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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서백일 Apr 17. 2022

창조성을 촉발하는 시럽 4

요즘 중 3의 생활이야기

옷장 안에 숨어서 상어가 된 엄마와 호랑이로 변신한 또 다른 희람이를 가만히 지켜보면서, 희람이는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라고 생각했다. "나는 분명히 여기 있는데, 희람이가 저기 밖에 보이고, 엄마도 나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잖아!" 희람이는 이 상황이 꼭 꿈속에서 일어나는 일인 것만 같았다. 그러나 꿈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이상한 점도 있었다.


지금까지 꾼 꿈에서라면, 희람이는 꿈인 것을 알고 나면 상황을 반전시키려고 노력하면 꿈속의 내용이 바뀌곤 했는데, 오늘은 그런 전혀 그럴 조짐이 없어 보였다. 또한 꿈이라고 하기에는 선명해도 너무 선명했다. 바로 눈앞에서 사건 현장을 지켜보는 것처럼 한 장면. 한 장면이 모두 선명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이 곳이 꿈의 세계가 아니면 도대체 여기는 어디지? 나는 도대체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 여기가 흔히 사람이 말하는 다른 세계인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희람이는 아까 자기 전에 먹었던 "창조성을 촉발하는 시럽" 생각이 번뜻 났다. "창조성을 촉발하는 시럽이 나를 이 세계로 데려온 것인가?" 라고 의심하면서도, "도대체 이 세계가 뭐가 창조적이지? 괜히 먹은 건가?" 하면서 투덜댔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코로나가 이 세상을 뒤덮은 이후로 희람에게 이처럼 집중과 몰입감을 준 경험은 흔치 않았다. 확실히 지금 희람이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집중하고 있었다.


지켜보는 희람이의 눈앞에서 호랑이로 변신한 희람이가 커다란 앞발을 들고 포효했다. 엄마 상어는 아주 커다란 이빨과 날카로운 송곳니를 가지고 있었지만, 희람이의 방에서는 물이 없으니 몸의 움직임이 날렵해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희람이의 포효소리 기세에 약간 눌린 듯했다. 엄마 상어는 멈칫했다. 의외였다. 지금 희람이의 눈에는 엄마 상어가 오히려 위험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 "엄마! 뭐해? 빨리 입을 더 크게 벌리고 더 크게 소리쳐야지!" 희람이는 자신도 모르게 엄마를 걱정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호랑이로 변신한 희람이의 덩치는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팔뚝의 굵기도 굵어졌고, 허벅지도, 어깨도, 심지어는 발의 크기도 커졌다. 예전의 희람이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희람이의 포효소리는 지축을 흔들었고, 희람이의 방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무너뜨릴 기세였다. 엄마 상어는 대항할 기운이 없어 보였다.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다. 희람이는 "당장 뛰쳐나가서 엄마를 구해야 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이때, '딩동. 딩동' 현관에서 초인종 소리가 났다. 희람이의 아동학대 신고를 받은 경찰이 방문한 것이다. 기대하지 않고 신고했는 데, 경찰은 의외로 빨리 도착했다. 상어로 변한 엄마는 당황했다. 가족간에 흔하게 있을 수 있는 일에 경찰이 개입하려 한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도착한 경찰은 일단 엄마 상어와 희람이를 분리시켰다.




나는 요즘의 일상 이야기를 공상과학 소설 형식으로 브런치에 연재한다. 이미 네 편의 스토리를 완성했으니,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야기가 완성되어 나가고 있는 셈이다. 지금까지 가끔 단편의 미래 이야기를 소설 형식으로 써본 적은 있으나, 이렇게까지 길게 이야기를 이어 나가기는 처음이다. 이 정도면 들어간 노력에 비하여 얻은 것이 많은 편에 속하지 않을까?


소설 쓰기에 있어서, 작가는 초기에 시놉시스를 만들고 등장인물과 사건을 채워나가기도 한다. 혹은 등장인물의 성격과 함께 사건을 만들어 놓고 등장인물이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알아서 전개하도록 작가는 뒷짐을 지고 있는 경우도 있다. 소설 쓰기에 아주 오래된 논쟁거리다. 나는 후자의 의견에 동의한다. 지금 작성하는 희람이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어 나갈지 아직도 모른다. 나도 사건과 등장인물의 의식 흐름에 집중하여 글을 이어 나가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이야기가 전개되어가다 아마도 희람이가 우주의 건너편 평행우주 세상에 자신과 비슷한 삶을 사는 또 다른 희람이의 삶을 엿보고, 창조성의 진실에 눈을 뜬다는 이야기(?)로 결론을 맺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만 있을 뿐이다.


매주 글쓰기 모임의 마감 시간에 맞춰, 희람이를 중심으로 사건 사고를 일으키고 희람이와 주변 인물이 어떻게 사건 사고에 대처해 나가는지 지켜보는 것만으로 글을 완성하고 있다. 나에게는 적어도 10명의 글을 읽어주는 독자가 있다는 생각으로, 막상 글을 쓰기 시작하면, 온 우주의 에너지가 나머지 빈 곳의 이야기를 채워주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이것이 동시성의 기적이 아닐까? 내가 한 번 도전의 문을 열면, 온 우주가 힘을 모아 나의 목적 달성을 위해 힘을 보태준다는 것은 꿈같은 이야기였다. 아티스트웨이 1기를 시작할 때만 해도 믿기지 않았다. 아니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나도 조금은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창조성이란 동시성의 다른 말이며, 창조성은 현실을 비추는 거울 속의 세상을 유심히 바라보고 그 안에서 우주의 힘을 느끼는 것과 같다는 것을... 거울 건너편의 세상은 현실과 같아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도저히 일어나지 않을 법한 사건이 일어나곤 한다. 이 거울 속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다 보면 그것이 곧 새로운 이야기의 세계로 연결되곤 한다. 나는 우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우주의 힘을 빌어서 쓰고 있는 셈이 된다. 하하하


나는 소설 속의 희람이도 그 사실을 알게 되면 좋겠다. 다음 편에는 어떤 사건을 벌어야 할지 벌써부터 기대반 걱정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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