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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서백일 Jan 20. 2023

궁리

23년 1월 20일 그림일기


요즘은 궁리하는 나를 관찰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고는


이 간사한 것 같으니라고.


라고 혼자 내뱉는다.


뇌가 나를 속이고 있는 게 뻔한 데, 나는 이 뇌를 믿고 지금까지 성실하다고 두둔해 온 것에 대한 배신감 때문이다. 뇌가 성실히 궁리하는 일을 많이 한다고 해서 결코 뇌가 자기 몫을 다하고 있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


뇌는 단지 단기적으로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것을 즐기고, 그렇게 보이기를 열망하는 신체 기관일 뿐,


뇌는 언제나 궁리의 대상을 고, 궁리거리를 찾으면 해결안이 나올 때까지 집중하는 것을 즐기는 인체 기관일 뿐이다. 그래서 주변상황의 변화에 따라 쉽게 집중의 대상을 바꾸고 계속 생각에 빠져드는 특징이 있다.


뇌에 그런 능력이 있음에 우리는 놀라움을 금치 못할 따름이다. 궁리에 빠져있을 때는 정말로 그 굴레에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몸소 체험 중이다.


집주인이 전셋값을 올려달란다. 몇 달 전에는 선심 쓰듯이 3000만 원만 올린다고, 시세보다 훨씬 저렴하게 계약갱신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때도 나는 전셋값이 계속 하락하니 기존 전세금으로 재계약하자고 주장했건만, 결국 3000만 원으로 전세 인상분을 조정하는 데 합의했다.


어떻게 전세자금을 마련하나 궁리하다가 결국은 대출을 받기로 결정하고는 궁리하기를 멈췄다.


그런데 주변 전세가는 끝도 없이 하락하는 환경에 닥치니, 또 다른 궁리가 시작되었다.


이제 와서 전세가 조정을 다시 말해야 하나? 집주인이 나가라고 하면 어쩌지? 어떻게 해야 나이스하게 내 의사를 전달할 수 있지?


등의 궁리가 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닌다. 큰 궁리라면 큰 궁리고 아니면 아닐 수도 있는 데, 지금 이 문제에 마음을 쓰는 것에 더 이상의 시간을 투입하고 싶지는 않다.


내 메타인지가 그렇게 말한다. 괜한 걸 궁리하고 있어! 그냥 집주인에게 물어보면 되잖아! 안되면 할 수 없는 거지만, 물어본다고 문제 될 건 없잖아!


그렇게 정리하니 생각이 심플해졌다. 생각에 생각의 꼬리를 이어 붙여, 이렇게 말을 하면 이런 식으로 응대를 해야겠다고,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궁리하느라 시간을 소모하기보다는 그냥 문제의 핵심을 파악한 후에는, 궁리에 빠지지 말고 실행에 옮기는  더 낫다고 결론을 내린다.


오늘 그림일기의 주제는 창작하는 사람 그리기였다. 그 얼굴 표정에서 창작하는 사람의 궁리하는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창작하는 사람에게 궁리는 일상인 셈이다.

 


하지만, 궁리에 빠진 창작하는 사람이 조심해야 할 한 가지 점이 있다면, 뇌는 창작하는 사람을 잘 배신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림을 그릴 때, 잘 그리려고 똑같이 그리려고 궁리를 한다. 그림에 한 번 빠지면 두 시간이건 세 시간이건 빠져나오기 힘든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림을 그릴 때 정작 중요한 것은 똑같이 그려내는 일이 아니다. 물론 집중과 몰입을 통하여 상당한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기 때문에, 그림을 똑같이 그리려고 하는 행위에 큰 비난을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오히려 똑같게 따라서 그림을 그리려고 궁리하고 있는 나를 바라보고,


도대체 지금 상태에서 질문이 뭐지? 이 그림을 그리는 이유가 뭐야? 무엇을 학습하고 있지?

라고 물어보는 게 도움이 된다. 똑같이 그리려고 궁리하는 것은 그냥 뇌의 쾌락회로를 가동하기 위해 시간이라는 소중한 연료를 태우는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릴 때는 이 그림에서 내가 연필 사용법을 학습하려 하고 있는지, 인체를 구조화해서 보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는 중인지, 화면 구성법에 심취해 있는지, 유명한 화가의 화풍을 배우려고 하는 것인지, 색조화를 연구하는 중인지를 질문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궁리에 빠져든 뇌를 바라보고, 가끔은 깨어있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궁리를 해본다.


여러분은 궁리에 빠져 도대체 헤어 나오지 못하는 뇌를 어떻게 바라보시나요? 좋은 노하우가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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