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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서백일 May 01. 2022

창조성을 촉발하는 시럽 5

호랑이 개성 갖기

희람이는 몸을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습니다. 어릴 때는 버스로 세 정거장이나 되는 통학 거리를 혼자 걸어서 집에 돌아오는 일도 있을 정도로 걷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희람이는 길을 걸을 때면, 나비도 보고 꽃도 보는 것을 신기해 했고, 무엇보다도 하늘을 보며 상상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렇다고 희람이 몸이 아주 날렵하거나 힘이 세거나 하지는 않아서, 학교에서 하는 공놀이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걷기에는 공놀이와는 다른 희람이만의 무엇이 있었습니다. 희람이는 혼자 걸어서 집에 오는 것에 알 수 없는 뿌듯함을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희람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동네에 들어온 노랑 택시와 달리기 시합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멀리 보이는 노랑택시가 막 움직이기 시작할 때, 희람이도 전력을 다해 뜀박질했죠. 그런데 한참을 달리고 옆을 살짝 쳐다보니 노랑 택시가 희람이 한참 뒤에 뒤처져 달려오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희람이는 그 순간이 기뻤습니다. 가쁜 숨을 몰아쉬고, 한걸음에 엄마에게 달려가 이야기를 했죠. "엄마, 내가 노랑 시랑 달리기 시합을 했는데, 내가 이겼어! 내가 더 빨랐다고!" 희람이가 이렇게 말을 했을 때 엄마는 그저 미소로 답을 하셨습니다.

희람이가 어느 덧 성장하여, 댄스 학원에 등록한다고 했을 때, 희람이 엄마는 고민을 하였습니다. 희람이가 몸을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희람이가 또 소극적인 성격의 아이라는 것도 엄마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희람아! 희람이 몸이 뻣뻣한 데, 댄스를 할 수 있겠니?" 엄마는 희람이가 마냥 어려 보여서 놀림 반 걱정 반으로 물어보는데, 희람이는 정색합니다. "나도 댄스 잘해! 댄스는 배우면 되니까 그래서 나 새로 생긴 댄스 학원 다닐 꺼야!! 나 보내줘!" 엄마는 희람이가 학원 공부 시간을 줄이고 댄스 활동에 매달릴까 봐 걱정하면서도, 희람이가 워낙 자기만의 고집과 주장이 강한 아이라는 것을 알고는 마지못해 승낙해주십니다. "대신에 학원 공부와 숙제는 꼭 끝내놓고 댄스를 해야 해!!" 하고 엄마의 바램을 허공에 흩뿌립니다.

희람이가 호랑이로 변하기 시작한 것은 이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희람이가 댄스 학원에서 진행하는 엑스트라 활동 때문에 공부에 지장을 받기 시작하면서, 엄마와 부딪히는 일도 잦아졌습니다. 희람이가 댄스 학원에서 춤을 추는 장면을 촬영한다고 하면, 희람이는 촬영을 위한 의상을 직접 구매해야 했고, 컨셉에 맞게 색조 화장도 직접 해야 했습니다.

엄마는 아무리 학원홍보용 촬영이지만, 화장이 너무 짙은 건 아닌지, 의상이 너무 노출이 심한 것은 아닌지, 밤늦게까지 쇼핑하러 다니면서 학교생활에 지장을 받는 것은 아닌지 등 희람이의 댄스 취미와 관련해서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습니다. 엄마는 특히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몸치야! 희람이가 내 유전자를 물려받았으면, 분명히 희람이도 몸치야. 그런데 왜 되지도 않는 일에 이렇게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거지?" 라고 생각했습니다.

희람이는 댄스 학원의 원장 선생님이 너무 멋져 보였습니다.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좋고, 무엇보다도 카리스마가 넘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습니다. 댄스를 통해서 많은 사람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사람이라 생각되어 참 부러워했습니다. 자신이 출연한 댄스 유튜브 영상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면서, 자기도 열심히만 하면 언젠가는 원장 선생님처럼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희람이는 어린 시절부터 올림픽에서 멋진 탁구 경기를 보면, 온종일 유명한 탁구선수가 되어 세계를 제패하는 꿈을 꾸는 성향의 아이였습니다. 탁구를 배울 수 있는 학원이 있다는 것도 모르는 채, 침대에 누워 상상하는 것이 전부였지만, 상상 속에서는 희람이가 언제나 우승자였습니다. 희람이가 어렸을 때 왜 그렇게나 몸이 허약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 희람이는 키도 크고 발사이즈도 엄마만큼이나 커졌습니다. 마스크를 쓰고 편의점에 들어가면, 대학생으로 오해를 살만큼 외적으로는 많이 성장했습니다. 희람이는 이제 엄마의 말을 고분고분 잘 듣는 아이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희람이가 댄스학원에 다닌 지 4개월쯤 지난 후였습니다. 희람이가 입술에 피어싱하겠다고 선언합니다. 이미 귀에는 피어싱을 여럿하고 있었지만, 입술에까지 피어싱하겠다고 선언할 줄은 엄마는 정말로 몰랐습니다. 희람이의 엄마는 입술에 구멍을 뚫는 장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도 고통스러웠습니다. 더하여 희람이네 반 엄마들이 희람이의 입술 피어싱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이야기를 하는 상황도 너무도 피하고 싶었습니다.

"희람아! 이건 정말 아니야! 생각해봐. 얼마나 아프겠어? 그리고 잘못해서 입술에 뭐라도 걸려서 찢어지는 모습을 상상해 봐! 얼마나 끔찍해! 다른 곳도 아니고 어떻게 입술에 뭐를 달고 다닐 생각을 하니? 음식은 또 어떻게 먹으려고?" 엄마는 쉴 새 없이 말을 쏟아내면서, 이쯤 하면 희람이가 무서워서라도 피어싱하겠다는 생각 자체를 지워버릴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엄마! 어차피 마스크하고 다녀서 피어싱한 모습은 다른 사람은 모를 거야! 엄마는 다른 엄마가 내 이야기 하는 게 창피해서 그렇게 이야기하는 거 다 알어!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은 꼭 하고 말 거야!"라고 응대합니다. 엄마는 공부에서 혹은 시험을 앞두고 희람이의 입에서 나왔으면 하는 말이 '피어싱'을 하겠다는 상황에서 나왔다는 것에 많이 혼란스러워합니다.

희람이는 개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엄마와 갈등이 점점 잦아집니다. 엄마는 조금 일찍 인생을 살았다는 이유로 희람이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한 경계를 명확하게 합니다. 희람이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과 하기 싫은 일이 뚜렷하다고 믿기 때문에 그런 엄마의 경계선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합니다.

희람에게는 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학교에서도 희람에게 바라는 것은 시간과 약속을 잘 지키는, 그리하여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지 않는 온순한 사회인으로 성장하기만을 기대합니다. 희람이가 개성을 지키려면 꼭 호랑이가 되어야만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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