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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친테이블 Dec 23. 2020

좋아한다고 했잖아

좋아하기 때문에 다 괜찮을 줄 알았어


나는 술을 좋아한다. 20년을 한결같은 애주가로 지냈지만 나는 내가 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입밖으로 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모르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 이야기를 하는 게 어쩐지 부끄러웠다. 술을 좋아한다는 고백은 책을 좋아해, 영화를 좋아해, 꽃을 좋아해와는 다르게 생각됐고, 내 주변의 모두가 아는 그 사실을 숨겼다. 그러다보니 내가 살짝 미쳤는지 술이 술이 아니라 숨겨둔 애인 같았다. 평상시와도 함께하고 기분이 좋을 때는 꼭 함께 하지만 우울이 치닫을 때는 술을 멀리했다. 우울에는 애인이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애인은 내 마음과 같아서 더 슬픔 속으로 침잠하게 했다. 몸이 좀 좋지 않거나 우울할 때 멀리한 건 나인데, 이렇게 지내다보니 그것도 애인 탓 같다. 왜 그럴 때는 어쩌지 못하고 더 해가 되느냐고 생각해버리면서. 좋아하면서 그런다.

궤변을 늘어놓은 것 같지만, 좋아하는 내 감정만 중요하다고 여겨서였다. 그러면서 내가 널 좋아하는데 네가 어떻게 이럴 수 있니라고 물으며 마음 속에 자꾸 균열이 생긴다. 

좋아하기 때문에 다 괜찮을 줄 알았다고.

좋아하니까 다 괜찮아. 그런 건 없다.


무언가 좋아진다. 좋아하는 것은 상처도 같이 준다.

좋아하는 일을 시작했을 뿐인데 그 일이 내게 상처가 된다. 실망을 준다.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좋아하니까 내가 했던 배려가 오해로 내게 되돌아기도 했고, 내 마음의 크기와 무게에 비교하면서 똑같지 않다고, 그러니 부족한 거라고 실망하며 돌아서기도 했다.


얼마 전,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가수를 꿈꾸던 아이인데 어느 인디밴드의 보컬로 노래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며 내게 말했다. 

좋아하는 것 하면서 지낸다고. 

나는 그 말속에서 그런 걸 느꼈다.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이별을 했고, '좋아하다'에 내포된 여러 감정들을 인정하는 것이란 걸. 실망이나 슬픔 따위를 품고 가는 상위어로서의 '좋아하다'를 알게 되었다고. 좋아해서 헤어졌던 그를 다시 만나 이제는 헤어지지 않을 것 같은 깊은 울림 같은 걸. 

좋아하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아. 그렇지만 그런 순간이 와도 버릴지언정, 버림받았다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어. 그러니까 절망은 하지 않을 거야. 

좋아하니가 다 괜찮은 건 아니니까.


나는 그 아이가 부르는 노래를 들었다.

기타 연주와 함께 저음의 목소리가 'Beautiful'을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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