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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서백일 Feb 12. 2022

[서평]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를 읽고


9시간하고도 45분이나!

9시간 45분은 내가 윌라 오디오북에서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를 골라, 그 한 권을 내리 듣느라 소비한 시간이다. 요즘 하고 싶은 일은 독서 말고도 많은데, 독서에 9시간 45분이나 소비했다니 독서가 내 인생에서 그만큼의 가치 있는 일일까? 라고 자연스레 질문하게 된다. 책에 묻혀 몰입했을 때는 몰랐는데, 막상 다 듣고 나서 책 정보를 찾아보니 이 책은 9시간 45분의 러닝타임을 가진 책이었다. 책 한 권을 소화하는데, 이 정도로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면서도, 처음으로 독서가 내 일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시간으로 환산하여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나는 보통 책을 한 번 잡으면 끝까지 읽는 독서가다. 몰입의 경험을 좋아해서인지, 소설이나 전문 서적류는 되도록 2~3일 이내에 독파하고, 길어도 일주일을 넘기지 않으려고 한다. 지난 2년 동안은 이 원칙을 잘 지키면서 충분히 많은 양의 책을 읽었고, 그래서 독서 생활의 질도 좋았는데, 최근에는 이 패턴을 유지하기가 영 쉽지 않아졌다. 아무래도 시간 관리의 문제인 것 같은데, 전자책 서비스에서 읽고 싶은 여러 권의 책을 내 서재에 담아놓는 데는 채 1분도 걸리지 않지만, 담아놓은 한 권의 책을 다 읽으려면 적어도 5시간 이상을 소비해야 하는 구조적 불균형 때문인 것 같기도 했다.


2년 전 코로나 초기에는 대부분의 사회활동이 제한되었기 때문에, 독서 생활에 몰입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고, 그 여유시간을 활용해 종이책을 구매하여 밑줄을 그으면서 슬로우 리딩을 하는 질 높은 독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그러나 2년의 세월이 흐르고, 제한되었던 사회적 교류 기능이 온라인으로 대폭 이전되면서, 전자책 서비스 때문에 여유롭던 나의 슬로우 리딩 독서 생활에도 점점 숨 쉴 틈이 사라지고 있는 듯했다. 삶에서 여유를 찾기 위해 시작했던 독서 생활인데, 기술의 진보로 더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음에도 전자책이 내 일상에서 삶의 여유를 뺏어가는 주범이 된다면, 이쯤에서 전자책으로 바뀐 나의 독서 생활을 점검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런 셀프 점검 과정에서 문뜩 윌라에서 완독한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의 내용이 중첩되어 떠오르며, 이 책의 핵심 메시지에서 전자책 독서 생활에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시간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선택지가 너무 많아진 시대에 사는 현대인에게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는 '후회'라는 감정에 지배되어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이 책에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다양한 다른 삶을 살아볼 기회가 주어진 '노나'라는 주인공이 나온다. 주인공은 그때 댄과 결혼했더라면... 그때 아버지의 말을 듣고 수영을 계속했었더라면... 그때 철학 공부를 계속했었더라면... 그때 밴드 생활을 계속했더라면... 하는 '후회'의 감정으로 다른 자기의 삶을 선택해서 직접 그 다른 삶을 살아보는 기회를 얻게 된다.

 

사랑하는 댄과 결혼하여 꿈꾸던 펍을 운영하는 삶, 운동선수로 성공하여 강연장에서 강연하는 삶, 그리고 유명 밴드로 외국 공연을 다니며 인터뷰를 하는 삶을 모두 살아보면서, 주인공은 행복이란 결코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되었다고, 원하는 기술을 모두 배웠다고, 원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대신 행복이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서 지지를 얻고, 보호받으며, 두려움에 저항하고, 사랑을 베풀어 유대감을 형성하는 그 순간에 있음을 알게 되면서 죽음의 문턱에서 깨어난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의 이런 메시지는 지금의 나의 독서 생활과 태도에서의 성찰과 나아갈 방향을 잘 제시하는 듯했다듯 했다. 내 서재에 내가 이것저것 책을 열심히 담는 이유가 내가 살아보지 못한 다른 삶을 살아보고자 하는 욕구 때문이었고, 그 욕구는 결국 행복한 삶에 대한 나의 고정 관념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하루는 내가 손 그림이 뛰어난 아티스트가 되고 싶기도 했고, 다른 하루는 사진을 잘 찍는 포토그래퍼, 또 다른 날에는 글을 잘 쓰는 소설가가 되고 싶어 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도 잘하고, 컴퓨터 그래픽도 잘하는 사람? 더하여 혁신적인 아이디어도 샘솟아서 아이디어 노트를 꽉꽉 채우는 사람? 이런 삶도 살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렇게도 내 서재에 다른 사람의 경험을 담는 일에 집중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책은 다른 사람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영감의 원천인 것은 맞다. 그러나 행복한 삶이 결코 다른 삶을 다 살아본다고 오는 것이 아닌 지금 주어진 현재를 충실히 여유롭게 사는 것한테서 온다는 것을 알아버린 지금, 나는 나의 독서 생활을 리셋할 생각이다. 하나의 삶을 살 때는 하나의 삶에 충실하게, 그리고 내가 살아보지 못했던 삶을 더는 후회하지 않기로, 그리고 앞으로 내 서재는 언제나 비움 상태로 유지하기로...

 

그렇다고 독서 생활을 아예 접거나 종이책 읽기로 돌아가겠다는 선언은 아니다. 대신 여유를 갖고 독서 생활을 즐겨보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지금의 인생도 충분히 살만한 가치가 있으니, 살아보지 못한 인생에 대한 후회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지금의 인생에서 충분히 느낄 것은 느껴보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인생에 여유를 갖는다는 것은 결코 나태와는 차원이 다른 태도다. 바로 눈앞에 놓인 먹잇감에서 벗어나 조금 더 큰 그림에서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리는 그런 태도를 의미한다. 나의 독서 생활에서도 앞으로는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 그런 태도가 필요한 때이다.    





인터넷이 그리고 메타버스가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보는 것이 가능한 미래를 예고하고 있다. 나는 과연 내가 되고자 하는 삶을 직접 살아보게 된다면 정말로 행복해질까? 아니면 정말 살아보고 나서야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의 주인공과 같은 성찰을 얻을 수 있게 될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모든 것이 가능한 그때가 되더라도 나는 내가 살아보고 싶은 모든 삶을 장바구니에 담지는 않을 것이다. 왜? 행복을 만끽할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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