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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서백일 Oct 17. 2022

10월 16일 그림일기

우리 세대의 인생에서 꼭 실패해야 하는 것들


"그래. 맞아! 아버님 세대에는 정말 열심히 사셨지. 우리 아버님도 지난번 추석 때 상 차려 놓고 '너희는 내가 너희를 먹여 살리기 위해 내가 한 고생을 모르지? 내가 가족 먹여 살리려고 정말 비굴한 일도 마다하지 열심히 했다'라고 말씀하셨어." 아내가 말했다.


"그 많은 재산을 제대로 쓰지도 못하면서 평생 절약만 하시다가.."

"그게 다 자식 생각해서 그렇지 뭐"


"그렇게 이루신 부가 우리 대에서 다음 세대로 잘 전달이 될까? 우리 세대는 위 세대처럼 악착같이 절약하며 살지는 않는 세대잖아. 아버님 세대의 허망한 모습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좀 쓰고 좀 즐기며 살아야 한다고 느끼는 세대잖아."


우회전 차선에 들어서며 내가 맞장구친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 그렇지만, 인생이라는 열차에 한 번 올라타면 종착역은 내가 결정할 수 없다. 언제 인생 열차에서 내려야 하는지는 하늘만이 안다. 물론 행복한 종착역을 그리며, 하루하루 열심히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에는 다를 바가 없지만, 우리 세대는 그래도 옆길로 새기도 하고, 빙빙 돌아가기도 하고, 여유를 좀 부리며 열차를 운행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앞만 보고 직진만 하던 부모님 세대와는 여행길이 매우 다를 수도 있겠다 싶다.


인생이라는 기차는 한 번 타면 내릴 때까지는 그 종착역을 알 수 없으니까, 부모님을 떠나보내고 그분의 인생 철로 길을 지켜본 후에야 앞으로는 어떤 길로 운행해야 하는지 알게 되는 것들이 모습을 하나둘씩 드러낸다.


또 하나의 예가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연명치료에 대한 태도다.


아버님은 할머님과 할아버님을 모두 가족의 동의를 받고 연명치료 하기로 하셨다. 그때는 자식이 부모님을 연명치료 하는 것을 효-불효를 나누는 중요한 잣대로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는 듯했다. 더하여 연명치료라는 시스템 자체가 생소한 세대라, 가족 구성원들 모두가 그 연명치료의 고통과 불행함을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세대이셨을 것이다.


빼어난 의학과 생명 기술의 조합으로, 의료의 승리가 사회에 보여주고 싶은 방향에 이끌려, 연명치료를 결정하셨지만, 연명치료 후에도 두 분의 의식이 한 번도 돌아오시거나 한 적은 없이, 그저 인생의 마무리를 차디차고 거대한 기계와 함께하셨던 쓰라린 기억만 남아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세대의 연명치료는 그 전의 연명치료를 바라보는 태도와는 다름을 느낀다. 환자의 생명을 무리하게 연장하는 것보다는 인간 삶의 고귀하고 존엄한 마무리에 방점을 두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이런 인식의 변화는 가족의 의견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연명치료가 환자에게 큰 고통이고, 가족에게도 커다란 낭비적 요소가 있음을 깨닫는 데는 한 세대가 필요했다. 물론 따스한 살색의 피부를 만지며 살아있음을 느끼고 쉽게 떠나보내지 못하는 살아있는 사람의 안타까움 때문에 생명 연장 연명 치료를 결정할 수도 있지만, 산 사람은 계속 미래를 살아야 하고 떠나보내야 하는 사람은 고귀하게 떠나보내야 한다는 관점으로 보면, 연명치료를 선택지의 최고 우선순위에 두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다.


연명 치료하느냐 마느냐는 물론 가족에게는 쉽지 않은 선택이겠지만, 우리 세대는 분명 이전 세대와는 다른 선택의 기회가 있다. 그 기회는 우리 아버님 세대의 경험과 성공, 실패, 그리고 실수가 만들어주신 것이다. 한 세대의 실패와 실수 경험이 다음 세대의 더욱 나은 선택을 위해 반드시 필요했했다.


우리 세대는 다음 세대에게 경제적 부를 물려주지는 못할 것이다. 성실함도 물려주지 못할 것이다. 절약 정신도 물려주지 못할 것이다. 협력의 힘도 물려주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세대가 자녀 세대를 위해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 세대가 빠르게 실패하고 실수한 모든 것들을 자녀 세대는 보고 학습하고 있지 않는가.


자녀 세대는 인생은 꼭 주어진 대로 살지 않아도 결국은 종착역에 도달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그리고 우리 세대가 저지른 무수한 실수와 실패로부터 새로운 가치관을 만들고 나름의 선택을 하며 각자의 인생 열차를 운행할 것이다. 우리 세대는 아버님 세대와 같은 성취와 성공 만을 자녀 세대에게 전달해주려고 하기보다는, 실수와 실패를 실컷 보여주도록 하자. 성취와 성공은 그냥 물려받을 수 있지만 변화를 만들어 내지는 못하고, 실수와 실패는 물려주면 안 되겠지만, 그로 인해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 세대에서 다음 세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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