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아끼는 사람의 죽음에 대처하는 방법
며칠 전의 일이다.
아끼는 제자의 부고를 전해 듣고 지난 토요일에 김천(구미) 지역의 장례식장을 다녀왔다.
그는 눈빛이 선하고 어깨가 딱 벌어졌으며 머리 스타일이 반듯하고 말투가 조금 어눌했다. A를 받으려 열성적으로 공부하지는 않아서 성적은 중간 정도였다. 공대를 졸업한 친구라 기대도 했었다. 그런데 생각을 정리해서 말로 표현할 때는 기대만큼 잘해주지 못했다. 파이널 프로젝트 발표회에서 나는 그 학생의 결과물에 종종 실망할 때가 많았다.
졸업한 지 5~6년째 되는 해의 만남에서 그는 이미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고 하었지만, 상황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조그마한 사무실에서 노하우가 없어 어려워하는 분야에서 성실함과 젊은 패기로 버티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사업은 기술 의존도가 높은 편인데, 외국에 의존하던 몇몇 하드웨어를 국산화하여 단가를 낮추는 방식으로 영업을 하고 있었다. 그때에는 탁월한 또 다른 졸업생이 하드웨어 디자인을 잘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믿었다.
최근에는 상황이 나아졌는지, 학교 후배 졸업생들도 하나둘씩 채용하기 시작하였다. 회사도 더 좋은 곳으로 이전하고 규모도 확장하였다. 졸업식에 참여해서는 졸업 장학금으로 큰 금액을 후배들에게 수여하기까지 하였다. 삼성전자의 홍보관 프로젝트를 진행하였고, 삼성동 코엑스의 대형 디스플레이의 그래픽 작업 프로젝트도 수행한다고 하였다. 이제는 졸업생이 설립한 회사 가운데서 졸업생을 가장 많이 채용한 회사가 될 정도로 회사가 커졌다. 학과 설립 이래 가장 크게 성공한 사례로 마땅히 감사패를 받을만한 자격이 되는 친구였다.
그런 그가 갑자기 없어졌다.
그를 보내야 한다고 한다.
SNS상에 그에 대한 추모의 사진과 함께 짤막한 글이 가끔 올라온다. 추억 어린 사진과 글들에서 그의 정감을 느낀다. 구미까지 내려온 그의 직장 동료들과의 이야기에서 그의 실체를 조금은 본다. 나도 그와 3년을 함께 보냈지만, 그의 흔적은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았다. 내가 도대체 그를 어떻게 대한 것인가? 내가 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학교 시절은 튀지 않는 학생으로, 창업 후에는 그저 성실한 사업가로, 졸업식장에서는 그저 장학금을 주는 성공한 선배의 모습으로만 기억하고 있지 그의 진정한 모습을 제대로 보려고 한 적이 없는 것이 아닌가!!!
시간이 많을 줄 알았다. 그를 제대로 차근차근 시간을 두고 알아가고 싶어 했다. 그런 데 이제 그를 제대로 알 수가 있는 기회가 없다. 이제는 세상에 남겨진 그의 흔적을 하나하나 찾아 읽어보아야만 그를 이해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말로는 아끼는 사람이라고 하였지만, 내가 진정으로 아끼는 사람이었을까?라고 후회된다.
내가 아끼는 사람이라면 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그 사람과 함께 추억을 남기고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그래야 후회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