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또 보고 싶은 사람

by 스콘

어제 출입처를 만나 저녁을 했다. 원래는 가까운 데 사는 과장님과 나, 같은 부서 선배 이렇게 셋이 보기로 한 건데, 까칠하다는 평판으로 자자한 출입처 이사님이 뒤늦게 합류했다.


이사님의 합류로 편하게 보는 자리에서 약간은 격식 차려야 하는 자리가 됐고 나는 옷도 격식 있게(?) 차려입고 나갔다. 장소도 바뀌었다. 삼겹살 스스로 구워 먹는 그런 편한 자리에서 직접 요리를 가져다주는 그런 자리로.


그렇게 넷이서 모였고 나는 이사님과 초면이라 명함 나누면서 나름 싹싹(?)하게 대하려 노력했다. 그런데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불편함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난 표정으로 모든 걸 말하는 타입이라 티 내지 않으려 입술과 광대에 하도 힘을 줬더니 20분 정도 지나자 경련이 오는 듯했다.


이사님이 중간에 자리를 잠깐 비웠고 나는 현타가 왔다. 동시에 내가 불청객이 된 듯한 느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등등 혼란스러웠다. 눈앞의 맛있는 음식(안주가 좀 괜찮았다 거기)이고 뭐고 집에 빨리 가고 싶었다. 어제오늘 곰곰이 그 이유를 생각해 보니, 이사님의 '대접받고자 하는 욕구'를 내가 봤기 때문인 것 같다.


이사님은 초반부터 나를 보자마자 이렇게 어린 친구가 나와 감히 동석을?이라고 말하는 듯한 행동과 표정을 보였다. 본인은 언론사 임원급이랑만 동석하는 대단한 사람인데, 나처럼 막내 기자와 같이 술을 마시는 게 어지간히 마음에 들지 않으셨나 보다.


말할 때 내 얼굴은 보지 않고 옆에 선배 얼굴만 보고 이야기했으며, 어떤 주제에 대해 말을 해도 그 선배의 말에만 답을 하는 듯했다. 내 착각일 수도 있고 그분이 낯을 가리는 걸 수도 있는데 그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으며 난 그분의 낯가림 여부에 관심이 없다. 결국 술이 좀 들어가니 서서히 내 얼굴을 보면서 이야기도 하고 나한테 말도 시켰다. 머, 내가 생각보다 나이가 있다는 걸 알아서 일수도..


근데, 아시는 분들은 알겠지만 첫인상에서 한번 바닥을 치면 그건 회복이 무척 무척 어렵다. 결국 그 불편함은 해소되지 않은 채 끝났다.


세대 갈등 조장하는 글이 될까 봐 조심스러운데, 기자일 하다 보면 종종 그런 '권위'에 심취한 분들을 본다. 그분들의 표정을 보면 마치 '내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인데 너처럼 어린 여기자와 시간을 보내야 하다니 처참하구먼'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래, 차라리 내가 과잉반응을 하는 거였으면 좋겠다. 근데 내가 어릴 때 눈칫밥을 좀 먹어서 아는데 과잉반응만이 100%는 아닐 것이다.


혹시 그 어린 여기자가 경력을 쌓으면서 그 사람의 이름을 들을 때마다 그 사람에 대해 뭐라고 말할지, 그 분은 생각해 봤을까? 긍정보다는 부정적 평판이 자자한 것을 보면 나 같은 어린 여기자들과 본의 아니게 몇 번 더 동석을 하셨나 보다.


반면 한 번 보면 두 번 보고 싶고 두 번 보면 세 번 보고 싶은 분들도 있다. 비율로 따지면 이런 분들이 더 많다. 그들은 소심한 내가 중얼거리는 말에 귀를 기울여 주고, 대접받기보다는 해주고 싶어서 눈과 손이 계속 바쁘시다. 내 옆에 앉은 부장보다도 나를 더 챙겨주시며, 내게 이 자리에 나와서 고맙다, 시간 내줘서 감사하다도 말해준다. 감사해야 할 사람은 나인데.. 기업 대표들 중 그런 분들이 많다.


그들은 대화 상대를 굳이 가리지 않는다. 내게 경영 애로사항을 털어놓으며 상담을 하고 진지하게 답을 찾으려고 한다. (내가 뭘 알겠나 솔직히) 그분들은 차분하게 본인 이야기를 하며 중간에 질문도 적절히 던진다. 대화를 할 준비가 된 거고 대화란 뭔지 제대로 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안 되지만 그런 기업은 자꾸 손이 간다. 보도자료 하나라도 제대로 써주고 싶고, 악재가 터져도 다시 한번 물어보게 된다. 좋은 일이 생기면 그 회사 주식도 없는데 나도 진심으로 기쁘다.


보고 또 보고 싶은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어차피 인생 짧은데 권위 좀 내려놓고 어울린다고 큰일이야 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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