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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서백일 Aug 02. 2020

[서평] 이야기의 탄생_충실 버전

뇌과학으로 풀어내는 매혹적인 스토리의 원칙

뇌에 관한 책을 읽으면 인간의 생각이 세상의 진실과는 거리가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감각 기관, 그리고 감각정보에 따른 뇌의 감정 반응까지가 인간이 진실을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 감정 반응들을 해석하는 뇌는 쉽게 거짓말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거짓말을 할 수 있는 뇌의 능력에 관한 소개와 설명이 '이야기의 탄생'에 담겨있다.


뇌가 어떻게 사물을 볼까?라는 질문에서 '뇌는 사진기처럼 사물을 보지 않는다'가 가장 쉬운 답이다. 만약 뇌가 사진기처럼 사물을 볼 수 있다면 방금 전에 본 풍경을 바로 그려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뇌는 방금 본 사물의 정보 대부분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래서 그려내지 못한다. 화가들만이 일부 시각 정보를 기억해 내고 상상으로 나머지를 그려내는 것이다. 상상_이 것이 뇌가 대부분의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이다. 이야기도 시각예술과 마찬가지다. 독자의 상상이다. 몇 가지 작가가 만든 외부 자극 힌트를 가지고 전체 사건의 인과관계를 독자가 구성한다. 특히 독자 자신을 영웅으로 만드는 이야기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한다. 뇌에서 좋은 호르몬이 나오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는 그래서 각자 다르게 정보를 처리한다고 보는 편이 맞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건을 목격하고도 전혀 다른 진술이 나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정말로 뇌가 외부 입력 정보를 편집 상상하여 전체 이야기를 각색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라고 그 사람을 비난할 수 있겠지만 인간이 원래 그렇다는 점을 이해하면 오히려 더 진실에 가까이 접근하는 방식도 발굴할 수 있을 것이다.   


디자인의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우리의 눈이 카메라가 아니듯 우리의 뇌도 컴퓨터 저장소가 아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다른 예술 분야가 그러하듯이 이야기 작가는 인간 뇌의 작동원리를 정교하게 파고든다. 인간의 뇌는 정보처리 최소화에 최선의 노력을 한다. 짧고 강력한 뇌의 신경 활동을 지속적으로 이끌어 내지 못하는 이야기는 그래서 지루할 수밖에 없다.


디자이너들도 청중의 몰입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이야기 구조를 이해하고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이 의미를 갖는 첫  번째 이유다. 이야기든 디자인 PT든 시작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에서부터 갈등구조와 해소를 언제 어떻게 보여주어야 하나? 에 대한 해설이 담겨있다.


이야기 구조에서는 변화가  감지되는 사건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라고 조언한다. 즉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힌트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기업 프레젠테이션에서는 executive summary라는 부분이 있고 투자 쪽에서는 엘리베이터 피치라는 말이 있다. 짧고 굵게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힌트를 보여주란 말이다. 세상은 변화에 민감하다. 그리고 세상은 바뀔만하다. 그 변화를 여러분의 손 끝에서 시작해보고 싶다는 말이 오글거리고 식상할 수 있겠지만 어쩌겠는가! 뇌가 그렇게 반응하는 것을.


2장 '결함 있는 자아'에서는 어떻게 긴장감을 유지하며, 발표의 핵심 내용을 전달하면 좋을까? 에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야기의 핵심은 결국 '인물'의 세계관 구축에 있다고 한다. 좋은 이야기에서는 이야기 속의 인물과 내가 동일시되는 경험을 한다.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겠지만 우리의 뇌는 이야기 속에서 극 중 인물을 통하여 '나는 누구인가?'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위대한 사람인가?' '나는 정말 지금까지 잘 살아왔을까?'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나간다고 한다. 이러한 질문을 자연스럽게 던질 수 있게 '인물'을 구성하는 것이 바로 작가의 역량이다. 


UX 프로젝트에서 퍼소나 작성이 아쉬운 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 퍼소나를 너무 완벽하고 흠결 없는 사람으로 상정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경우, 프로젝트 프레젠테이션이 끝나고 나면 이런 완벽하고 흠결 없는 사람에게 왜 이 제품과 서비스가 필요하지?라는 의문에 빠지게 된다. 즉 공감대가 형성이 안된 발표라는 생각이 든다. 멋진 제품과 서비스 시나리오임에도 불구하고 퍼소나에 도움이 되겠어?라는 의문만 들뿐이다.


이야기 구조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프로젝트에서는 완벽한 퍼소나를 만들기보다는 흠결 있는 퍼소나를 만들어 제시해야 한다고 한다. 외양적으로는 잘 나가는 대기업에 다니고, 건강하며, 사회생활도 우수한 30대 초반 밀레니얼스지만 내면에는 본인도 의식하지 못하는 흠결을 가진 퍼소나를 만들어야 한다. 이 퍼소나가 무의식적 흠결 때문에 새로운 환경에서 도전받는 모습을 보여줘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3장 극적 질문에서는 인간이기에 누구에게나 결함이 있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내가 나 자신의 말, 행동, 태도에 대한 고민이 있듯이 이야기 속의 인물도 똑 같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말과 행동 그리고 태도 때문에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어떤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이렇게 갈등이 만들어진다. 


할리우드 식의 이야기에서는 등장인물이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변화하려는 자신 때문에 더욱 고통받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한다. 이러한 고통 때문에 이야기 속 인물은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조금 더 변화한 나의 모습으로 발전할 것인가?'를 사이에 두고 고심을 하게 된다. 물론 관객은 그 인물에 자신을 투영하며 자기 자신의 내적 갈등을 더 심화하게 되고 그 때문에 몰입하게 된다. 멋진 장치다. 관객들은 이런 일련의 장치 속에서 자신의 과거 기억과 감정을 표면 위로 끌어올려 울고, 웃고, 슬퍼하고 화내고 긴장하는 몰입감을 경험하게 된다. 


이야기 결말을 끝까지 기다리고 보는 것은 결국 '그는 진짜로 누구인가?'를 모두 알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영웅도 필요하고 악인도 필요하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 보면 스스로 영웅이 될 순간도 찾아오고, 악인이 되는 순간도 찾아온다. 우리는 영웅의 이야기도 좋아하지만, 진짜 좋아하는 이야기는 스스로 영웅이 되는 이야기다. 영웅이 좋은 이유는 세상을 그의 뜻대로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 동안 이야기 속 등장인물을 통하여 세상을 통제하는 짜릿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자. 


디자인 프레젠테이션에서도 흠결 있는 퍼소나가 여러분들이 만든 제품과 서비스를 통해 세상을 통제하는 모습을 보여주도록 하자. 이야기의 구조 속에 도대체 통제되지 않을 것 같은 상황이 통제되고, 결국 퍼소나는 여러분과 같이 흠결 있는 사람이었구나를 보여줄 때, 나도 저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하면 세상을 통제할 수 있다는 감흥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방식으로 이야기 구조를 디자인 발표에 활용한다면 어떨까 한다. 


마지막 4장 '플롯과 결말'에서는 이야기와 여행을 통해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자주 들여다 보라는 조언을 한다. 자기 자신의 흠결 있는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을 때, 자기 자신을 속이는 뇌의 속삭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며, 뇌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우리는 평생 뇌의 능력의 10% 도 사용하지 못하고 죽는다고 한다. 뇌가 변화를 거부하고 기존의 틀 안에서 고정된 세계관을 고수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은 그 세계관에서 작은 영웅으로 살다가 죽는 것이다. 뇌과학을 통하여 밝혀지는 예술과 이야기의 세계는 안주하는 우리에게 경종을 울린다. 의식 세계가 닿지 않는 뇌도 우리의 뇌다. 이야기와 예술, 그리고 여행은 의식세계를 넘어선 무의식의 세계를 바라보고 잘 활용할 수 있는 좋은 시작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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