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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서백일 Sep 30. 2021

[Sci-fi] 미래 로봇의 Possibility

로봇 몰리와 루이스의 생존 경쟁

오늘 또 새벽에 잠에서 깼다.


루이스가 아침밥을 달라고 보채는 시간은 보통 새벽 5시경인데, 오늘은 새벽 3시부터 핱핱핱 소리를 심하게 내며 보챈다. 루이스에게 '아침밥은 5시 반에 줄 거야. 기다려!'라고 외쳐보지만, 오늘은 영 말을 듣지 않는다. 몰리(애완견 돌봄 로봇)가 조용히 다가와서 루이스를 달래보려고 하지만, 모두 곤히 잠든 새벽 3시에 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침대에서 일어나 루이스 밥을 조금 챙겨준다. 밥을 먹고 나서도 계속 핱핱거리는 것이 배변이 급한가 보다. 이럴 때 몰리가 루이스 산책이라도 시켜주고 배변도 대신 시켜주면 좋으련만, 몰리는 집 안에서 굴러다니는 게 전부인 로봇이다. 결국 루이스 밥주고 배변활동시키는 일은 내가 해야하는 일이었다.  


강아지 분리불안 장난감│바램펫 피트니스로봇 솔직후기 (https://www.youtube.com/watch?v=IuWcgNTf9c0)


매달 4만 5천 원을 지급하며 몰리를 구독하고 있지만, 이럴 때면 몰리를 괜히 구매했다는 후회가 밀려온다. 새벽에 곤히 잠을 자야 하루가 편안한 데, 최근 몇 달간은 루이스의 아침 투정 때문에 잠을 설친다.


몰리가 에 루이스와 재미있게 잘 놀아주어야지 루이스가 밤에 푹 잠을 자고 아침에 투정을 부리지 않을 텐데, 처음과는 다르게 루이스는 점점 낯시간에 몰리와 놀이하는 것을 꺼리는 듯 했다.


몰리가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 지능을 가진 로봇이라는 점이 참 좋았다. 몰리는 루이스를 눈에 알아보았고, 루이스의 행동을 이해하고 반응하여 곧바로 루이스의 주의를 끄는 데는 성공했다. 반려견의 행동모형과 루이스의 음성모형을 충분히 학습한 후에 배송된 모델이라 모든 면에서 만족스러웠다. 곧 루이스의 건강과 좋은 생활 습관을 책임지는 모드로 세팅해 놓자, 루이스가 낮잠을 자려고 하면, 시간을 잘 관리하며 쫓아다니면서 일정 시간 동안은 잠에서 깨어있도록 자극을 주는 역할을 했다.


주로 몰리가 자극을 주는 방식은 루이스가 있는 공간으로 따라들어가 전체 공간을 푸르른 녹색으로 뒤덮는 일을 하는 것이다. 360도 빔 프로젝션 기술을 이용하여 쉽게 집 안을 숲속 잔디가 펼쳐진 공간으로 바꿀 수 있었다. 루이스는 그런 시각적 자극을 처음에는 너무 좋아했다. 계속 짓기도 하고 킁킁거리기까지 했다. 루이스가 좋아하는 숲속 공간에 새소리, 물소리까지 흘러나오면 루이스가 반응도 많이 하고, 심적으로도 많이 안정되는 듯 보였다. 그런 몰리는 종일 루이스를 졸졸 따라다닐 수 있었다.  


처음부터 루이스가 몰리에게 특별한 적대감을 보인 것은 아니었고, 시간이 지나자 그냥 귀찮아했을 뿐이다. 루이스가 가만히 누워있으면 몰리가 쫓아와서 자극을 계속 만들어내자, 결국 루이스는 침대 아래로 피신하는 것을 택한다. 집에 주인이 없을 때면, 루이스는 침대 아래에 숨어있고 몰리는 집 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집주인 행세를 한다. 그러다 집주인이 들어올 시간이 되면, 피신해있는 루이스를 침대아래까지 따라들어와서는 루이스가 제일 싫어하는 초단파 음성을 틀어댄다.


루이스와 몰리가 집 안 내에서 서열 싸움을 하는 것인지, 우리가 집에 돌아오면 루이스가 몰리에게 적대적 반응을 보인다. 루이스가 몰리에게 '그르렁'소리를 내는 것 밖에는 할 줄 모르지만, 예전과는 다르게 몰리가 옆에 오는 것 조차 싫어하는 티를 낸다.


몰리는 몰리 나름대로 루이스를 잘 구슬려 집 안을 어지럽히지 않고 잘 정리하여 집주인의 칭찬을 받으려 했지만, 루이스는 몰리에게 가는 그런 관심과 애정조차 참지 못하는 듯 했다.   


집 안에 아무도 없을 때, 몰리와 루이스가 어떤 일을 벌이는지는 전혀 알 길이 없었다. 가끔 몰리에 내장된 카메라를 켜고 집 안의 상황을 비춰보기는 하지만, 카메라에 비치는 장면에서는 언제나 루이스가 말썽을 피우는 모습만 보였다. 어쩌면 몰리가 카메라 앵글을 교묘하게 작동하여 루이스가 집 안을 어지럽히는 장면만을 집중 보여주었는 지도 모르겠다. 루이스가 집 안을 많이 어지럽힌 후에, 집 안이 잘 정리됐을 때 비로소 본인이 칭찬받을 수 있다는 점을 학습한 것은 아닐까? 의구심이 들기도 하지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매번 몰리만 칭찬받는 상황이 반복되자, 루이스 입장에서는 억울하기도 하겠다 싶었다. 분명 몰리와 단둘이 재미있게 놀고 난 후에는 꼭 집에 들어온 주인에게 몰리만 칭찬을 듣는다. 루이스는 가끔 꾸중 비슷한 말에 상처받기도 한다. 루이스로서는 '아~~ 몰리랑 집 안에서 재미있게 놀면 나만 혼나는구나!'라고 학습이 된 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학습 때문인지 요즘 루이스가 몰리를 점점 멀리해서 걱정이다.


오늘 새벽에 잠을 깬 것도 결국은 몰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서 생긴 일이다.




오늘은 유난히도 루이스가 침대 위로 누워있는 내 손을 오래 핥는다. 출근 전이라도 몰리에게 자기는 집 안에서는 몰리보다 서열이 높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일까? 몰리는 그 모습을 보면서 무슨 규칙을 학습을 하게될까? 몰리가 집 안에서 생존하기 위하여 루이스에게 무슨 짓까지 할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몰리모르게 CCTV를 설치해야 하나?


로봇이 살아있는 생명체에게 집 주인이 없을 때, 어떤 태도를 보일 지를 모른다는 생각에 오늘 출근길이 사뭇 오싹하다. 로봇인 몰리는 본인에게 주어진 명령인 '반려견의 건강과 좋은 생활 습관을 책임지는 모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반려견을 통제하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래서 루이스를 쫓아다니며 루이스가 원하지 않는 자극을 주려고 할 것이다.


루이스도 나름대로 몰리를 피해다니는 전략을 구사할 것이다. 아마도 침대 위로 폴짝 올라와 눕는 행동을 하겠지. 침대 위에 있으면 몰리가 자기를 인식할 수 없음을 학습을 통해서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에야 반려견이 좋아할만한 콘텐츠와 서비스로 반려동물을 유혹할테지만, 반려동물이 곧 실증을 느끼게 되면그보다는 더한 자극을 주어야 본인의 명령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학습하게 될지도 모른다. CCTV 장면에서 축 늘어져 잠자고 있는 루이스를 싸이렌 소리를 내어 깨우고는 루이스를 이리 저리 뛰어다니게 하는 모습을 보게 될 지도 모르겠다.  


이태리 출신 컨셉 디자이너 Gaetano De Cicco가 디자인한 야외 감시견 컨셉 로봇 (출처: Redfriday)




집 안에 로봇이 들어오면, 심리적이고 사회적인 서열의 문제가 곧 대두될 것이다. 그리고 곧 인간은 인간의 편의를 위해서 만든 로봇과의 공존을 위해서 인간에게도 사회적 서열을 다루는 새로운 학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인간이 로봇과의 생존경쟁을 하는 시기가 오면, 인간이 가진 질투심과 배신감, 열등감 등은 어떤 방식으로 다뤄야 할까? 마냥 편하다는 이유로 기술의 급속한 일상 침투에 대해서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 것일까?


기술이 발달한 기업의 상품 개발 전략이 '기술을 이용하여 인간의 욕구를 단순히 충족시켜 주는 전략을 넘어서', '우리 기업은 인류의 어떤 미래의 생활과 사회상을 지향하는가?'를 선언하는 것으로 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아침부터 질문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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