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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서백일 Aug 13. 2022

창조성을 촉발하는 시럽 제 2부 3화

엄마의 어깨

꿈속인듯,

"희람아! 얼른 일어나!"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지금이 몇 신데?"


희람이는 그래도 눈을 떠 보려고 노력하며 벽에 걸린 시계를 흘낏 봤다.

새벽 4시는 되어 보였다.


"엄마! 왜?"


희람이도 요란한 빗소리에 무엇인가 이상함을 느끼고 벌떡 일어나 거실로 튀어 나갔다.


비가 쏟아진다는 일기예보에도 이곳은 지상 11층이라 마음 놓고 잠이 들었는데, 거실에서 마주한 상황은 어이가 없었다. 거실과 이어진 확장 공사한 베란다에 빗물이 가득 차올라 거실로 넘쳐 오르기 직전이었다.


"엄마! 이게 뭐야?"


엄마는 이미 베란다로 뛰어들어 차오르는 빗물을 퍼내려고 하는 중이었다.


"너도 얼른 와서 이 물을 퍼내라!"


희람이도 첨벙거리며 베란다로 뛰어들었다. 베란다는 확장 공사한 이후로 거의 화초를 키우는 곳으로만 사용하던 공간이었기에 이렇게 물이 차오르는 상황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30년이 넘은 노후한 아파트 빗물 배수관이 내리는 빗물을 감당하지 못하고, 역류시켜 토해내는 중이었다. 한복판의 나룻배에서 차오르는 물을 퍼내듯이 손에 잡히는 데로 베란다 청소할 때 사용하는 쓰레받기를 잡고 연신 차오르는 물을 베란다 밖으로 몰아내었다. 한참을 미친 듯이 빗물을 퍼낸 후에 배수관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는 부위를 수건으로 동여매고 감싸고 할 수는 있었지만, 그래도 빗물이 새어 나오는 것을 완전히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비는 잦아들지 않았다. 계속 더 쏟아져 내릴 기세였다.

하지만 거실로 넘쳐날 것만 같았던 빗물은 이제 바닥을 드러내며 거실로 흘러넘칠 위기는 모면한 듯 보였다.


"이제 남은 수건으로 더 막아놓고,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꾸나!"


엄마는 선장이 된 듯이 말을 했다.


"네"


희람이도 이런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새벽에 이 난리 통에 심각한 말을 꺼내고 싶지는 않았다.


"들어가 샤워하고 주무세요. 제가 상황은 더 지켜볼께요."


물과 땀으로 흠뻑 젖은 잠옷 차림의 엄마를 응시하며 희람이는 재촉했다.


"너나 들어가서 자거라. 엄마가 마무리할게."


오히려 엄마가 재촉했다.


희람이는 이 대화의 끝이 어디로 향하는지 이미 알고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고. 엄마..." 한 후에,


"네. 알겠습니다."로 마무리하며 방으로 향했다.


엄마의 커다란 어깨는 한때는 든든해 보이기도 했지만, 이제는 세월의 흔적과 함께 고집스러움과 함께 중첩되어 보였다.


그날의 사건 이후로 희람이는 엄마와의 대화에서 '비난'의 표현을 빼보기로 결심했다.


평소라면 "그때 엄마가 돈이 들더라도 미리 고쳤다면..." 혹은 "제 말을 듣고 이사를 하셨더라면..." 등의 비난이 섞인 말로 대화를 시작했을 것이다. 그런 대화의 시작이 엄마의 고집스러움에 대한 안타까움의 표현이라고 생각했고, 그 대화로 엄마의 고집스러움을 어느정도 꺾을 수 있을 거라 믿었었다. 그리고 그것이 엄마를 위한 일이라고 엄마의 현명한 의사결정을 도울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날 희람이가 목격한 것은 엄마의 '고집스러움' 속에 녹아있는 엄마의 '헌신'이었다. 어려운 상황이 닥칠 때마다 그 상황에서 본인이 믿는 '행동'을 최선을 다하여 실행하시는 모습을 본 것이다. 이런 행동을 그저 '고집스러움'이라는 단어에 가둬놓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재난 상황을 대비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엄마의 '고집스러움'이 비난받을 이유는 하나도 없었 보였다. 오히려 그 재난 상황에서 엄마의 생각대로 힘들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자녀들에게 '칭찬'받아야 하는 모습이었다. 희람이는 결심했다. 오히려 엄마의 행동과 의사결정에 대해 '칭찬'을 해드리자고. 그렇게 하면,


"고집스러움에 숨어있는 헌신의 모습이 빛이 나지 않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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