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2일부터다. 나와의 약속, 100일 독서를 시작한 날이다. 그리고 하루하루 기록도 시작하였다.
드디어 이번 주 금요일 4월 10일이면 100일의 독서 기록이 완성된다. 나와의 약속을 100일간 깨지 않고 지속한 것도 처음이고, 또 그 과정을 기록한 것도 내 인생에 처음 있는 일이다.
100일 동안 동굴에 들어가서 마늘만 먹은 웅녀처럼 나도 더 나은 사람으로 환생하고 싶었다. 그래서 시작했다. 아직 월, 화, 수, 목, 금 이렇게 5일의 시간이 남았다. 지금은 마지막 남은 시간을 더 의미 있게 보내고 싶다. 그래서 나는 왜 이 작업을 시작했고, 지난 90여 일간 얻은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는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내 인생에 변화를 기대했다. 나는 지금 인생보다는 더 나은 인생을 살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삶이 그렇게 전개되지는 않았다. 에너지 넘치고, 따뜻하고, 영향력 있는 삶을 살고 싶은 데, 불안하고 초조한 날이 더 많다. 독서를 통하여 내가 일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뀔 것을 기대했다. 내가 목표로 했던 30권 독서를 완료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총 25권의 독서와 서평 쓰기, 에세이 쓰기 등을 통하여 나는 분명히 얻은 것이 있다.
크게 두 가지다.
독서를 통하여 내 뇌가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을 통하여 내 안에 존재하는 '분리 불안'이라는 감정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분리불안은 인간과 동물 모두에 존재하는 감정이며, 그 어떤 감정보다 힘이 세고 강력하다. 풍족한 먹을 것과 따뜻한 안식처가 있어도 '분리 불안'이라는 감정에서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산다.
어릴 때에는 부모로부터 소외될까 불안하고, 청소년기에는 친구들 사이에서 소외될까 불안하고, 직장에서는 동료들에게 소외될까 불안하고, 나이 들어서는 자식에게 잊힐까 불안해한다. SNS에 노출된 현대인들은 분리불안을 더 쉽게 경험하고, 더 자주 반복 경험한다. 본인이 모든 것을 이루었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분리 불안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독서를 통하여 내가 얻은 첫 번째는 내가 '분리 불안'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안전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실제로는 '분리 불안'의 감정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 집 강아지 루이스도 '분리 불안'정서는 자기 몸에 해를 가할 만큼 괴롭고도 강력한 감정이라는 것을 실제로 경험해볼 수도 있었다. 루이스는 엄마와 잠시 떨어지는 것을 너무도 불안해한다. 곧 상황이 나아질 텐데도 말이다. 그만큼 우리 삶의 질을 쉽게 좌지 할 만큼 큰 에너지를 가진 정서란 것을 알 수 있었다.
두 번째 좋았던 점은 독서를 통하여 내가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독서와 글쓰기는 전혀 다른 분야다. 지난 40여 년간 시험을 위한 독서를 주로 해왔다면, 지난 90여 일간은 오롯이 글쓰기를 위한 독서였다. 글은 쓰면 쓸수록 는다고 했다. 그러나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믿는다.
글이 써지지 않으면 글을 쓰라고 한다. 생각이 정리가 안되면 우선 노트를 꺼내 드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면 많은 경우, 놀랍게도 생각이 정리되는 놀라운 경험을 한다. 그러나 매번 그런 것은 아니니 너무 믿지는 말자. 하지만 글쓰기라는 믿는 구석이 생겼고, 나에게 새롭게 생긴 좋은 습관이다.
내가 독서를 하기 시작한 이유는 '좀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내가 독서를 통하여 좀 더 나은 인간이 되었는지 아직은 모르겠다. 그러나 나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분리 불안' 정서를 발견했다는 점은 나에게도 '더 나은 인간'의 기회가 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
또한 글쓰기의 즐거움을 경험해보았다는 점은 '더 나은 인간'으로 진화하기 위한 힘찬 첫걸음처럼 상당히 고무적이다. 아내가 내가 곧 100일을 맞는다고 이야기하니 내가 많이 즐거워 보인다고 한다.
그렇다. 오늘은 즐겁고 기분 좋은 날이다.
'분리 불안'을 없앨 수는 없다. COVIC-19처럼 평상시 조심하고 잘 관리해야 하는 정서다. 내가 '분리 불안' 정서 때문에 낭비했던 인생의 시간이 아깝다. 내가 했던 일련의 행동들이 유치해 보인다. 나아가서 아이들이 '분리 불안'정서를 과대 포장하고 과잉 반응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100일 독서는 끝이 아닌 이제 시작이다. 깨달음의 길에 100일은 얼마나 짧은 시간인가? 하지만 면벽하지 않고도 얻어낸 인생의 큰 교훈이다. 도서 구입비가 아깝지 않다. 독서는 인생 진화에 가성비 최고인 투자임에는 분명하다.
나는 이제 남은 5일 동안 다른 사람들의 분리 불안을 이해하고, 보듬을 수 있는 방안을 더 모색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