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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서백일 May 14. 2022

창조성을 촉발하는 시럽 6


희람이는 크게 숨을 쉬었다.



하늘은 벌써 연노랑과 연보랏빛으로 온통 물들었고, 5월 초저녁의 바람은 희람이의 허파를 가득 채우기에 충분히 따뜻했다.


희람이는 입으로 숨을 "후~~~" 하고 내뱉었다. 그리고 또 크게 다시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는 저기 멀리 보이는 하늘과 하나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포근한 하늘이 나를 좋아하는 것 같아!! 내가 하늘과 하나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희람이는 진심이었다. 희람이에게 오늘은 어제와 많이 달랐다. 매일 걷는 산책길이었지만, 오늘은 발끝에서 정갱이로, 그리고 허벅지에서 골반으로 이어지는 다리 근육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모두 느껴졌다. 평상시에는 빠르게 한 바퀴 돌던 길이었는데, 어제 느끼지 못하던 것을 오늘은 느낄 수 있었다.


희람이는 본인의 몸과 근육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게 되자, 자연스럽게 몸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그래서 허리도 펴고, 등도 펴고, 목도 펴고, 머리는 하늘과 연결하며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왼발 오른발을 움직이는 자기 몸을 관찰하고, 느낄 수 있게 되자, 그 순간에 행복감도 울컥하고 올라옴을 느낄 수 있었다.


희람이가 본인의 몸을 본다는 것은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거리에 심겨 있는 모든 나무의 나뭇잎이 다 똑같아 보였다. 희람이가 걷는 길에 심겨 있는 꽃이 모두 똑같은 꽃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다 달라 보였다. 잎사귀 하나하나의 모습이 모두 다르게 보였고, 심지어 잎사귀의 색깔도 다 다르게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을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다는 것에 희람이는 또 벅차했다.


"나는 날마다 모든 면에서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


"나는 날마다 모든 면에서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


산책하면서 희람이는 본인도 모르는 희한한 문장을 되뇌고 있음을 이내 깨달았다.


"이게 뭐지? 내가 왜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거야?"


창조성을 촉발하는 시럽을 마시고, 악몽을 꾸는 동안에 희람이의 머릿속에 누군가가 무엇인가를 심어놓은 것이 분명했다.


"나는 날마다 모든 면에서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


희람이가 원치 않아도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는 문장이었다. "나는 날마다.. 아앗"


희람이가 무의식적으로 같은 문장을 네 번째 반복하는 순간, 희람이의 왼쪽 발이 스르르 녹아 없어지기 시작했다. 희람이의 눈앞에서 마치 비눗방울이 공중에 날아가 없어지듯 발끝에서부터 서서히 없어지기 시작했다. 희람이는 눈 앞에 펼쳐지는 광경이 마냥 신기하고 아름다워서 한 동안 그냥 응시했다. 발끝에서 몽글몽글 피어나는 비눗방울이 하늘을 닮아 무지개빛으로 끊임없이 피어올랐다. 발끝이 없어지는 기분이 아프거나 두렵거나 불쾌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한결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또한 희람의 발끝이 없어진다고 해서 희람이가 균형을 잃고 넘어지거나 하는 것도 아니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앞으로 천천히 걸어갈 수 있었고, 오히려 더 순간순간의 향기와 바람의 질감에 집중할 수 있었다. 희람이의 발끝에서 녹아내린 공기 방울을 희람이가 다시 들이마시며 가슴이 약간 벅참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점점 더 희람이의 몸은 녹아 없어져서 공기 방울로 변해갔다. 그리고 그 공기 방울은 점점 더 많이 하늘의 일부가 되어갔다. 처음에는 연노랑 빛 구름이 되기도 하였고, 점점 연보랏빛의 노을로 변해갔다. 왼발이 모두 사라지더니 이제는 오른발, 그리고 정강이, 무릎, 허벅지 순으로 점점 더 없어져 갔다. 희람이는 이제 몸이 너무 가벼워짐을 느꼈다. 걷는 걸음이 하늘에 있는 것과 같았다.


하늘과 하나가 된 희람이의 몸은 몽실몽실했고, 또 포근했다. 희람이는 얼른 자기 상반신도 공기 방울로 변해서 하늘과 하나가 되기를 기대했다. 온몸이 하늘과 하나가 된다면, 정말 하늘을 나는 기분을 몸소 체험해볼 수 있을 것이다. 희람이는 본인의 몸 구석구석의 변화와 움직임에 더 관심을 두고 지켜보았다.


희람이는 공기 방울이 희람이의 코를 통해 허파를 통과하고, 배를 지나 아랫배에 가득 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랫배에 잠시 머물던 공기 방울이 온몸으로 출구를 찾아다니다 손끝으로 빠져나가며 손과 함께 영롱한 공기 방울로 바뀌며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희람이는 이제 손과 발이 없이 얼굴과 몸체만 남게 되었다.


희람이가 꾸준히 공기 방울의 흐름에 집중한다면, 희람이는 서서히 자신의 모습을 없애고 완벽히 하늘과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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