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데도 못 가서 어제까지만 해도 살짝 의기소침해 있었다. 네이버 블로그를 보면 일본이다, 하와이다, 미국 날씨 보여드린다, 는 식의 글이 활발히 올라오는데 흠, 나는 아무 데도 못 갔지. 하는 생각에 약간은 소외됐다는 느낌을 받아서다. 아무튼 연휴에 나는 아무 데도 가지 않았다. 물론 시댁 가족과 제천 리조트에 다녀는 왔는데 아는 분들은 알다시피, 시댁과의 여행은 이것저것 챙겨야 할 것도 많고 눈치도 보이는 법이다.
할 것도 없고 해서, 어젯밤 뛰러 나갔다. 오래간만에 50분 뛰기 타이머를 맞춰놓고 설렁설렁 뛰는데, 무심코 본 왼쪽 하늘에 대쪽만 한 보름달이 서서히 오르고 있었다. 심각하게 노랗고 쨍하고 상당히 큰 그런 보름달이었다. 마치 지금 뛸 게 아니야, 내게 소원을 빌어!라고 달이 이야기하는 것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문득 어이없게도 위안을 받았다. 저 보름달을 봤으니, 올해 추석은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달은 10분가량 쨍하게 떠있다가 이윽고 시커먼 달무리들에 의해 형편없이 빛을 잃어갔다. 뛰고 돌아오는 길에는 내가 헛것을 봤었나 싶을 정도로 그 의기양양한 달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찰나의 순간이어서 그런지 달을 본 그 순간이 더욱 소중했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지 않아도, 그런대로 괜찮은 연휴다라고 달은 내게 은밀히 말했다. 뭐 어때, 나를 봤으면 됐잖아. 추석이란 원래 보름달 보는 재미 아니겠어,라고 나를 어루만졌다.
어젯밤 그 달은 공평했다. 재미난 여행을 간 사람을 위해서든, 생계를 위해 연휴에도 일하는 사람을 위해서든, 마음 둘 곳 없이 외로운 시간을 보낸 사람을 위해서든, 가리지 않고 그 따듯한 빛을 뿌렸다. 그래서 연휴인데, 아무 데도 안(못) 갔지만, 그런대로 괜찮았다고 느낀다. 어젯밤 나는 달을 봤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