루팡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일을 주려고 하지는 않았는가? 돌아보면 나 역시 월급루팡이 서식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데 일조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직장 내 괴롭힘도 무관심이라는 토양에서 자란다. 내 일도 아닌데, 그럴 만하니까 그랬겠지라고 하면서 모른 척하는 사람들의 무관심을 양분 삼아 은밀히 뿌리내린다. 부당한 지시도, 언어폭력도, 은근한 따돌림도 적당한 무관심을 먹고 자란다. 즉 월급루팡이 있다는 건 직장 내 괴롬힘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징조다.





다짐해 본다. 비록 깊이 뿌리내린 월급루팡의 사무실 서식은 막지 못했지만, 직장 내 괴롭힘에는 무관심하지 않겠다고. 그저 지켜보지 않고, 고충처리위원이나 노동청에 적극 신고하고 돕겠다고 다짐해 본다. 더 이상 부조리함이 내 곁에 쿰쿰한 냄새를 피우며 자라지 못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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