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한국적인것은 없다.국뽕 시대를넘어서
디자인 분야에 오래 있다 보니 디자인에도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듣는다. 디자인에 스토리텔링을? 디자인에 기승전결의 이야기 구조를 접목하라는 이야기인가? 싶어 책도 많이 읽어보았다. 그러나 영화나 소설이 아닌 디자인에 기승전결의 이야기 구조를 적용한다는 게 뭔지 감이 쉽게 잡히지 않았다. 디자인은 영화나 소설에 비하면 고객 / 소비자와 찰나의 시간에 소통하기 때문에 기승전결의 이야기 구조를 접목해야 한다는 것이 다소 억지 같았다.
[한국적인 것은 없다: 국뽕 시대를 넘어서]는 철학자 탁석산이 소위 잘나가는 "한국민의 국뽕 현상"에 대해 작심하고 스크래치 내는 문화비평서이다. 김연아, 손홍민, BTS 등 한국의 이름을 드날리는 인물들을 통해 스스로 잘난 민족이라고 생각하는 국뽕 현상의 잘못된 지점을 지적하고, [문화]와 [전통]에 대한 체계적인 해석과 이해 수준을 높이고자 하는 목적이 있는 듯했다. 저자는 [문화는 인간이 만든 것으로 인공식물과 같다. 가만히 두면 죽는다]라고 하면서 국뽕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문화를 적극적으로 지속해서 받아들여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을 통하여 문화에 대한 새롭고 다양한 시각을 가질 수 있었다. 특히 사물을 다루는 문화에 대한 대목에 있어서는 미래의 디자인에 쓰일만한 디자인 스토리텔링의 힌트를 찾아볼 수 있었다.
작가가 한국문화와 비교하는 대상에 일본 문화가 자주 등장한다. 일본의 미의식 중에는 [이키]가 있다고 한다. 이키란 절제하는 가운데에 나타나는 세련미로, 표현은 소박한 듯하지만 속은 화려함을 추구하는 미의식이다. 즉, 일본 문화는 겉에서 속으로 탐구해 들어가는 문화이고, 시간을 두고 감상해야 그 깊이를 알 수 있는 문화라고 표현했다. 종종 이런 [이키] 스러움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일본 문화를 겉 다르고 속 다른 문화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이런 일본스러움은 지난 수십년간 일본 전자 제품의 디자인에서 잘 볼 수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매끈하고 소박하지만 꾸준히 사용하다보면 첨단 기능이 있는 일본 전자 제품에서 [이키]스러움은 디자인 트렌드로 세계인이 주목했다. 최근에는 오키 사토와 같은 젊은 디자이너가 일본스러움을 잘 보여준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데, 사토의 최근 디자인에서는 겉 다르고 속 다른 일본 문화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서양인들은 그가 만든 제품에 감탄하고, 그의 디자인 철학을 배우기 위해 노력한다.
탁석산 작가가 일본 문화를 소개하는 대목에서 디자인에 스토리텔링을 접목한다는 의미가 기승전결의 이야기 구조를 적용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문화가 지닌 이야기 구조에서 매력 요소를 발견하여 이를 디자인에 접목한다는 의미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이키]의 미학, [기다림]의 미학, [젠]의 미학을 문화적 매력 요소로 뽑아 이를 제품에 적용한 일본의 디자이너를 생각해 보니 디자인 스토리텔링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한국의 이야기 구조에는 '시간'이라는 개념이 자주 등장한다. 항상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열린 결말에 대한 미련도 남다르다. 개인적으로도 기생충이란 영화에 대한 결말이 정말로 궁금했다. 결말이 없는 영화는 일상에서 오래 여운이 남는다고 하지만,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빨리빨리 가 외국인의 입에서 자주 언급된다. 우리가 급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때마다 나는 우리 민족은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민족이라고 생각한다.
탁석산이란 작가는 한국적인 문화를 천박이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천박 - 즉 얇고 옅은 깊이감이 없는 문화라는 뜻이다.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으니 미학에 깊이감이 없이 비빔밥처럼 모든 재료를 섞어 한눈에 보이게 만들었다. 성공한 한국 아이돌 그룹이 채택한 한국적 스토리텔링의 첫 번째 매력 요소다. 바쁜 세계인에게 많은 요소를 짧은 시간에 모두 함께 볼 수 있게 만드는 스토리 전략은 한국 디자인에도 접목이 가능하다고 본다.
봉준호 감독도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캐릭터를 천박하게 표현했다. 하지만 대부분 반전 매력을 지닌 캐릭터로 그려져 밉지가 않았다.
디자이너마다 활용하는 스토리텔링의 매력 요소가 다르지만, 인스타 시대에 사는 지금,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보여주는 방식이 디자인에서도 매력 어필의 방식으로 적요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나는 성수동에 자주 카페 투어를 간다. 젊고 새로운 감각으로 디자인된 공간이 많다. 이런 공간에서는 디자이너의 감성이 그대로 느껴진다.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의 공존, 날 것과 장식적인 것의 융합,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결합 등이 아주 신선하다. 새로운 것이지만 낯설지 않고 이질감이 없다.
이런 공간들이 요즘 대세다. 소위 말하는 스토리가 공간 구석구석에서 느껴진다. 그런데 스토리는 일본의 것과는 결이 다르다. 한 때 유행했던 젠 스타일은 차근차근 겉에서 속으로 들어가는 미니멀리즘의 스토리텔링 방식이었다. 그러나 요즘 성수동의 카페 공간에서 느껴지는 것은 날 것이고, 또 복합적이고 융합적이고 한 단어로 설명하기 힘든 스타일이다. 마치 다른 국적의 블랙핑크가 한 팀에서 조화를 이루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 한 번에 여러 문화를 느낄 수 있지만, 이질적이지 않고 조화를 이룬다.
이런 복합적이고 융합적인 매력 요소를 이질적이지 않게 표현하는 방식이 두 번째로 디자인에 담을 수 있는 스토리텔링의 매력 요소가 아닐까? 한다.
무질서는 창조의 원천이기도 하다. 우리는 국민소득은 벌써 선진국을 향하고 있지만(http://www.newstouch.site/news/articleView.html?idxno=12781), 사회적으로는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많은 나라다. 세속적이고 합리적인 가치관이 강하고 욕망 실현을 부추기는 문제 많은 사회에서는 삶이 역동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국을 대표하는 슬로건이 Dynamic Korea인 것을 결코 긍정적인 시각만으로 볼 수 없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디자인에서도 새로운 것이 너무 빠르게 도입되고 유행을 탄다. 젠 스타일이 유행했다가 인더스트리얼 스타일이 유행한다. 복고가 대세였다가 미래 스타일에 환호한다. 이런 빨리빨리 태도는 탁석산의 말대로 깊이와 가치가 없어 보인다.
지금까지는 빨리 대세를 따라 하는 것이 한국의 디자인 스토리 텔링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우리나라 디자인에도 도깨비 뿔이라는 스토리텔링을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디자인 스토리텔링은 시간을 소중히 여긴다. 짧은 시간에 많은 특징을 알아보기 쉽게 보여주는 방식은 어떨까? 융합적이고 복합적이지만 이질적이지 않게 잘 융합하는 방식도 요즘 대세다. 마지막으로 역동성 있는 격변의 스토리텔링 방식이 있다. 새 활용 디자인도 있고 모듈형 변형 가구도 가능성이 있다.
대량생산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묻혔던 작가의 개인 감성을 스토리텔링으로 디자인에 적용하는 시도가 다양하게 일어나고 있다. 다양한 소재를 패치워크 하는 제품, 천박한 B급 감성의 제품, 격변하는 구조의 다용도 제품, 온·오프라인 통합 제품 등에 한국적 디자인 스토리텔링이란 도깨비 뿔을 달아본다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